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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담 Mar 21. 2024

A와 B의 차이

답 없는 논쟁

 선배는 제발 시를 쓰세요. 제가 선배 시를 다 읽었잖아요. 썼던 시 우려먹지 말고 새롭게 쓰세요.


 A는 거나하게 붉어진 얼굴로, 진심 어린 충고라는 옷을 입고, 제법 큰 소리로, 간만의 모임에 흥이 겨워 막 즉흥시를 낭송한 선배 B에게 대든다.


 시 창작이란 계속 새롭게만 쓰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쓴 것들을 손 보는 것도 포함된다. 난 지금까지 천 편 넘게 쓴, 내 시를 퇴고하는 중이야.


 선배 시는 다 거기서 거기 반복되는 시어들의 조합이잖아요. 좀 전에 낭송한 거 그것도 예전에 들은 거구요. 이제 지겹잖아요, 허허.


 웃으며 반 농담처럼 눙쳤으나 제법 무례하게 들렸다. 항상 진중하게 낮은 소리로 조근조근 말하는 유학자 스타일의 B는 화냴 법도 하나 웃어 넘긴다. 분명 A도 그간 누르고 눌렀던 선배의 시에 대한 나름의 평가를, 술을 빌려 토해 낸 것이었다.


 야, 임마. 시인도 다 스타일이 있는 거야. 니처럼 엄격한 잣대로 메타포니 상징이니 이미지니 그런 거 다 재고 조탁한 시만 시냐. 딱 들어 바로 알아듣는 쉬운 시도 있는 거지.


 옆 동기 C가 A와 B의 중재에 나선다. 쓴 소리하기로 유명한 C는 선배에게 A도 애정이 있으니 저런 비판도 하는 것이라고 하며, 단순 비난은 아니니 새겨 들으라고 다시 전한다. 80년대 후반, 뒤틀린 이 세상을 바로 잡겠다는 의지를 거리에서 용감하게 행동으로 보여 주었고, 글로 토해 내며, 펄펄 끓는 열정 덩어리의 청춘 시절을 보낸 그들도 이제는 영락 없는 중년의 아저씨들이다. 각자의 직업 전선에서 삶을 살아내는 중에도 가끔 있는 만남에서는 다시 그 시절로 소환된 듯 술도 과음하게 되고, 그 옛날 열정으로 과한 논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미 수필집도 한 권 자비이나 출판하기도 했으며, SNS에서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고, 산행 모임에서도 종종 시낭송을 하며 고정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선배 B이다. 직업인으로 삶도 충실히 책임을 다하면서도 매일 시 한 편을 스토리에 올리는 그를 나름 성실함의 척도로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 시가 성실함만으로 좋은 작품으로 나오던가.

부단한 노력 또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A의 말마따나 성실함으로만 창작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원하지 않는 청중이 되는 역도 고려해야 한다는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시학적 잣대로 엄격히 재단하여 시를 평가한다면. 그 또한 수 많은 시인들을 난감하게 하는 게 아닐까. 그 잣대가, 어떠한 의도이든 시를 쓰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아예 붓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는 바늘 구멍이 될 수도 있다.


 한참 시란 무엇인가 원론적 논쟁이 오고간다. 문학의 효용이니 형상화 방법이니 들먹이며 각자가 추구하는 문학의 결을 쏟아낸다. 결국 강산도 변한다는 30여 년을 절필한 A에게, 세상을 놀라게 할 시를 지은 뒤 이 논쟁을 계속하자고 마무리했다. 고교시절 문예부장에 각종 대회 장원을 휩쓸었던 A이니, 그 실력이야 인정하나 그간 손 놓은 세월의 공백을 얼른 채워보라는 독촉이었다. B 역시 창작물에 너무 싶게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글을 쓰면서 꾸준히 제 갈길 가겠다고 다짐한다.


 A도 B도 진심으로 시를 사랑하고, 진정한 시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선 같은 빛깔이다. 시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낮은 세상도 보이고, 가려진 추악한 것도 보이고, 빛나는 아름다움도 보인다고 믿는 그들이다.


선배, 제가 선배 1호 찐팬인거 아시죠?


 헤어져 멀어져 가는 선배에게 A가 손나팔을 하며 크게 외친다. 좀 전의 포옹으로는 부족한 마음을 전한다. B는 뒤돌아 선 체 한 손을 번쩍 들어 보인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들은 오늘 밤 어떤 시를 써 낼까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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