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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담 Jul 24. 2024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너무 순진했다

-산생님, 딱 적임자라니까요.

아니, 막말로 ○○ 선생도 했는데, 선생님이 못하겠어요?

그저 그 자리에 앉아만 있어도 빛 날 것 같은데.

우리 잘 해 봅시다.


-아니, 해 보지도 않은 일을 어찌 자꾸 하라시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저보다 그 자리를 원하시는 다른 분들께 맡기시면 더 잘 하지 않을까요?


-○○ 부장님이 적극 추천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요. 이번 경험이 앞으로 비약에 도움이 될 겁니다. 능력 발휘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래, 익숙한, 해 본 일만 하는 건 편하겠지만, 앞으로 그 일만 하리란 보장도 없다. 믿고 맡겨주시니, 한 번 해보자.


그렇게 총괄책임자 자리를 맡게 되었다.


나의 순진한 판단이었다.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보려하지 않아 못 보았던 사람들의 민낯을 봐야 하는 고충과 어떻게든 완수해야 하는 업무 수행에 잡음이 없을 수 없었다.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업무를 분배하고, 모든  이를 이해시키고 만족을 주는 일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효율적인 업무 분장이라 판단한 일도 누군가에겐 부당하다고 느낄 수 있고, 최대한 배려한 업무 지시도 어떤 이는 고압적인 태도로 받아들 수 있었다.


 처음은 새로 편성된 각 부서 조직과 업무 파악에 집중하느라 다른 것에는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각 담당자들의 업무를 일단 모두 숙지해야 문제발생 시 원인 분석과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에, 그 파악으로 하루가 짧았다. 업무에 문제가 발생 부원들에게는 내가 신입 간부인 것은 중요치 않았다. 일단 그 일은 멈추고, 두 눈 반짝이며 해결책을 제시해 주길 기다린다는 것이다. 자기 일인 만큼 여기저기 대처 방안을 찾고 협조를 구하여 해결하려기보다는 두 송 놓고 상사가 지시해 주시기를 기다린다. 물론 "이 일은 저희 부서일이 아닙니다." 라는 말을 종종 듣기도 한다.


 지난 해까지 같은 라인의 동료들도 나의 승진을 칭찬하며, 나의 도전과 시작을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같이 잘해보자 협력을 다짐했으나, 결국 업무에서 나에게 책임을 묻게 되더라.  


-일이 많아서 어쩝니까?

-고생이시네요.


라는 하나마나한 위로 뒤엔,


-원래 그 자리는 그런 일 하는 겁니다. 잘 해결해 주셔야지요.

라는 대놓은 질타도 대놓고, 혹은 누군가의 입을 통해 뒤따랐다.


  오기인지 자존심인지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한 시간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했다. 그러다 몸이 먼저 지쳐 탈이 나고 말았다. 머피의 법칙인지 올 해 유달리 더 많은 사건과 고충이 뒤따른 것은 나만의 착각은 아니었다. 눈 여겨 보지 않아 몰랐던 선임자의 일은 막상 그 자리에 앉으니, 쉴 틈이 없는 업무의 연속이었다.


 후회막심의 고된 시간에 흔들리고 있을 때, 힘내시라고, 직장이 처음으로 맑게 느껴진다고,

감사하다고, 진정한 멘토이시라는 응원의 글들을 만났다.


 간사한 인간의 마음이라.....날 다시 웃게하고, 일어서게 했다.


 업무적 수행 능력의 향상은 부수적이었다. 결국 반 년의 새로운 자리는 사람을 새롭게 보고, 읽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좁기만 했던 나의 미시적 시야를 넓혀 주어, 전체적인 조화 속에서 각자의 일이 잘 수행될 때 빛을 발함을 알게 되었다. 맞물린 톱니의 전체 틀을 알고, 어디로 가야할 지의 방향을 알게 해 준 귀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약하며, 본인에게 위해를 느낄 때는 한마디의 말도 칼이 되어 상대를 찌를 수 있음을 알았다. 그저 해맑게 주어진 업무만 수행하고, 완수했을 때 보람이나 칭찬의 기쁨으로 만족했던 때와는 달랐다.


결국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었다.

앞으로 더 달라질, 더 다져질 나를 기대하며 나를 담금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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