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담 Aug 03. 2024

[가제본서평]너의 여름에 내가 닿을게/창비

 누군가가 꺼져가는 나의 생을 다시 살려준 대가로 그는 생을 마감하였다면,

그 사실을 아주 뒤늦게 알게 되었다면,

지금까지처럼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을까.

누군가를 대신하여 살아온 을 대충 산 죄책감

누군가의 죽음으로 살린 생에 감사하지 못한 죄책감

도저히 지금과 같은 삶을 이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꺼져버린 그의 존재를 알고 제대로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두 몫의 삶을 제대로 살아야 한다.


십이 년 전 열여덟 청춘의 수빈과 나은, 현재 열여덟 살을 살고 있는 은호와 도희


평범한 은호와 도희는 각자의 삶에서 자신들을 지켜보는 낯선 시선을 인식하게 되고, 다름 아닌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왜?

나를 왜?


이런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고, 한 사람에 의해 스토킹 당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의 접점을 찾으려 한다.


은호와 도희는 스토킹 사건을 파헤치는 중에 뜻밖의 과거 사건을 접하게 된다.

 소소리 마을에서, 십이 년 전 여름,

고교생 A군(18세)이 바다에 빠진 B군(6)과 C양(6)을 구조하고, 본인은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해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비극적인 사망 사고를 다룬 기사를 통해 자신들의 생을 이어준 수빈이란 존재를 알게된다.


이후 소설은 가파른 전개를 이어간다. 결국 스토킹 사건의 전모를 알기 위해 십이 년전 사건의 장소인 소소리 마을을 찾아간다.


 작은 해변 마을 소소리는 두 아이의 방문을 쉽게 알게 되고, 고향 아이를 앗아간 원망보다는 반가운 마음에 그들을 환대한다. 그리고 그들이 기억하는 수빈이란 한 생명의 생전 모습을 그대로 전해준다. 얼마나 밝고, 건강했으며, 행복한 아이었는지.


 괜찮은 인생이지 않아?


떠난 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모두를 저렇게 웃게 만들고 있잖아.


수빈이는 잘 살았어. 너희는 그것만 기억하고 떠나면 돼.


 아이의 마음의 짐을 덜어준 그들의 따스함에 가슴이 시렸다. 사실은 외지 관광객 아이들을 살리고 본인은 생을 마감한 고향 아이가 얼마나 서러울까. 그러나 대신 살려 준 그 아이들이 십이 년 후에 사실을 알고 추모하러 와 줬다는 사실을 기뻐하고 반겨주는 남은 이들의 마음이 감동적이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어떤 이유에서든 비극적인 사고는 발생하여 뉴스를 통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세월호나 이태원 사고와 같은 대형 사건은 물론 거리나 지하철 등 일상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고 등에서 다른 이를 구하고 정작 본인의 생을 잡지 못한 의로운 이들을 종종 접한다. 그런 경우 남은 가족은, 친구는, 혹은 같은 동네 이웃들은 어떤 심정일까. 의인으로 존경하는 것은 차후의 문제이고, 그 빈자리가 얼마나 허전하고 쓰릴까. 그리고 본인을 살리는 대신 생을 마감한 존재에 대해 알게 된다면, 살아남은 그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소설 속 수빈의 친구 나은은 그 빈자리를 견디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 방황하며 아파하는 인물로 나온다.


 그날 그가 살려준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렇게 소설 속 은호와 도희 스토킹의 실마리가 풀리고, 그 날 수빈을 잡지 못한 본인의 죄책감이 투영된 꿈의 미스테리한 반복을 통해 그를 다시 살릴 수 있다는 집착을 지니게 된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과거에서 한 치도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미약한 숨 한 번 더 못 뱉어, 세상에 입깁 한 번 더 못 흩날리는 것이라고. 스스로 어떤 미래를 꿈꿨든, 어떤 미래가 펼쳐질 수 있었든 죽음은 공평했다. 모두를 똑같이 과거에 못 박았다.- P162


 사람들은 이상하게 죽음이 친절하다고 생각해. 먼 훗날, 천천히 찾아와 줄 거라고. 사실은 이미 굉장히 가까이 다가와 있을 수도 있는데.....-P190


그를 살리면 결국 두 사이를 죽게 두는 것임을 알게 되고,  세 사람을 모두 살리는 방벙은 없음을, 즉 죽음은 어찌할 수 없음을 나은은  받아들이고 그것이 최선이었음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수빈의 믿음을 그녀 역시 믿게 된다.


 삶을 더 소중히 여기며,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더 감사히 여기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일상을 열심히 살아 갈 열여덟의 두 친구들, 일상에 버티고 있는 더 많은 은호와 도희, 그리고 나은과 같은 아픔을 지닌 이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어떻게 흘려갈 지 모르는 우리네 삶을 감사하자. 나의 현재가 그 누군가의 희생으로 인한 미래일 수도 있음을.


#너의여름에_내가_닿을게 #가제본읽기 #기대평 #창비 #안세화 #독서후기 #청소년소설

매거진의 이전글 [독서후기]프란츠 리스트:피아니스트의 탄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