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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담 Jul 15. 2024

[독서후기]프란츠 리스트:피아니스트의 탄생

프란츠 리스트의 섬세한 초상

 나이가 켜켜이 쌓일수록 클래식이 편안하고, 가까이 하고 싶으나, 클린이인 나로선 아직도 여전히 어렵다. 어려서부터 가까이 하며 생활 속에 정착되지 못한 클래식은 뒤늦게 삶의 행복으로 매료된 예술이나, 공부하듯 감상하려니 더욱 멀고, 할수록 더 멀어지는 느낌이다. 서양 음악사 및 이론과 용어는 물론 그 많은 클래식 악기의 소리 구분조차 쉽지 않다. 그저 가슴으로 느끼기엔, 머리가 '알고는 듣는거니?'라며 늘 반박한다. 기본은 익히자며 나름 노력 중이다. 앎에서 아름다움을 더 풍부하게, 세심하게 느낄 수 있음을 알기에.

 물론 알든 모르든 특히 클래식은 현장에서 직접 듣는 감흥을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다. 요즘은 제법 대중화되어 파워티켓팅을 자랑하는 국보급 연주자들도 많다. 언제 그들의 연주를 직접 들으며 감상하게 될지 모르나, 늘 도전은  보나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웅장한 하모니의 관현악단 오케스트라도 좋으나, 실내악이나 리사이틀 규모의 연주가 더 좋다. 잔잔하게 시를 읊듯 건반과 일체된 피아노 연주도 매력적이고, 빠른 손놀림으로 혀를 내두르게 하는 비르투오소적 연주는 황홀하다.

 이런 피아노 리사이틀이 바로 프란츠 리스트에서 비롯되었다 하니, 이 책은 그의 삶의 일대기를 통해 섬세하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책으로 나에게 딱이다.


 19세기의 문화 현상을 대변하는 리스트를 두고 "리스트는 19세기 음악의 축도이다"라 칭한다. 현대 문화예술을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리스트가 활동한 19세기의 토양 덕분이다.

 준수한 외모는 물론, 그의 탁월한 대화술과 고결하고 성실하며 공손한 그는 사교계의 별이었고, 뭇여성들의 아이돌이었다.

 유명한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은 리스트가 살롱에 등장하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가 살롱에 들어오면 부인들은 마치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꼼짝하지 못했다. 일제히 일어선 그녀들의 얼굴에는 햇살이 비치는 듯했다.  
-P75


  현대 유명가수들의 콘서트에서도 극성팬들의 난동과 구경 중 기절하기도 한 것이  뉴스거리이듯, 19세기 리스트가 그 시초였다. '리스트 열병'은 당대 사회현상으로, 귀족사회를 열망하는 부르조아 여성의 스노비즘에 의해 탄생한 클래식 열풍은 리스트에서 정점을 찍었다. 그의 손에 키스 한번 받으려 무릎  꿇고, 그가 마시다 남긴 홍차를 자신의 향수병에 붓고....그의 연주에 열광한 나머지 기절까지 하는 여인들.
  

위대한 두 영혼 : 쇼팽과 리스트

 쇼팽과 리스트의 순수한 우정을 섬세하게 다룬 것 역시 이 책의 매력 중 하나였다.
둘은 청춘 시대를 같이 보낸 시대의 피아니스트였고, 우상이었다. 최고의 라이벌이었지만, 경쟁 상대는 아니었다. 그냥 다른 두 음악가로 서로의 진가를 알아보고, 존중하고 서로에 감탄했다. 피아노라는 악기가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한계에 도전하고 근대 피아노 음악의 스타일을 완성한 두 사람의 깊은 관계는 그들의 탄생 200여 년이 지나서야 겨우 밝혀지고 있다.
  쇼팽이 오롯이 피아노로만 표현할 수 있는 소리를 추구했다면, 리스트는 피아노를 초월하여 장대한 교향학적 스케일로 실현하고자 했다. 두 사람은 가는 길이 달랐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했다.

  나는 연주회 체질이 아니네. 청중이 앞에 있으면 겁이 나거든. 호흡이 거칠어지고 숨이 점점 차오르며, 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위축되고 말지. 그러나 자네(리스트)는 연주회와 어울리네. 청중을 매혹시키지 못할 때조차도 그들을 압도할 수 있으니 말일세.   -리스트가 쓴 <프레데리크 쇼팽> 중 쇼팽의 말 -P206

  쇼팽의 천재성은 참으로 마술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와 어깨를 견줄 자는 아무도 없지요. 예술의 하늘에는 오로지 한 사람, 그가 홀로 빛나고 있습니다.
-말년의 리스트가 쇼팽에 대해 남긴 말 -p222

 콘서트 피아니스트, 투어 피아니스트라는 칭호를 받으며,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였던 리스트는 35세 젊은 나이에 은퇴 공연을 마치고, 대문호 괴테가 머물렀던, 독일 바이마르에 정착하여 궁정 악장이 되어 작곡에 초인적인 에너지를 쏟는다. 그리하여 음악사에 남을 '교향시'와 '리사이틀'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콧대 높은 거만한 이기주의자라 불리던 바그너를 지지하고 후원하기도 했다. 26년 세월을 쏟아 완성한 바그너의 대작 <니벨룽의 반지>를 공개하던 날 참석한 리스트에게 "이 인물이 없었다면 아마 오늘 나의 음악은 단 한 음도 울려 퍼지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연설로 감동을 전하기도 했다. 또한 이런 바그너 사랑은 리스트의 딸 코지마에게 이어져 결국 남편과 헤어지고 그와 재혼을 했으며, 손자 지크프리트에게까지 이어져 '바그너 제국'을 건설한다.

 누구에게나 배움의 기회를 열어두었던 리스트, 그 덕에 20세기에 이름을 날린 대부분의 거장 피아니그트들은 그의 교실의 문을 두드렸다. 수백에서 수 천까지 예상하는 그의 제자들에게 스승인 그가 남긴 말은 깊고 심오하다.

  젊은 시절의 나는 빨리 결과를 내고 싶어서 달리지도 않고 도약을 했네. 내 이름을 알리려는 일념 하나로 지름길을 택해 목표지향을 향한 것이지. 그러나 지금은 아닐세. 논리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찬찬히 밟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네. 나는 운이 좋아 성공했지만, 자네들에게는 내 흉내를 내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네. -미국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윌리엄 메이슨이 전한 스승 리스트의 말 - P243

 그리고 실제 제자들이 기계적인 주법, 기술에만 치우치는 것을 매우 싫어하고, 경계했다는데 그런 그가 현대에는 비루투오소로 기술의 화신으로 많은 피아니스트가 그를 모방하여 인기를 얻으려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 자체이며 그로선 슬퍼할 일이리라.


 셀 수 없는 영광과 죄절, 칭찬과 굴욕으로 지친 그는 말년 로마에서 성직자의 길을 선택한다.

 살아 있는 모든 귀한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고, 세상을 떠난 모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잠들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예술이자 목적입니다.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잃은 상실감과 허무에서 종교가 유일한 구원이라 생각했으리라.


나는 분명 실패한 천재이다. 때가 되면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영광으로 가득찬 생이라 여겨지는 그의 삶 이면에는 이해받지 못하는죄절과 무념, 비웃음을 오롯이 견디는 고통이 함께한 것이다. 오히려 그리하여 더 굴하지 않고 바쁘게, 쉼없이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질풍노도의 삶을 산 리스트였다.
말년에도 규칙적이고 혹독하게 쉬지 않고 스스로를 혹사시킨 이유는 하나의 신념 때문이었다

 천재는 사회에 봉사해야 한다.

 오랜 혹사로 그의 몸은 여러가지 병으로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오로지 정신력으로 버티며 자선 활동과 교육에 매진했다.

 바그너의 수호자이자, 바그너에 빠져 남편을 버리고 그와 결혼 한 딸 코지마가 있는 독일 바이로이터에서 1886년 7월 31일 리스트는 생을 마감한다. 평생 조국도 모국어도, 자신의 집을 갖지 않았던 그의 삶에 걸맞는 마지막일까.

 클래식 음악이 '현재'였던 시대에 '과거 ' 음악을 유럽 방방곡곡에 널리 알렸고, 그 당시 음악가들이 '현대'를 살고 있을 때 이미 '미래'로 눈을 돌렸다.

 나는 음악을 하면서 내가 던진 창이 미래라는 까마득한 하늘로 날아가기를 바랐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이 창이 매우 훌륭해서 땅으로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더 바랄 것 없습니다.     -P277

 연주회에서 난해하고 화려한 연주를 했던, 그로 인기를 누렸던 피아니스트, 여전히 그를 닮으려는 많은 연주자들의 화려한 기법에 감탄하며 그를 비르투오소로만 알았다. 이 책을 읽고 리스트의 삶을 통해 그의 음악에 평생 쏟았던 열정을, 진심을 알게 되어 평소보다 더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아니 단순한 팬이 아니라 존경심까지 지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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