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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육지 사람의 이직 일기.

1. 하루를 길게 보내는 도전, 누군가는 부러워할지도?

by 브나로마드

나는 하루를 36시간처럼 잠들지 않은 날들을 제주도에서 1년 동안 지냈다. 4년 전 모든 것이 동글동글한 여성과 결혼을 하고, 다음 해에 왜 나랑 이렇게 닮았을까? 의문이 드는 귀여운 딸을 얻었다. 여자 사람과 함께 사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한 팔에 쏙 들어오는 아기를 키워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심지어 아기가 울고 있는데, 내가 저 아기의 아빠인 것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와이프와 아기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매일 육아 출근을 했다. 물론, 새벽에 아기가 울 때는 자고 있는 척도 했지만, 돌이켜 보니 와이프도 알고 있었던 것 같아서 조금은 미안하다.


숨 가쁘게 바뀐 가정환경에 더해, 7년 동안 다녔던 회사에 염증이 더해갔다. 보험금 보상 업무를 하며, 수많은 민원인과 과중된 업무에 다른 동료의 일까지 도맡아 하자니, 곪을 대로 곪아 결국 터져버렸다.

풀이 죽은 채 집에 돌아와 동글동글한 와이프에게 "나 회사 그만둬도 될까?" 조심히 물어봤다.

안 그래도 깊은 와이프의 팔자 주름이 더욱 어두워졌다. 동글한 눈이 조금씩 붉어지는 모습을 보며, 방금 한 말을 취소하고 싶었다.

말을 번복하기 전에 와이프는 "그래"라고 답해줬다.

너무 고마웠다. 결혼을 하자마자, 아기를 낳고 5개월 정도 지나자마자.. 이런 말을 뱉는 남편이 얼마나 무책임하다고 느꼈을까? 돌이켜 생각해 본다.


대학교 시절 알게 된 형님에게 일자리 좀 소개해줄 수 있는지, 술 한잔 기울이며 부탁했다. 소개를 받고, 신입으로 들어가기엔 적지 않은 33세의 나이에 보험사 부지점장 자리를 얻게 됐다. 정규직을 벗어나 프리랜서로의 삶으로 직장 인생 2막을 시작한 것이다. 언제 잘릴지 모를 수 있다는 불안함도 있었지만, 업무는 과거의 직장보다 즐거웠다. 50~70대 설계사들과 같이 실적을 내기 위해 매일 소리쳤다. 나는 그들의 피 한 방울 안 섞인 아들도 되고, 글을 대신 읽어주는 선생님도 되고, 따뜻한 소식을 전하는 우체부도 됐다. 그러던 중 제주도에 영업 관리자를 채용하겠다는 회사의 소식이 들렸다.


제주도라는 신비로운 생활을 꿈꾸는 직장인들은 많겠지만, 연고가 없는 섬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한치에 망설임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문득 나는 생각했다. 처음엔 호기심과 로망이었지만, 점점 야망으로 변해가는 생각이다.


1. 제주도에서 살아보면 어떤 느낌일까? 매일 바다 보면서, 맥주로 마감하는 하루. 낭만 합격!

2. 제주도에서 실적을 내면, 회사에서 인정받고 지점장을 시켜주지 않을까?


나는 2번의 생각을 결론으로 와이프에게 또 풀이 죽은 채 말했다. 왠지 기분 좋고 열정에 가득 차 보이면, 생각 없어 보일까 봐였던 거 같다.

"우리, 이번에 우리 가족끼리 끈끈하게 살아볼 겸, 제주도 가서 살아볼까?" 와이프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듣게 되어 순간 초점을 잃었다.

멍해진 눈빛으로 제주도?라고 되묻는 사람에게 "응, 우리가 여행 갔던 제주도"라고 답했다.

왜 말을 꺼냈는지 자초지종 설명했다.

그러자 와이프는 또 "그래"라고 답을 해줬다. 이제 갓 태어난 아이와 육아에 혼과 청춘을 뺏긴 엄마 올바른 판단력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대신 와이프는 육아 휴직 기간을 마치고 3개월 근무 후에 제주도에 따라가겠다며, 먼저 가있으라는 큰 결심을 내렸다. 그렇게 나는 뜨거운 8월의 햇볕을 혼자 느끼며, 목포에서 6시간 동안 배를 타고 제주도에 상륙했다. 배에 있는 6시간의 시간 동안 한 번을 놓지 않고 생각했다. '진짜, 이게 맞나? 다시 돌릴 수 없을까?' 하며 수 천 번 마음속에 있는 벽을 때렸다. 그렇게 제주도에 있게 된 혼자는,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36시간처럼 느리게 가는지 모르겠다. 매일 자기 전에, 내일은 무슨 오름을 올라야 할까? 고민하며 기나긴 저녁에 옅은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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