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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라미 Jun 14. 2024

기간제가 아니라 프리랜서 교사입니다.

스스로 당당하게. 우리는 능력자입니다.

사직서를 내고 나의 고요는 오래가지 못했다. 12월에 사표가 수리되고 다음 해 2월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큰 빚과 엄마를 남기셨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빚을 갚아야 했고 엄마의 생활을 책임져야 했다. 세상은 내 마음 같지 않다. 울고 싶은 만큼 울지도 못하는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다시 학교 문을 두드렸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지원서를 들고 학교로 찾아갔다. 나는 근무 기간이 짧고 내 주거지와 거리가 떨어진 작은 학교들을 지원했다. 지원하는 곳마다 채용이 되었고 다행히 선생님들은 동문이라며 반갑게 맞아주셨고 경기도의 교육에 관심이 많으셨다. 내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고 나름 잘 지냈다. 몇몇 무례한 이들을 제외하면 사람들은 타인이 말하지 않는 것을 질문하지 않는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1년이 지나고 새로 옮긴 학교에서 나는 스스로 기간제라 말하지 않는 사건이 생겼다. 오기라고 쓰는 것이 내 마음을 더 잘 전달할 것 같다.

5학년을 담당하고 있었고 학교 홍보 업무를 맡았다. 잘해 나갔다.

규모가 큰 학교여서 점심시간 급식 차례가 월별로 바뀌어 좀 혼란스러웠다. 다른 날과 같이 아이들을 데리고 급식실로 갔는데 그달은 5학년의 급식 순서가 바뀐 날이었다. 자세하게 말해 준 이가 없어 뭣도 모르고 줄을 서 있었으니 내 실수를 인정한다.

그날 3년 차쯤 되어 보이는 젊은 여선생님이 나에게 와서 한 말이 귀에 꽂혔다.

“선생님, 기간제만 하셔서 학교 일을 잘 모르시나 봐요. 잘 모를 때는 눈치껏 다른 반 따라 하세요.” 잘 몰라서 그런가 본데... 그때 나는 18년 차 교사였다.

“선생님, 제가 실수해서 죄송해요. 선생님 몇 년 차세요? 저는 초등 1급 정교사에 18년 경력자입니다. 학교 일을 선생님보다 모를 리가 있나요. 기간제 교사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말씀이신데요. 사람에 대한 예의를 좀 갖추셔야겠어요. 이건 선배로서 드리는 충고입니다. 혹시 수업하시다 모르시는 거 있으시면 물어보시고요,”

그녀도 나도 날 선 대화가 오갔다.

 

나는 어쩌다 학교 일을 잘 모르는 기간제 교사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더 당당해지기로. 기간제 교사를 필요로 하는 자리는 많고 우리는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사람들이다. 일정한 자격을 갖추었고 선발된 교사들이다.

그 후 나는 내 소개를 기간제가 아닌 프리랜서 교사로 바꾸어 말하고 있다. 두 단어가 주는 느낌도 다르지만 나는 프로페셔널하다. 내 일에는 자부심이 있고 능력도 우수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는 서류를 들고 학교를 찾아다니지 않는다. 학교에서 먼저 찾아주는 프로가 되었다.


아나운서들이 인지도가 높아지면 프리선언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들은 다재다능하고 상업성이 있어 회사에서 주는 적은 월급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 일을 찾아 나가는 사람들이다. 일정한 능력이 필요하다. 프리랜서 선언을 했다고 모두 전현무처럼 성공하지도 않는다.


나는 교사라는 직업에서 프리를 선언하고 나와 맡는 자리를 선택하는 프로 프리랜서가 되었다. 이제 나에게 열패감 따위는 없다. 나는 글을 쓰는 작가이자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다.

오늘도 내가 제시한 조건을 수용해 준 학교로 출근한다. 프로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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