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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Sep 03. 2023

집, 돌아갈 곳이 있다는 감각

집이 없어졌던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했다. 집이라는 곳은 돌아갈 곳이 내게 있다는 감각의 상징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여지껏 집을 잃은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갈 수 있는,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곳이 존재함과 우리가 그곳을 '집'으로 부르고 있다는 건 삶을 이어나가게 해주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든든한 그라운드라는 뜻이니까. 집에 들어선다 하여도 느낄 수 없는 '집'이라는 익숙하지만 생경한 감각을 찾기 위해 애쓰는 것을 보면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집이 고픈것 같다. 우리가 매일 가는 ‘집’은 어디일까.




4년 전쯤, 전남편과 나는 처음으로 이혼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사실은, 남편이 내게 이혼을 요구했다. 세 살배기 아이를 안고 있던 나는 현재까지 나를 지탱해오고 있었던 삶이 부서져 내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두려움에 떨었다. 명목상 전남편의 이름으로 되어있던 집을 그는 자신의 소유라 주장하였다. 결혼을 하고 악착같이 모아서 마련한, 내 생에 처음으로 더 이상 타의에 의해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는 그런 집이었다. 그에게 나는 나약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만 지껄이는 이상한 사람이었고, 나를 자기 인생의 방해물 그쯤으로 여겼었다. 아이만 없었으면 진작 나는 이혼을 당하고도 남았을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집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남편 앞에서 우는 모습조차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울음을 꾹꾹 참으며 겨우 내가 간 곳은 방구석에 놓인 화장대 의자였다.


그날, 더 이상 나에게는 돌아가야 할 곳과 돌아가고 싶은 집을 상실했다.


아이는 엄마의 울음소리가 나는 곳으로 아장아장 걸어와 제 엄마를 찾았다는 기쁨에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보고서도 해처럼 맑게 웃었다. 눈물의 의미를 모르는 아기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안아 올려 끌어안고 있을 때, 내가 언제라도 돌아가고 싶은 곳은 바로 이 작은 품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집을 잃었으나, 내게는 언제나 항상 돌아갈 곳이 있다는 감각에 안도했다.




지난 4월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왔다. 더 이상 타의에 의해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는 그런 집으로.  이혼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집을 알아보는 일이었다. 나에게 가장 절실한 감각은 '돌아갈 곳'에 뿌리를 두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내쳐지지 않는 곳, 어느 누구도 집에서 나가라고 하지 못하는 곳이 나에게 필요했었나 보다. 지난 1년간 겪어내야 했던 일들을 이제야 돌아보니, 어떻게 견뎌냈을까 싶었던 일들이 수두룩했다. 다시 겪어야 한다면 절레절레 고개부터 흔들고만 싶어질 그런 일들, 다시는 인생에 없었으면 하는 그런 일들을 겪어냈다.


그러나, 감정에도 관성 같은 것이 존재하는지 여전히 불안과 돌아갈 곳의 부재함이 주는 공허에 괴롭다. 내게도 집이 생기면 사라질 것 같았던 불안은 여전히 내면에 자리하고 있고, 돌아갈 곳을 염원하며 철새들을 보면서 부러워했다. 철새들은 몇 달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고 비행을 한다고 한다. 몸무게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그들에게는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게, 그렇게 생의 힘을 소진해 볼 대상이 있다는 게 부러웠다. 지도 한 장 없이, 보이지 않는 칠흑의 밤바다를 날고 또 날아서 도달하는 그곳에 대한 확신과 갈망이 부러웠다. 매일, 나는 어디로 가야 하고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 것인지 물었을 때, 목적지를 말할 수 없는 오늘이 서글펐다.


감사하게도 아이는 엄마와 격주로 가지는 만남과 헤어짐을 받아들여 준 것 같다. 처음에는 짧은 만남 후에 찾아오는 긴 이별 같은 시간을 앞두고 아이는 불안해했다. 헤어지는 날 아침이면 말도 안 되는 일들로 짜증을 내고 골을 냈다. 우리는 계속 다시 만날 거고, 여전히 엄마는 너의 엄마이고, 네가 만나기 싫어도 우리는 죽을 때까지 계속 만날 수밖에 없다고, 세상에서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너뿐이고, 우리는 계속 다시 만날 테니,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우리 서로 씩씩하게 지내보자는 그 말을 아이는 받아주었다. "우린 또 만날거니깐 다음에 만날 때까지 잘있어!"하고 제 아빠에게 웃으며 달려간다. 씩씩하지 못한 건 나뿐일지도 모르겠다.


퇴근 후 돌아와 어설피 차려먹는 단촐한 밥상을 보면서, 지난날 보글거리는 된장찌개와 아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 철마다 올라왔던 김치, 식사 후에 디저트로 먹었던 과일들이 떠오르곤 했다. 밥이 익어가는 냄새, 도란거리는 말소리, 부산을 떨어야 하루 일과를 끝맺을 수 있었던 시간이 그리웠다. 집이라는 건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서 지치고 힘이 들 때, 마음이 쉬고 싶을 때 받아들여지는 마음의 안뜰을 내어준 사랑하는 사람들이 쌓아올린  감정의 공간이었다. 집은 사랑이라는 대지 위에 올려진 감정의 건축물이었다.


아이에게 집이 되어주고 싶었다. 언제든 돌아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곳으로. 말없이 품어주고, 마음의 뜰을 내어주는 그런 곳으로. 그리고 나 역시 돌아가도 되는, 허락된 마음의 안뜰을 꿈꾸며, 가꾸며, 사랑하며 살고 싶어서 조금씩 마음의 집을 지어보려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집을 찾는 여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집이라는 건 불변하지 않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은연중에 알고 있지 않을까.


언제나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삶의 황홀한 축복이 아닐까 싶다. 사랑하는 일과 받아들여지는 일이 부여하는 선명한 감각, 그걸 우린 '집'이라고 부르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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