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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Dec 25. 2023

HBD to,

기차역에서 만이천 원을 주고 두 송이의 꽃을 샀다. 하얀 파우더 가루가 내려앉은 듯 뽀얀 얼굴의 주황색 거베라와 크리스마스를 닮은 붉고, 초록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다른 한 송이를. '얼지만 않게 포장해 주세요'라는 부탁대로 온전히 집에 도착한 단출한 두 송이를 모양이 예뻐 버리지 못했던, 언젠가 꽃이 생긴다면 꽂아두려던 공병에 나란히 꽂아두었다. 온화한 장면이었다.


두 송이의 꽃을 앞에 두고, 처음으로 나를 위해 꽃을 사 왔던 어제의 내 마음이 대견했다. 더 이상 나는 나에게 인색하지 않게 되었구나, 더 이상 나는 나를 미워하지 않는구나.


하나의 색으로 형언할 수 없는 색의 무리가 어느 한 부분 같은 색이 없이도 부드러운 경계를 가진 채 한 송이의 꽃이 될 수 있다는 게, 이렇게나 서로 다른 색과 모양이 다른 높낮이를 가진 것들이 하나가 되어 '꽃'이라는 한 단어로 포개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황홀함이 일었다. 우리 모두가 각각 한 송이의 꽃이라는, 말처럼 서로 다른 것들, 자신 안에서 수없이 일어나고 스러지는 것들과 쥐어보고 싶은 것들, 외면하고 싶은 것들 사이의 넘실거리는 경계에 나라는 꽃은 어떤 모양이려나 묻게 된다.


온 세상이 축제의 인사를 건네고, 온기를 머금고 있을 듯 한 전구의 불을 밝힌다. 눈이 내려앉은 듯한 하얀 케이크에 초를 밝히고 서로에게 지나간 시간들의 수고로움과 다가올 시간들에 대한 격려를 건네는 시간이 지나면, 세상이 한숨을 돌리고 침묵하며 하나의 시간의 매듭을 묶어가는 시간으로 향할 때 꽃 두 송이를 앞에 두고 조용한 축하를 건넨다. 기특하다고, 잘 지나왔다는 격려의 인사와 빛과 색이 흐르는 두 송이의 꽃으로 마음의 불을 밝힌다.


나를 피어나게 하는 것들, 내가 관통해 온 지나간 것들, 여전히 건드려지기만 해도 시릿하게 가슴을 내리치는 일들, 언제나 앞으로도 삶이 끝날 때까지도 결연하게 붙잡아야 할 마음들,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놓아줄 수 있는 용기와 결심 같은 것들을 삶은 선물해주고 있었던가. 아주 큰 선물을. 여전히 산타 할아버지는 있는지도 모른다고, 여전히 어린 맑은 마음들에게는 선물을 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며 산타를 믿는 어른이 되어 살고 싶어 진다.


걸거침이 없는 순수함, 손에 만져질 듯 드러나는 투명함과 정성 어린 마음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들이는 정성, 자신을 어여삐 들여다보는 마음에 대해서. 그렇게 두 송이의 꽃이 전하는 마음을 써 내려가는 오늘에 감사하다.




# 꽃


꽃이라는 건

신께서 세상의 환희를

모양으로 만든 것이겠구나 싶어


색이 흐르고 있어

색이 번져가고 있어

꽃잎 위에서


환희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어

피어나기를 기다려


꽃이 피어난다는 건 무언가를 견뎌내었다는 말이야

때가 된다고 모든 꽃이 피어나는 건 아니니까


견뎌냄 이후에 오는 환희였나

초록의 손으로 온 힘을 다해 껴안고 있는

그 속의 여린 것들을 피워내기 위해

견뎌냈던 계절 뒤에

찾아오는 환희 같은 것이었을까


꽃이라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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