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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볼 브리야 Aug 29. 2021

동글동글한 이야기

엄마는 언젠가부터 나를 ‘다 큰 딸’로 불렀다. 다 큰 딸이 이렇게 어리광을 부려도 되니, 하면서도 내가 당신 품에 안기거나, 맛있는 음식을 해달라며 조를 때면 웃음을 머금은 채 그렇게 말했다. 


어떤 날은 엄마랑 낮잠을 자다가 이불을 발로 뻥뻥 찬 적이 있었다. 그럼 엄마는 선잠에서 깨어나 이불을 배까지 덮어주고, 한참을 얼굴을 보고 또 만지다가 다시 옆에서 잔다. 잠을 달게 자고 일어나면, 엄마는 “너는 아기 때도 그렇게 이불을 차더니 아직도 그러네. 배 차면 감기 걸려서 엄마가 몇 번이나 깨서 덮어줬어.” 하고 말해준다. “엄마가 뒤통수를 예쁘게 만들어주고 싶어서 왼쪽으로 눕히거나 오른쪽으로 눕히면 다시 정자세로 휙휙 돌아왔어. 그래서 지금 네 뒤통수가 납작하잖아. 너는 그때도 참 고집이 셌어.”


사실 여러 번 들어서 아주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엄마가 무한히 꺼내 보는 듯한 그 기억에 동조하듯이 뒤통수를 한번 쓰다듬고는 그냥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웠었다. 그땐 그랬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 이 머나먼 곳에서 맞이한 어느 한가한 주말 오후에 자꾸 생각난다. 납작한 뒤통수를 가진 나는 동글동글한 남자친구의 머리를 만지며 우리 엄마도 이런 예쁜 두상을 만들고 싶었을까 속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옆으로 이어지는 조금 작지만 둥그런 귀도 만져본다.


2주 만에 본 남자친구는 여전히 하얗고 귀엽다. 네가 좋아한다고 했던 스페니시 오믈렛인 또르띠야 데 파타타를 만들어 두었다며 냉장고에서 꺼내서 보여준다. 자기 일하러 가고 혼자 있을 때 데워서 먹으란다. 그러고는 예전에 헤어질 때 했던 말을 기억하듯이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하나씩 해주었다. 고등학생 때 엄마 말을 너무 안 들어서 집에서 쫓겨났으며, 그 이후로 무슨 일을 했고, 어떤 공부를 했는지 등을 거실 소파에 앉아 말해주었다. 삼촌이 있는 도시에서 일년 여를 살면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도 차분히 말해주었다. 또 다른 일을 하고 싶지만 그래도 연말까지는 이 일을 계속할 것이며, 언젠가는 와하까에 가서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날 마리오는 인내심 있게 서로의 이야기를 더 해야 한다며 나를 거실 소파에 붙잡아 두었다. 너무 졸린데도, 그가 왜 그런지 이유를 아니까 그 모습이 귀여워 열두시까지는 버텼다. 


토요일에는 오수랑 남자친구가 일하는 카페에 갔다. 오수는 내가 처음에 그랬듯이 카페에서 당당하게 맥주를 주문한다. 그런데 여긴 주류 판매는 하지 않는다. 오수는 아쉽지만 어쩌겠냐는 듯 다시 카푸치노를 주문한다. 


오수가 집에 데려다주는 길에 네 남자친구랑 너랑 보기 좋다며 말문을 열었다. 계산하러 갔는데 남자친구가 친구냐며 이름을 물어봤단다. 오수미, 이렇게 따라 하면서 기억하려고 했다며 '네가 좋아서 네 친구까지 알고 싶어 하는 거잖아' 한다. 오수는 곧 있을 자기 생일파티에 자연스레 나와 남자친구를 초대했다. 그럼 거기서 오수의 가족인 코코와 아케미를 마리오에게 소개하고, 또 나는 오늘 저녁에 마리오의 가족과 식사를 하고. 마리오는 택시를 기다리며 자기 앞에서 마시는 것처럼 술 털어 넣으면 절대 안 된다고 여러 번 말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반경에 자리를 내어주며 조금씩 스며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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