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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볼 브리야 Sep 06. 2021

비가 연이어 내리는 어느 날에

달이 넘어가면서 근무조가 3교대에서 2교대로 바뀌었다. 하루걸러 하루 출근으로 전보다는 살짝 타이트하게 근무한다. 아직 백신 접종을 완료하지 못했기에 좀 더 조심한다. 일일 확진자 2만명인 이곳에서 아플 수는 없다. 


출근은 자전거로 한다. 마이떼가 선물해주고 간 하얀 자전거를 타고 30분을 달리면 도착이다. 우기의 멕시코시티는 오후 6시경에 반짝 소나기가 쏟아지고 끝이지만, 근래 들어 아침과 늦저녁에도 부슬비가 내린다. 그 탓에 이번 주에 벌써 두 번이나 비에 잔뜩 젖었다. 집에 나설 때만 해도 이 정도는 괜찮지 하며 호기롭다가도 사무실 도착하면 영락없이 양 갈래에 미역같이 축 늘어진 머리를 치렁치렁 달고 들어간다. 


비가 많이 올 것 같아 자전거를 두고 가면 그날 오후에는 흐리기만 할 뿐 조용하다. 그래서 금요일 저녁에도 자전거를 끌고 나왔지만 결국 피자집에 두고 나왔다. 내일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찾으러 오겠다며. 


그리고 다음 날 어김없이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났다. 아무리 피곤해도 이 시간이면 눈이 떠진다. 이틀 전 마이떼가 보낸 긴 음성메시지를 들으며 정신을 차린다. 올해 크리스마스를 스페인에서 보내겠다고 알린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다.  


마이떼는 아주 발랄하게 “우리 가족 모두 네가 스페인으로 놀러 온다는 소식에 기뻐해. 우리 엄마가 너한테 메시지를 보낸 걸 알고 있어. 그리고 네가 답했다고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그런데 나는 그 내용을 알진 못해. 엄마가 안 알려주셔. 엄마가 네가 뭘 좋아하는지 물어봤어. 너는 크로켓, 또르띠야 데 파타타, 빠에야를 좋아하잖아. 그리고 다 잘 먹지. 우리 아빠는 너랑 어디를 가야 할 지 여행계획을 세우는 중이야. 그리고 우리 삼촌! 우리 삼촌은 유튜브에서 스페인과 한국의 다른 점, 멕시코와 한국의 다른 점 등을 찾아보며 아주 신이 나셨어. 너는 요즘 어때? 네 일은 어떻고, 룸메들이랑 집은 어때? 다 말해줘.”


3분가량 이어지는 긴 메시지가 새벽의 찬 공기를 무색하게 만든다. 그 아이가 마치 옆에 있는 듯 했다. 마이떼는 스페인에서 사랑을 잔뜩 받으며 지내는 것 같다. 엄마 음식을 아주 많이 먹어 조금 살이 올랐으며, 매일같이 바다로 놀러 나간다고 했으니. 마이떼의 어머니는 여행 계획을 알린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내게 문자를 보내셨다. ‘우리는 너를 알고싶은 마음이 참 크단다’로 이어지는 장문의 문자였다. 


기분이 좋아 몇 번 더 들으며 천천히 음미하다가 몸을 일으켜 락스를 뿌리며 화장실 청소를 해나갔다. 새벽 다섯 시 반에 열심히 청소해대는 모습을 마이떼가 보면 뭐라고 할까? 아마도 마이떼는 다 알고 있을 거다. 일 년 여의 시간을 같이 살면서 마이떼는 내가 쓰레기 수거차가 오면 크게 기뻐하며 봉지를 챙겨 들고 나가는 모습을 아주 많이 봤다.


요새 더할 나위 없이 잔잔하게 행복하다. 새로운 업무와 그를 행할 수 있도록 ‘계단’을 만들어주시는 멋진 상사분 덕분에 적절한 업무 성취감을 느낀다. 오후 다섯 시면 마무리하는 근무시간과 일 끝나고 간 헬스장에서 숨이 찰 정도로 운동하고 따뜻한 물로 샤워한 후 침대에 눕는 것도 좋다. 근처에 맛있는 빵집을 발견해 바게뜨와 당근케이크를 자전거 앞 바구니에 담아 집으로 돌아오는 것도 좋다. 꽤 다정한 남자친구와 함께 보내는 주말은 안락하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이야기를 푸에블라 길에 위치한 애니스 카페의 한줄기 햇빛이 비추는 곳 테라스에 앉아 글을 쓴다. 마침 가스통을 가득 실은 트럭에서 내린 아저씨가 휘파람을 요란하게 불어대며 혹시 모를 손님을 기다린다. 멋드러진 콧수염, 조금 많이 나온 배, 청바지, 경쾌한 표정 등이 영화에서 묘사하는 그것과 똑 닮았다. 토요일 오전의 평범하고 따스한 멕시코시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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