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볼 브리야 Sep 24. 2021

멕시코 독립기념일 + 추석 = 구월

이번 명절은 유난히 기분을 내고 싶어서 한인 정육점에 가서 양념 돼지갈비를 잔뜩 샀다. 사실 불과 이틀 전에 독립기념일을 맞아 남자친구 부모님 댁에서 멕시코 전통음식을 먹었는데, 그때 한국 음식 얘기가 나온 게 생각나서기도 했다. 양념을 잘할 자신이 없어 시판 소스를 사야지 마음먹었는데 마침 정육점에서 양념 돼지갈비를 두 개 가격에 하나로 준다길래 덥석 집어 들었다. 


하지만 주부 9단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의 눈치라도 있었다면 아마 안 샀을 텐데. 정육점에서 파는 양념육은 상대적으로 질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몰랐고, 게다가 할인행사까지 한다니. 집에 와서 요리해 보니 고기 양념은 조금 싱거웠고 육질은 질겼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추석 분위기는 냈다. 남자친구한테는 냉장고에 요리를 두었으니, 시간 날 때 가져다드리라고 했다. 


주말을 함께 보내고 다음날 새벽 네시에 집을 나섰다. 조금의 피곤함도 느꼈다. 음 그래도 나는 아직 누군가와 함께할 준비는 안 되어있구나. 주말 내내 붙어있는 건, 조금… 넘치네. 그래도 마리오는 그 새벽시간에 같이 따라 나온다. 밤새 비가 와서 추울 거라며 자기 옷도 가져와서 입혀준다. 걷다 보면 더울 텐데 왜. 하는 생각이 따라붙었다. 누군가를 만날 때 자기가 몰랐던 모습이 나온다던데, 지금 이 모습은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난 부분이다. 뭐든 혼자서 하고 싶고 도움받는 것을 극도로 피하는 모습. 이런 모습은 어떻게 고치나. 


열심히 보폭을 맞추며 같이 걸어온 마리오를 뒤로하고 차에 탔다. 잠이 오지 않아 말똥말똥 앞을 바라봤다. 멕시코시티는 어쩜 새벽 여섯 시에도 도로가 꽉 차 있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집에 와서 방문을 열고 익숙한 섬유 유연제 향을 맡으며 짐을 정리하고 뜨거운 물로 샤워했다. 여긴 오롯한 내 공간이니까 내 시야에 벗어나는 게 없다. 거기서 오는 묘한 안정감을 느끼면서 노트북을 켰다. 오늘은 무슨 일을 해야하지, 어떤 일을 해야하지. 이런 것들을 생각한다. 


주말에 미뤄둔 빨래를 하고 옥상에 널어두니 하늘이 쨍쨍해진다. 방금 전까지 추워서 털옷을 꺼내 입었는데 해가 뜨자 대지가 서서히 데워지며 따뜻한 공기를 만들어 낸다. 한국의 봄이 생각났다. 엄마는 이런 날이면 집 앞 공원에 나랑 동생이랑 사촌동생들을 데리고 갔다. 가끔은 쑥을 뜯어 그날 저녁에 된장국을 만들어 주셨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곳을 따라 부드럽게 걸었고, 땅을 유심히 보다가 네잎클로버를 찾으면 꼭 행운을 빌어주며 소중히 쥐여주었다. 엄마는 이렇게 세심하게 사계절을 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런 엄마를 두었기에 이런 날씨를 지나칠 수가 없었다. 간단히 짐을 챙겨 집 앞으로 나간다. 같이 사는 훌리에타가 근처 오렌지색 카페에서 일한다고 했었는데, 오늘따라 햇빛에 반짝이는 그 색이 정말 예뻐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왔다.


당근과 오렌지 주스를 반반 섞은 콤비나시온 주스와 진한 커피 한 잔, 베이컨을 넣은 오믈렛을 주문했다. 멕시코스러운 한 가지라면 조금 매콤한 빨간색 살사도 같이 나온다. 맛있게 한 끼를 잘 먹었다. 한낮의 멕시코시티는 따스롭고 경쾌하다. 오후가 되면 조금씩 흐려지면서 비가 세차게 내리지만 그건 또 그때 가서 생각할 문제다.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을 신나게 구경하는데 마침 남자친구한테서 문자가 왔다. 다정하고 감정에 솔직한 아이다. 나는 세심하게 젖은 머리를 말려주거나, 가끔 티비를 보다 잠이 들었을 때 머리를 넘겨주는 남자친구의 모습에서 엄마를 떠올린다. 왜 얘는 꼭 우리 엄마만큼 다정할까. 그래서 엄마의 모습이 겹치게 할까. 이게 맞는 걸까.


엄마는 꼭 나와의 시간이 유한한 것처럼 어루만졌다. 곁에 있어도, 얼굴을 빤히 보며 “이렇게 떨어져 살 줄 알았다면, 좀 더 내 품에 데리고 살걸”이라고 여러 번 말했다. 그건 내가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피곤에 절어 기껏 여름휴가를 받아놓고 와서는 집에서 낮잠을 잘 때도 그랬다. 엄마랑 서울여행 하려고 했는데… 읊조리며 결국은 잠드는 날을 반복할 때 엄마는 가만히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한국 그립지 않다고, 올해 3월에 다녀왔으니까 얼마 안 됐다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았는데 지금은 잠깐이라도 다녀오고 싶다. 집에 먹는 사람이 없어 올해는 동태전을 하지 않았다는 엄마의 말이 조금 아프다. 한국가면 좋아하는 반찬이랑 밥 두그릇은 먹을 수 있는데. 명절이라 그런가. 사람 마음이 유난히 약해진다. 


작가의 이전글 비가 연이어 내리는 어느 날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