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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볼 브리야 Jan 15. 2022

Aprovechar 당하는 외국인

우리도 사람들 이용해먹고, 단물도 빨고 그렇게.

한껏 멕시코에 취해 좋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최근 크게 한방 먹었다. 멕시코 은행이 보험 명목으로 다달이 돈을 뜯어가고 있었는데, 그 사실을 반년 후에나 알았다. 당연히 모르지. 은행 직원이 몰래 든 보험이니까. 


처음 계좌에서 수상하게 빠져나가는 돈을 발견했을 때는 그게 보험인지도 몰랐다. 몰래 보험을 들어놓은 직원은 치밀하게도 내역을 볼 수 없도록, 보안사항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어리벙벙하게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자, 보험가입 전화를 받았는지 물어보고는 여기는 가입 안 한다고 해도 그냥 등록해놓는 경우가 많다며 보험에 가입된 거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 수상한 출금 내역이 보험이라는 것을 알았다. 최근 보험 가입하라는 전화를 많이 받긴 했다. 그냥 느닷없이 산탄데르 은행이라고 소개하면서, 내 이름을 정확하게 읊으며 당신의 안전을 위해 보험을 들지 않겠냐고 묻는다. 나는 관심 없으니, 절대 절대 들지 말라고 힘주어 말했는데도 보험을 가입시켰다고? 어이가 없었다. 


하루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은행에 가(솔직히 시간 없어서 돈 빠져나가는 거 알면서도 두 달은 그냥 방치했다) 이거 내역이 뭐냐고 물어보니, 음 보안 설정되어 있네? 내가 유추해 보자면 보험 같은데? 근데 보험 취소는 내가 못해. 고객센터에 전화해~ 한다.


그 유들유들하고 나는 어쩔 수 없다며 어깨를 으쓱하는 제스처란… 하지만 여기서 화 내봤자 내 손해다. 이미 모니터를 자기 앞으로 휙 돌린 채 나가길 기다리는 사람한테 더 이상의 대화는 무리다. 


50분 기다리고 얻은 해결책이 고객센터에 전화해~라니. 허탈했지만 다시 고객센터에 전화했다. 억겁의 시간 끝에 연결된 고객센터는 몇 가지 정보를 묻더니 네 정보 불일치라서 시스템이 안 열려. 은행에 가서 네 보험정보 확인해 봐, 한다. 


아,,,,, 정말 그때 너무 속상했다. 이게 얼마나 길어질지 생각하니까 참 답답했다. 보험도 자기 마음대로 들어놓고 취소도 안 시켜주는 날강도놈들… 멕시코 은행원 불친절은 상상 초월이다. 한번은 카드 분실 후 은행에 가서 “방금 ATM 기기에서 돈을 뽑고 카드를 놓고 갔어. 분실신고 좀 해줄 수 있어?” 하니까 어깨 으쓱하며 우린 그런 거 안 해. 고객센터에 전화해, 한다. 연결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하니까 응, 고객센터에 전화해. 그러곤 은행 입구에 놓인 전화기를 가리키며 저거 수화기 들고 1번 눌러. 그리고 기다려. 


멕시코 오기 전 들린 한국은행에서는 A 방법이 안되니까 다른 파트 전화해서 B 방법도 시도하고 C 방법도 알려줬는데.. 본인도 모르게 보험을 팔아먹어? 내가 외국인이라서 정말 우습게 봤구나. 나는 그래도 멕시코 좋다고 그냥 바보같이 웃고만 다녔네. 바보같이 사기당한지도 모르고. 


그날 한국어 수업에 들어가 이런 일이 있었다고 얘기하자, 아 선생님 산탄데르 그런 은행으로 유명해요, 한다. 우리 엄마도 카드 바꾸러 갔는데 그 은행원이 보험 안 들 거면 카드 새로 수령하지 말라고 그랬어요. 


또 다른 학생은 우리 엄마는 나이가 많으신데 카드 분실로 새로 발급받으려고 하니까, 보험 하나 들어야 자기가 도와준다고, 그거 싫으면 앱으로 받으라 했어요. 한다. 


멕시코 은행 산탄데르는 외국인 뿐만 아니라 내국인도 사기 치는구나. 단지 나에게는 보험 들겠다고 말 안 한 것 뿐. 그래서 내게는 좀 더 수월히 팔아먹었겠구나. 


그 다음날 은행 계좌를 만든 지점으로 가서 보험 정보를 요청했다. 멕시코는 이런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계좌 만든 지점….가면 좀 더 많은 걸 할 수 있다. 계좌 없애는 것도 딱 그 지점에서만 가능하다. 


보험 가입일은 딱 반 년 전 은행 간 날짜다. 다이어리 뒤져보고 알았다. 그때 당시 통장 거래내역서를 청구하러 갔는데, 은행 직원이 멕시코 비자, 여권 등을 상세하게 요청했다. 의심이나 했겠나, 본인확인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놈이 보험 들어놓으면서 급했는지 세금번호 같은 건 날림으로 적어놨다. 보통 이름과 연동되어서 나오는데 그걸 XXXXX0XXX 이런 식으로 적어 놓았다. 그리고 메일 주소는 간 크게도 은행 직원 본인 메일로. 내가 매달 돈 호구같이 잘 내는지 보려고 그랬나.


다행히 두 번째로 찾아간 은행직원은 얘기를 듣자마자 고객센터에 전화 걸어 직접 해지해 줬다. 환불받을 수 있도록 편지 쓰는 데 도움도 줬다. 


그런데도 이런 헛헛함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 겨울이 없는 멕시코가 좋기도 하면서 가끔 이렇게 눈이 뒤집힌 채 외국인을 벗겨 먹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싫다. 예전에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멕시코가 가르쳐준 대로 하자. 우리도 좀 aprovechar 해먹자, 하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우리도 사람들 이용해먹고, 단물도 빨고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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