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_류시화

Readn_grow 네 번째 책 이야기

by 지금은 디자이너
내가 생각한 인생


어릴 적 장래희망을 적으라고 하면 그 종이를 앞에 두고 꽤나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그땐 마치 적어낸 직업에 따라 내 인생이 그대로 펼쳐질 거라 믿었던 것 같다. 방학이 되면 촘촘히 생활계획표를 짜듯, 내 인생도 철저히 계획하고 준비하면 내 생각대로 삶이 펼쳐질 것이라고 믿었다.


나의 이러한 믿음이 깨어진 순간이 언제였는지 생각해보려 하지만,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건 어느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계획한 일들이 의지와 다르게 하나씩 어긋나는 그 작고 큰 순간들이 반복되면서 나도 천천히 깨닫게 된 것 같다.


'아,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구나.'


자신이 꿈꾼 미래가 확실할수록, 기대했던 미래에 대한 희망이 클수록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나도 강한 의지만 있다면 나의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삶이라는 거대한 산이 있다면 그걸 마치 극복해야 할 대상처럼 대한건 아닐까 싶다. 그 거대한 산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굴곡이 아주 많고 안개로 뒤덮여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절벽이 곳곳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삶은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이 기대한 것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인생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다른 인생'이다.


그 다른 인생의 기쁨은

부스러기로 즐기는 것이 아니다. “


저자 류시화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삶에 대해 어떠한 기대도 하지 말고 그 안의 숨은 것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려보라고 말이다. 그의 다른 책들에서 했던 말들과 같은 이야기다. 우리는 지금 지구 행성에 잠시 여행온 여행자라고 말이다. 당신이 생각했던 인생이 아님을 실망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그 하루하루가 난해하면서도, 참 설레고 감동적일 것이라고 말한다.


더 깊어진 생각들


이 책에는 류시화 시인의 신작 산문 42편이 담겨있다. 그의 다른 책들을 여러 번씩 읽어서 그런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꽤나 익숙한 내용이었다. 분명 특별하거나 새로운 이야기가 가득 찬 것도 아니고, 가볍게 읽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글을 읽는 내내 저장하고 싶은 문장들이 너무도 많아서 계속 밑줄을 긋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전작들보다 훨씬 힘을 빼고 쓴듯한 느낌인데, 모아놓은 문장들을 다시 펼쳐보고 읽고 또 읽을수록 훨씬 깊고 넓어진 그의 생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깃털의 가벼움이 아니라

새처럼 가벼울 수 있어야 한다.”


온통 너의 발을 잡아당기는 모래 늪이 널려있지만, 가볍게 걸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길고 긴 깨달음을 찾아가던 여정을 통해서 그가 느낀 것은 경쾌하게 살아가라는 것이고,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참 단순한 일인데 우리는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님에 괴로워하고, 그렇게 스스로 괴로워하는 마음을 무겁게 어깨에 얹고, 우리는 참 가볍지 못한 인생을 살아간다.


나는 그처럼 적극적으로 방황하지 못해서인지, 아직은 여행하듯 사는 인생을 살지는 못한다. 잠시 이곳에 놀러 온 여행자의 마음으로 가볍게 살자고 수백 번 되새겨 보지만 현실의 작고 큰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장들을 자꾸만 찾아보게 된다. 온전히 그 삶을 살 수는 없어도 조금이라도 가까이는 다가갈 수 있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나는 계속 시도해 볼 예정이다.


좀 더 가볍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그의 말처럼

우리는 시도하고,

시도하다가 생을 마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