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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쓰지 Jul 23. 2020

죽고 싶은 것 치고는 너무나 악착같은

사실은 너무나 살고 싶은

검은 개를 키우는 것은 마음속에 항상 시한폭탄을 갖고 사는 것과 같다. 동그랗게 썩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언제라도 삶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마음이 하루하루를 아쉽게 만들기도 한다.


이 사람하고 나하고 만나는 것이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 내가 진심을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늘 밖에 없겠다. 이 장소에 오는 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 사진을 많이 찍어놓아야겠다.


요즘 나의 상태는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게 만든다. 내 상태를 알고 있는 친구들에게 농담처럼 ‘오늘 나를 보는 것이 인생에 마지막일 수도 있어’라고 말하면, 친구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말한다. 너는 죽고 싶은 사람 치고는 너무 악착같이 살아.


죽고 싶은 사람은 치고는 너무 열심히 사는 건 맞는 것 같다. 매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남들에게는 삶을 아끼는 태도로 보였던 모양이다. 지난 1년간은 내가 언제 또 죽고 싶을지 모르니까 누구보다 쉬는 날을 스케줄로 빽빽하게 채워놓았다. 열심히 운동하고, 새 취미도 만들었다. 글도 써보고 주중에는 일하는 데에 집중했다.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얼마 없는 돈으로 재테크도 열심히 했다. 참 바쁘게 살았다.


뒤돌아보니 내가 왜 그렇게 살았을까. 뭐 죽고 싶은 애가 이렇게 분주하게 살아내고 싶었나. 스스로도 아이러니하게 바쁘게 살았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사실 너무나 살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거라도 안 하면 내가 진짜 죽을 것 같아서. 나를 구하고 싶었어서.


혼자 가만히 앉아있으면 어떻게 죽어야 할까 생각했다. 내가 죽고 나면 남겨질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상처 주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나는 너무 이기적인 사람이라 어떻게든 상처 받을 것을 알면서도 생각을 끝낼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은 삶에 기대하는 바가 없었다. 나는 너무 겁쟁이라 앞으로의 인생에서 도망치고 싶다. 도망친 후에 후회하고 싶지 않아 매일을 의미 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내가 죽기 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적어봤다.


-고양이 키우기

-왼팔에 타투하기

-흑백사진 찍기

-제주도에 한 달만 살아보기

.


리스트를 모두 적으니 웃음이 났다. 어쩜 이렇게 소소하고 이기적인지. 바보 같았다. 이렇게 마지막을 생각하고 산다는 건 좋은 점도 있다. 내일만 바라보면서 열심히 사는 것. 검은 개와 나와의 비밀로 하루를 살아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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