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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글이 Aug 25. 2023

정겨운 맛! 보글보글 청국장

찌개 듬뿍 넣고 비빔밥 만들어 먹어요

내가 다녔던 중, 고등학교는 집에서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었다. 난 겨울만 되면 버스 타고 학교 가는 게 너무 싫었다. 집에서 거의 매일 청국장찌개를 끓여서 방문을 꽁꽁 닫아도, 옷장에 숨겨놔도 오백 년 묵힌듯한 콩냄새가 교복에 배였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에도 꼴 보기 싫은 청국장이 상에 올라와 있었다. 교복에 들러붙지 않게 밥도 안 먹고 나와 버스를 탔는데, 어떤 애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되고 말았다.

"이게 무슨 냄새야. 청국장으로 목욕을 했나."

나를 콕 집어 말한 건 아니었지만, 너무 부끄럽고 짜증 나고 우울해서 집에 도로 가고 싶었다.

섬유탈취제도 백기를 드는 청국장 냄새. 그것 좀 그만 끓여 먹자고 메아리를 울리고 싶어도 집안 어르신인 할머니가 직접 만드시는 것이기에 장독대만 째려보다 말았었다.



그랬었던 내가 지금 청국장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이렇게 구수하고 맛있는 걸 왜 미워했을까"하면서. 입추가 지났으니 더워도 가을은 가을. 올해 국물요리는 청국장으로 시작해야지.



우리 집 청국장에는 김치, 채소, 두부만 들어간다. 그릇 안에 있는 백김치는 2주 전에 담근 것이다.  저걸 천연소화제라 생각하고 매일 같이 먹는다. 스파게티, 볶음밥, 떡볶이 등에 곁들여도 궁합이 잘 맞는다.

채소는 더하거나 빼도 괜찮다. 양파, 버섯을 넣어도 좋은 청국장찌개. 이제 보글보글 끓여보자.


우선 생수 500ml에 손질 국멸치 반줌을 넣고 육수를 낸다. 우리 집은 저 멸치를 따로 건져내지 않고 국물과 같이 먹는다. 살밥이 있는 멸치를 버리기 아깝고, 구수함이 더해져 음식맛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내장과 응가를 깨끗하게 발라낸 다음 냉동보관하는데, 국물을 내기 전에 전자레인지에 30초 정도 돌려서 수분과 비린내를 날려주고 있다.


멸치육수를 내는 동안, 덩어리 상태인 청국장이 육수에 잘 풀어지도록 밑간을 간단히 해서 버무려 놓는다.

어느 정도 양념이 되어 나오는 청국장에는 많은 양념을 하지 않는다. 다진 마늘 1수저에 고춧가루 1수저 넣어 칼칼함 추가. 멸치액젓 1수저 넣어 깊은 맛을 낸다.


앗! 백김치도 같이 넣는 걸 까먹었네. 김치와 청국장이 어우러지도록 바락바락 무쳐 놓는다.



난 콩과 김치 씹는 맛을 좋아해 청국장을 오래 끓이지 않는다. 10분 정도 끓인 멸치육수에 호박을 먼저 넣고 살캉하게 익을 정도로 끓인다. 다음 아까 버무려놓은 청국장과 김치 넣기.


청국장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두부를 넣는다. 밥 비벼 먹기 좋게 두부를 깍두기 모양으로 써는 대신 손으로 으깨서 바로 넣었다. 강된장처럼 국물이 없는 찌개 스타일을 좋아하면 으깬 두부의 양을 좀 늘려도 되겠다. 난 '국물파'라 반모만.


두부 넣고 4분 정도 보글보글 끓이다가 맛보기 하고 소금으로 간하면


청국장찌개 완성!



청국장을 끓이는 날에는 '무조건 비빔'이다. 밥, 생부추, 청국장, 고추장 조금! 여기에 참기름 넉넉히 둘러 쓱쓱 비벼 먹으면 맛있어서 웃음이 절로 나온다.


청국장을 끓이고 나면 집안에서 '그 냄새'가 진동을 한다. 어릴 적에는 끔찍했었던 콩냄새가 이젠 정겹게 느껴진다. 속도 편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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