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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글이 Oct 04. 2023

아빠의 정성! 오이지무침

바락바락 무쳐야 맛있어요

혼자 사시는 아버지는 여든이 가까운 연세에도

활력이 넘친다.

난 본가에 갈 때마다 놀라고 또 놀란다.

그 연세에도 집안을 어찌나 청결하고 반듯하게 유지하며 생활하시는지.

냉장고 상하거나 유통기한을 넘긴 것이 없을 정도로 식재료 관리도 빈틈이 없으시다.


아버지는 여행도 즐겨하시고

아파트 노인회 회장을 맡아 일하느라

여간 바쁘신 게 아니다.

그런 와중에도 제철 식재료를 손수 다듬고 씻어

일 년 내 먹을 저장반찬을 만들어

김치냉장고를 가득 채워놓으시곤 한다.

지난여름, 아버지는 오이지를 담그셨다.

손 큰  아빠. 오이를 한 접이나 사서

소금물을 부어놓으셨다.

익으면 무쳐먹게 조금 달라고 했었는데

이번 명절에 갔더니 기쁜 소식을 전해주셨다.

"오이지 다 익었으니 까먹지 말고 가져가.

 그냥 여기서 무쳐가든지."



집에 가져갈 오이지를 비닐봉지에 담다가

아버지한테 혼나고 말았다.

"국물 짜서 무치면 얼마나 된다고 그것만 넣냐?

입술에 바르고 말거얏?"

담에 와서 또 가져가기로 하고 우선 선발해서 가져온 오이지 12개. 무른 곳 하나 없이 어쩌면 이렇게

노랗게 잘 담그셨는지 감탄사가 나온다.


자! 아빠표 오이지를 썰어서 무쳐볼 건데

우선 쫑쫑 썰어주기. 오이지 국물을 짜면

쪼그라들 것을 감안해서 너무 얇지 않게 썰어준다.

썬 오이지를 물에 15분 정도 담가 두는데

중간에 물갈이를 한번 하면서 짠기를 뺀다.



물기를 쪽 뺀 오이지에 양념을 해보자.

다진 마늘 1수저, 쌀엿 또는 물엿 1수저, 매실액 2수저, 고춧가루 2수저 넣는다.



 오이지에 단맛을 스며들게 하고

고춧가루 색을 고루 입히려면

시간을 주면서 바락바락 잘 무쳐야 한다.


오이지에 남아 있는 짠기가 나와서

양념들과 어우러지도록 바락바락 무치기.

빨간 오이지무침이 좋으면 색이 나오는 걸 보면서

고춧가루를 추가해도 된다. 


단맛과 고춧가루 색을 입힌 오이지에 대파 썰어서 반줌  넣는다. 오이지를 물에 담근 시간에 따라

짠기가 너무 빠져 싱거울 수 있는데. 이때 맛보기하고

싱거우면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그러고 나서 깨소금 듬뿍, 참기름 조금 뿌리고 나서

 살살 무쳐 마무리.


오이지 자체가 맛있게 익어서

간단한 양념만으로도 별미반찬이 된다.

누룽지 푹푹 끓여서 같이 먹었더니 쉴 새 없이 들어간 오이지무침. 좀 더 가져올 걸 그랬다.



사람은 늙을수록 병원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셔서

도심생활을 택하셨지만.

아버지가 사는 아파트 베란다를 보면

시골집에 온 듯 정겹기만 하다.


지난여름에는 홍고추를 실로 연결해

바람 잘 통하는 창문에 매달아 놓으셨다는.

가지, 무, 호박을 잔뜩 썰어

베란다 바닥에 펼쳐 말려두시기도 한다.


오이지부터 말린 채소까지

일을 줄이시라고 말씀드리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다.


"당장 먹을 것만 생각하고 살면 어쩌냐. 앞으로 먹을 것도 미리 준비해야지. 돈도 마찬가지야. 너 젊었을 때 부지런히 알뜰하게 모아 놔. 그래야 늙어서 사람이 기를 펴고 살아! "


마흔 고개를 훌쩍 넘기고 나니 피부로 느껴지는

아버지 말씀. 본가에 갈 때마다 자극 강하게 받고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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