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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글이 Aug 30. 2023

채소 듬뿍! 새콤달콤 미역초무침

술 끊을 때 즐겨 먹었던 사연 깊은 반찬

  지 얼마 안 된 지인들한테는 술을 못 마신다고 못 박아 말하지만, 사실 지독한 술고래였었다. 단주를 한 지는 5년째에 접어들었다. 술독에 빠진 이유? 혼자 반찬 만들기에 열중하며 반주로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한 술의 양과 횟수가 나도 모르는 사이 늘었던 것 같다.

술이 없으면 하루를 마무리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정신을 차리고 술과의 연결고리를 끊게 됐다. 절주를 해보려 했으나 음주에 제동을 걸 누군가가 없는 독거인이라는 점에서 단주를 결심했다.

브런치에 '나의 단주일기'를 쓰려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나도 힘겨워 차마 꺼내질 못했다. 다만 술을 끊으면서 자주 해 먹었던 반찬 정도는 소개해도 될 것 같아 하나 가져와봤다. 반찬 이름은 미역초무침이다.



미역은 술을 많이 마셨을 때도 자주 먹던 식재료였다. 황태채 듬뿍 넣고 뽀얀 국물 나오게 끓여 놓으면 최고의 안주이자 해장국이었다는. 단주를 결심하고 나서는 국 끓이기를 멈췄다. 한 잔 생각날까 봐.

그땐 짜고 매운 볶음부터 기름기 있는 김치전까지 '술을 부르는 음식'은 멀리하는 대신, 다양한 종류의 채소와 나물로 반찬을 만들어 먹었다. 미역초무침은 그중에서도 입에 잘 맞아 즐겨 먹곤 했다.


미역초무침을 만들어보면, 우선 건미역 반줌을 물에 불린다.


물에 불린 미역을 깨끗하게 씻은 뒤, 펄펄 끓는 물을 충분히 부어 2분 정도 둔다. 미역 특유의 비린내와 짠기를 줄이기 위해서다. 왼쪽사진처럼 색이 변하면 찬물에 헹궈 꼭 짜준 다음 먹기 좋게 썬다.


채소는 양파, 빨강노랑 파프리카, 오이를 길쭉하게 썰어 반줌씩 준비했다. 수분이 많은 오이는 아삭한 식감의 껍질 부분을 돌려 깎기 해서 썰어 넣는다.



양념으로 다진 마늘 1수저, 매실액 1수저 반, 진간장 1수저, 식초1수저 반, 설탕 반수저 넣고 골고루 섞기.


난 미역초무침을 할 때 미역과 오이에 양념장을 반 정도 넣고 먼저 무친 다음에 나머지 채소를 넣는다. 재료를 한꺼번에 무쳐 놓으면 미역과 오이가 겉도는 느낌이 들어 양념장 맛이 스며들게 3~4분 정도 시간차를 두고 있다.


오이와 미역에 맛이 들면 나머지 채소와 양념장 넣고 살살 무치기. 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해준다.


알록달록, 새콤달콤한 미역초무침.

정신이 번쩍 드는 빛깔과 맛이다.



이걸 해서 먹을 때마다 술 끊으려 몸부림을 치던 때가 떠오르곤 한다.


돌이켜 보면 난 알코올의존증 증상이 심각했었다. 숙취로 고생하면서도 마트가면 주류코너를 지나치지 못하고 술병에 손을 댔으니 말이다. 그때 병원에 가보진 않았지만 어쩌면 알코올중독이었을지도.


사람마다 의지의 차이가 있을 텐데, 내 경우엔 작심삼일을 반년 가까이 반복했었다. 마시고 후회하고, 마시고 후회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몸과 마음도 지치고. 그래서 술을 끊어야 한다는 생각보다 술 마시는 날을 미뤄봤더니 부담감도 덜하고 효과도 있었다. '미루는 습관'이 단주에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 셈이다.


지금은 술 냄새만 맡아도 고개를 돌리고 만다. 내가 술을 먹은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하고. 술자리 자체를 멀리하게 되면서 언제나 함께 할 것 같았던 친구들과도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사람을 잃은 대신 맑은 정신과 건강을 얻게 됐으니 살아갈 날을 위해서 아주아주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술을 퍼마셨을 때 둔했던 미각도 살아나 얻은 게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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