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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yD Jul 11. 2021

안도 다다오의 본태박물관, 제주

제주 서귀포시에 위치한 본태박물관은 온통 풀로 둘러싸인 1차선 도로를 한참 가다 보면 만날 수있다. 주변의 상권이나 바닷가와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 어디에서 오는 길이든 그곳과 조금 다른 느낌일 것이다.

내가 방문했던 때는 한창 장마가 시작되어 안개가 몹시 자욱했다. 한 치 앞의 중앙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뒤덮여 있었다. 

덕분에 빛과 콘크리트, 빛과 물의 조화는 경험할 수 없었으나, 안갯속에 갇힌 노출 콘크리트 역시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안개를 통해 한층 채도가 억제된 주변 자연환경은 건축과 더 잘 어우러졌으며 물리적 원근 외에도 수증기라는 층위가 더해져 오묘하고, 신선한 이미지를 자아냈다.





일본인은 주거공간에 있어 나무와 종이의 문화 속에 오래 살아왔기 때문에 그로 인해 섬세한 감정이 몸에 배어있다. 그래서 일본인에게는 콘크리트가 맞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섬세한 콘크리트를 만들기 위해 재료의 혼합비율을 실험했으며 거푸집으로부터 콘크리트 타설까지 나름대로 새로운 방책을 세웠다. -안도 다다오



노출 콘크리트의 대가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 한국에 닿아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공간과 자연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조화된다는 점도 큰 특징이지만,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봤을 때 재밌는 요소가 많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좁은 벽으로 둘러싸여 조금은 비효율적이게 미로처럼 돌아 들어간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을, 마치 긴 통로를 거쳐야만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는 점에서는 매우 효율적이다. 

전시장에 들어가는 입구

1 관부터 5관으로 나뉘어있으며 역순으로 관람한다. 한적한 외부와 달리 안쪽은 관람객이 꽤 있었다. 현대적인 건축 안에 우리나라 전통 의상이라던가 불교미술 작품이 전시되어있는 것은 좀 이질적이었다. 사실 잘 조화되는 것 같진 않았다. (건축의 인상이 주는 기대가 너무 컸을 지도.) 색채를 지양하고 오로지 순수한 물성의 색깔(콘크리트, 철, 유리)만을 드러내는 외부와 달리 붉지도 노랗지도 않은 마루와 굉장히 다채로운 작품들, 도대체 왜 저기에 있어야만 할까 싶은 방향제의 언밸런스랄까. 





방향제를 두는 것보다 창문을 3cm 정도 여는 것이 훨씬 좋은 선택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기억으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사이의 공간에서 느껴지는 숭고함 때문이다.


건축이 만들어내는 액자


중간에 천정을 뚫어 자연광을 수용한다


안도 다다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물"

얕은 물을 통해 주변의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흘리거나 가두기도 한다. 

특히 이 본태박물관에는 아래 사진과 같이 고여진 물로 긴장감을 주었고, 측면에서 보았을 때 고여진 물이 온 벽을 타고 흐르도록 하여 역동적인 심상을 연출했다. 

이동하는 통로에서 이와 같은 경험을 한 후, 이전 전시관과 전혀 다른 작품을 관람할 수 있으므로 어쩌면 굉장히 잘 설계된.. 사용자 경험 프로세스라고 할 수 있겠다.

경계가 만들어 내는 교차점이 굉장히 흥미롭다.

철근이 주가 된 퐁피두센터와 같은 건물들도 있기 마련이나, 안도 다다오의 건축에서는 굉장히 제한되어있다. 그러면서도 본분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위 사진과 같은 모습이다. 




        건축가 임채진은 책 [안도 다다오]에서 "근대적인 재료인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그것을 마치 종잇장을 대하듯 조심스럽게 다루면서 폭넓은 조형성을 표현했다"라고 표현했다. 위 사진에 보이는 굉장히 약한 경사의 길목과, 그 길목을 걸으며 보이는 물 흐르는 벽을 경험하면서는, 종잇장 주무르듯 콘크리트를 다룬다는 안도 다다오의 감각이 절로 스며들었다.

어느 것 하나 튀는 것 없이 잘 들어맞을 때 느껴지는 쾌감을, 방문하여 꼭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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