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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호 Jan 06. 2022

여자처럼 살아보고 싶었다

독특한 사람의 인생이란


 오랫동안 여자의 삶을 동경해왔다. 성별을 바꾸고 싶은 건 아니고, 그들의 생활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남자다. 누가 봐도 건장한 남자다. 키는 185, 운동을 좋아하고, 상의는 XXL를 입는다. 얼굴은 깔끔한 편이나, 예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옷은 검은색이 절반이다. 첫인상으로는 운동을 잘하고, 잘 놀러 다닐 것 같다더라. 처음 만난 사람은 남자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재미있게도 수컷 냄새를 풍기는 이미지의 나는 꽤 긴 시간 여자의 삶을 동경해왔다. 그들의 삶이 내게 이상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남중 남고를 나와 공대를 졸업했다. 내 인생에는 시커먼 놈들 뿐이었다. 남자들은 허구한 날 만나면 술에 피시방이 전부였다. 술집이 질린다고 당구장에 노래방을 간 적도 있지만, 결국엔 포장마차로 발길을 돌린다. 친구들이 좋아서 어울려 다녔지만, 게임 말고는 딱히 흥미를 느끼진 못했다. 오랜 기간 나랑 안 맞는 것들을 오래 하다 보니,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 심했다. 하지만 주변이 죄다 술주정뱅이 아니면 게임폐인이니 새로운 취미가 무엇이 있는지, 어떤 게 있는지 몰랐다. 노는 법을 모르는 나에겐 취미생활이란 어려운 것이었다.


 행복해지고 싶었기에 선택한 방법은 맨땅에 헤딩이었다. 대학에 와선 미친 듯이 새로운 시도를 했다. 코드도 모르는 기타를 잡아보고, 자본주의를 이해해보고 싶어, 경제를 배워보겠다고 사회대 학술 동아리를 들어갔다. 인문/사회 계열 학생이 주로 참여하는 독서 토론대회에서 허술한 논리를 펼치다 박살나보기도 하고, 학교 홍보대사로 수백 명의 고등학생에게 강연을 했다. 보통의 공대생과 다른 행보를 걷다 보니, 취업준비는 안 하고 뭐하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기억도 안 날 만큼 도전을 했다. 5년을 시도하다 보니 어느새 나와 잘 맞는 취미들을 찾기 시작했다. 사진 찍는 게 좋아 인스타그램 사진 계정을 만들었다. 정성껏 찍고 보정한 사진이 하나 둘 쌓여가는 게 뿌듯했다. 미술학원에서 예쁜 사진을 유화로 담아내는 건 정말 황홀한 경험이다. 꿈꿔왔던 방을 만들기 위해 3개월간 방 구조를 3D 모델링하고 가상으로 가구 배치를 했다. 이제는 친구들이 내 방의 인테리어에 감탄한다. 때로는 요리에 빠져 매일 유투버의 요리들을 따라 하곤 한다. 요즘은 독서와 글쓰기에 빠져 내가 글에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젖어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어느새 소소하지만 즐거운 취미가 내 인생을 분홍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내 일상은 소녀의 그것과 닮았다. 게임과 술로 가득한 내 삶이 어느샌가 글, 사진, 요리 들로 채워진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독특한데, 주변 친구들이 보기엔 더 그런가 보다. "너처럼 특이한 애는 처음 본다."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예전엔 내가 너무 여성스럽진 않은가 걱정했다. 주변과 다른 행동을 한다는 것은 한국인에겐 어색한 일이니까. 하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나만의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안다. 어느새 특이함은 나를 표현하는 단어가 되었다.




 나의 여성스러움은 취미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화를 할 땐 예민하고 세심한 편이다. 어릴 적부터 눈치를 자주 보고 살아서 그런지, 상대의 기분이 어떤지 캐치를 빨리 한다. 서로의 경험을 공유할 때는, 공감을 아주 잘한다. 상대의 이야기가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생각하며 듣는다. 리액션이 좋아서 이야기할 맛이 난다고 하기도 하더라. 그래서 동아리 시절 별명이 "큰 언니"였다. 처음 듣고선 기분이 이상했지만, 여자들에게 친근감 있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 나쁘진 않았다.


 성격과 연관이 있는지, 나는 여자들의 인간관계가 부러웠다. 개인 톡과 전화를 자주 하고, 오늘 겪었던 것을 이야기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남자인 친구한테 카톡으로 내 일상을 주저리주저리 보내면 돌아오는 답변은 "ㅇㅇ". 경상도 남자들은 연락을 귀찮아한다. 그래서 여자애들이 서로 개인적인 연락을 자주 나누는 게 부러웠다. 난 친구에게 카페 가서 이야기하자고 하면, 너랑은 안 간다고 한다. 같이 책 읽자고 하면 미쳤냐고 물어보고, 그림 배우러 가자면 여자 보러 가냐고 한다. 여간해서는 남자 둘이 음주 이외의 것을 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인지 나는 여자들이 부러웠다. 단 둘이서 무엇을 해도 이상하지 않고, 이야기를 자주 하며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서로 좋은 말, 응원하는 말 하며 공감도 잘해주는 모습이 부러웠다.


 내 성격과 성향이 보편적인 남성과는 결을 달리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꽤나 큰 걱정을 했다. 내가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건 아닌지, 남성적인 매력이 없는 건 아닐지, 혹은 몸에서 여성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어 그럴 수도 있는지. 그래서 일부러 말을 강하게 하고, 허세를 부려본 적도 있다. 몇 번을 해도 나랑은 안 맞아서 금세 포기했지만.


 다행히도 내가 걱정하는 만큼 이상한 건 아니었다. 내 성격에 대한 지인의 평가는 대부분 긍정적이다. 남자임에도 세심하게 배려하고 사소한 것도 배려하는 모습이 꽤나 좋게 보이는 것 같다. 내 성향 덕에 능력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은 적도 더러 있었다. 이제는 내 성격도 나의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성격을 16가지로 구분 짓는 MBTI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다. 하지만 난 MBTI 불신론자다. 100명의 사람은 100가지의 성격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내 독특한 취향과 여성스러운 성격은 "나 다움"의 큰 기둥이다. 이제 나는 내 성격을 주변에 숨기려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기에, 그런 내 모습이 꽤 마음에 들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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