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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호 Jan 06. 2022

친구가 연애 상담을 해왔다

이번에도 그놈은 쓰레기일까?


  얼마 전 친구가 연애 상담을 해달라고 했다. 내용은 이러하다. 남자 친구는 평소에 퇴근만 하면 연락을 잘 안 한다. 평소에 표현도 자주 없는 편인데, 연락도 잘 안되니 너무 서운하고 화가 난다고 한다. 당신은 이 말을 듣고 뭐라고 답할 것 같은가?


 연애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다. 사람마다 각양각색의 이상형이 있고, 저마다의 연애 이야기를 듣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 재밌게도, 연애 이야기를 나눌 때 꼭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특히 연애 상담을 할 때 자주 들어 봤을 거라 예상한다.


"안 봐도 그 사람은 쓰레기야! 만나지 마!"


 친구의 몇 마디를 듣고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이 생기는 케이스다. 한 명의 사람은 하나의 우주라고 했건만, 짧은 대화에 한 사람을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로 분류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하게 말해보자. 당신은 한 번도 이 말을 한 적이 없는가? (사실 나는 저 말 자주 했었다.)


 물론 생각 없이 판단을 내리는 건 아니다. 자기가 흘린 눈물만큼의 직접 연애 경험과, 친구와 마신 술만큼의 간접 연애 경험이 합쳐진 깊은 내공을 바탕으로 하는 조언이다. 하지만 친구가 내 전 애인을 만나는 게 아니라면, 나는 그 사람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심지어 전 애인을 만나는 것이라 해도,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다. 친구와 나에게 대하는 태도와 행동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


 요즘 대학생이 제일 많이 하는 고민이 진로 선택이다. 직장인들은 브런치에서 자기가 무엇을 하고픈지 모른다고 말한다. 다들 몇십 년간 "나"로 살았는데도 자기를 이해하지 못한다더라. 그런데 왜 친구의 짧은 푸념에 네 남자 친구가 쓰레기니까 헤어지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은 걸까? 어떻게 자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남을 쉽게 판단하는 걸까? 나는 그 이유를 편리함에서 찾고자 한다.




 오래전 회사에서 일이 하나 생겼다. 새로 개발하는 제품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차량에 장착되는 제품은 대부분 금속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에는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 플라스틱을 사용하게 되었다. 약한 소재를 사용하게 되어 다들 노심초사하였지만, 제품 평가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순조롭게 평가를 마치고 납품을 위해 대량생산을 시작하기 직전에 문제가 생겼다.


 제품이 깨졌다. 차량 시험을 위해 미국에 보낸 제품의 플라스틱 부품이 깨졌다. 이와 동시에 한국 공장에서도 제품이 깨지기 시작했다. 임원부터 실무자까지 난리가 났다. 무슨 짓을 해도 멀쩡하던 게 자기들끼리 약속이라도 한 듯 부서져 나갔으니까. 모두가 패닉에 빠졌다. 이대로 제품이 차량에 들어갔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저 마다 원인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실무진이 모여해 볼 수 있는 시험은 다 해보았다. 온도, 습도, 시험 방향, 하중 집중 부위, 시험 속도 등등 조정 가능한 인자는 죄다 바꿔가며 원인 조사를 했다. 우여곡절을 거쳐 날이 추워져 플라스틱이 딱딱해진 것이 원인으로 결론지었다. 온도에 영향이 적은 소재로 변경하며 더 이상 제품은 깨지지 않았다. 그렇게 이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온도 변화만이 유일한 원인은 아니었다. 첫 번째로 의심되는 원인은 소재의 변화다. 제품이 깨지기 시작할 때 즈음부터, 원소재 업체에서 입고되는 플라스틱 원소재 색이 이전과 다르게 노란빛을 뗬다. 업체 측에선 색만 다르고 같은 성분이라고는 하지만, 아예 차이가 없지는 않았으리라. 두 번째는 부품의 형상이다. 이전부터 플라스틱 부품의 두께가 얇아 깨지기 쉬울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전까지 깨진 적은 없지만, 파손에 취약한 형상임은 틀림없다. 세 번째는 습도 변화다. 플라스틱은 물을 머금을수록 부드러워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제품 40도에 하루 동안 담근 후 시험하면 부서지지 않았다. 이 외에도 예상되는 원인은 5가지 정도 더 있다.


 다양한 원인이 제시되었지만, "온도"가 원인이라 단정 짓고, 사건을 일단락 지었다. 사건에 복잡하게 얽힌 여러 변화가 있었음에도, 대부분의 사람은 하나의 원인에 집중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만 생각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복잡한 문제를 간단명료한 한 문장으로 해결하고 싶어 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연애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연락과 표현이 적은 친구의 남자 친구의 심리를 함께 추리해보자. 타고난 기질이 소심하고 말이 없어 그럴  있다. 요즘 일이 힘들고 삶에 지쳐서 그럴 수도 있다. 일이 본인과 맞지 않거나, 상사와의 트러블로 스트레스가 극심할지도 모른다. 고집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해도 자기 위주로 대화할 거라는 실망감이 입을 닫게 했을 수도 있다. 새로운 여자가 마음에 들어왔을 있지 않은가? 과거 힘든 연애의 트라우마로 자기 방어적인 성격을 보이는 가능성도 있다.  많은 이유  무엇이 진짜 원인일지는 본인만이 안다.  사람이 살아온 인생과 타고난 성격을 우리가  알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함부로 단정 짓지 말아야 한다. 세상 사람은 수십 년간 저마다의 삶을 살았다. 수만 가지의 다른 경험을 해왔다. 그런 사람이 나랑 같은 생각을 할 확률은 아주 희박하다. 우리가 평생 한 명의 삶을 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대화라고 생각한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 사람만 안다. 진심을 터놓고 대화하지 않으면 모른다. 나이만큼이나 긴 시간을 다 말할 순 없지만, 지금 이 순간 떠오른 감정에 대한 이유는 말해야 한다. 서로의 이유를 듣고 공감하고 설득하는 과정은 두 인간의 인생을 온전히 마주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둘의 삶이 맞닿기를 노력하며, 오해는 이해로, 분노는 사랑으로 바뀌리라.




 친구에게 말했다. "왜 연락과 표현을 안 하는지 물어봐. 그리고, 네가 남자 친구에게 드는 감정을 말해."


 언젠간 남자 친구를 온전히 이해할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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