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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싱더바운더리 Aug 09. 2023

저주받은 걸작, 모정돼지에 관하여

불안함은 사람들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정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 관계에 대한 불안...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서 산불처럼 번지고, 우리는 소방관이 되어 그 불안한 마음을 끄려고 애를 쓴다. 조그마한 산불은 맛있는 것을 먹거나, 아무 생각 안 하고 게임을 한다던가 하는 일들로 쉽사리 진화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일주일 내내 뉴스에서 보도되는 파멸적인 크기의 산불이다. 나는 이 거대한 산불, 즉 거대한 불안을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느끼고 한다. 


오늘은 이 불안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을 소개해보겠다. 때는 고등학교 1학년 말, 나는 공부를 아예 하지 않았다. 친한 친구와 공부 대신 돈을 버는 것을 택했고, 이는 크고 작은 두려움을 만들어냈다. 다른 친구들은 공부라는 '노력'을 하게 되면 점수라는 '성과'가 바로바로 나오게 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그러하지 못했기에 더 그랬다.


내가 돈을 벌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내 꿈을 위해서였다. 문학에 관련한 일에 종사하고 싶다는 꿈. 이러한 꿈을 위해서 학벌보다는 자금이 더욱 필요하단게 그때 당시의 나의 판단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나의 목표와는 점점 멀어짐이 느껴졌다. 시간 대비 생각보다 많이 벌리지 않는 돈, 그리고 돈을 버는데 투자한 시간 때문에 내 꿈을 위한 공부를 하지 못하게 되는 이 악순환. 하지만 나는 이 상황을 뚜렷이 직면하지 않았다. 직면하게 될 때의 고통이 너무 무서웠기에 회피하고 만 것이다.


그러던 중 보게 된 만화 <모정돼지>는 이러한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모정돼지의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만화가를 꿈꾸는 주인공이 몇 십 년 동안이나 어머니가 버는 돈에 의지하며 살지만 사실 주인공은 만화가라는 꿈에 별 뜻이 없었고, 이에 충격을 먹은 어머니가 자살을 하는 그러한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의 만화를 속된 말로 '앰생 도살기'라고 부르는 데, 이 장르를 처음 접한 나에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의 상황과 직결되는 만화의 내용에 내가 구태여 덮어놓았던 나의 상황들이 여지없이 드러나 버렸던 것이다. 


나는 가족에게 줄곧, 나의 꿈은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을 것이라는 반 협박식의 말을 해왔다. 이 꿈에 대한 지원의 출처는 가족인 것임을 알았음에도 뻔뻔히도 그래왔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나의 꿈에는 소홀했다는 사실에 정말 부끄러웠다. 아니 부끄럽다 못해 아팠다. 한심하고 쓰레기같은 내 모습을 대포 카메라로 관찰하는 느낌이었다. 몸이 떨려오는 불안에 그날은 잠을 자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정돼지의 주인공의 한심한 모습처럼 가족이 개고생을 해가며 30년의 세월 동안 키워낸 모습이 지금의 나라면, 그들의 삶의 이유를 전면으로 부정한 것은 내가 아닐까 하는 죄책감. 나는 그들의 사랑을 약점 삼아 착취해내고 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 그런 것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그날부로 사업으로 돈을 버는 것을 관두었던 것 같다. 이 이후로는 최대한 인간답게는 살아보려고 했다. 그전에는 얼마나 쓰레기 같은 삶을 살았는지 인간답게 사는 것조차 너무 버거웠다. 지금도 만족하는 삶은 결코 아니지만, 모정돼지를 읽기 전과 비교한다면 환골탈태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날 내가 우연으로 인해 그 작품을 보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내가 예술의 힘을 전적으로 믿는 이유는 위와 같은 경험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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