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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싱더바운더리 Sep 16. 2023

아역 배우에 관하여

최근 적잖이 충격받은 영상 하나가 있다. 영상의 내용은 이러하다.


배우 김혜수 씨가 아역 배우 앞에서 고함을 지르는 열연을 펼치고 아역 배우는 서럽게 흐느낀다. 


당연하게도 우는 연기를 펼치는 줄 알았던 김혜수 배우는 더욱더 몰입하여 소리치고, 바로 그때 아역 배우의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


"대사가 기억 안 나."


그렇다. 그것은 연기가 아닌, 진짜 눈물이었던 것.


뒤이어 김혜수 씨의 충격받은 표정과 '대사 안 해도 돼, 대사 안 해도 괜찮아' 하며 다독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 뭐랄까 가슴이 미어졌다.


우리는 성에 있어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그러니까 '성적 자기 결정권'이 없는 아이와 관계를 맺으면 천인공노할 인간으로 취급한다. 물론 마땅한 취급이라고 생각하며 이에 대해 반박하고 싶은 마음은 추후도 없다. 


그러나,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아이에게 '연기'라는 일종의 감정 노동의 역할을 쥐어주는 것은 과연 도의적으로 올바른가에 대한 것이다.


잠시 나의 어릴 적을 돌아보자면, 나보다 몸집이 훨씬 큰 존재가 자신에게 언성을 높였을 때, 그것보다 무서운 것이 없었던 것 같다. 


이런 감정은 분명 트라우마를 남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언성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부여되는 다양한 종류의 연기들이 모두 그렇다.


영화 <좋은 아들>

유명한 사례로 <나 홀로 집에> 시리즈의 케빈 역을 맡은 맥컬리 컬킨을 들 수 있다. <나 홀로 집에>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그는 아버지의 욕심으로 과도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고, 그 과정서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감정선을 연기했다. 


이는 <좋은 아들>이란 작품에서 피크를 찍었는데,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 아이가 주인공인 작품이었던 것. 다양한 감정을 겪어보지 않은 나이에 사이코패스의 감정을 연기해야 했던 그의 심리는 망가질 대로 망가져갔다. 


추후 그는 지속적인 스케줄 강행과 흥행 실패 등으로 광장 공포증과 같은 정신 질환을 얻으며 비운의 스타로 전락했다. 현재는 다시금 연기에 도전 중인 그이지만, 그의 사례는 아역 배우의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볼 지점을 만들어주었다.


아역 배우의 불행에 관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양동근 배우가 TV프로그램에 나와 아역 배우 시절에 관한 고충을 털어놓은 바 있고, 넷플릭스 시리즈 <보잭홀스맨>에서도 부모의 이기심으로 희생되고, 이미지의 고착화로 고통받는 아역 배우의 문제점을 꼬집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아역 배우들은 다양한 감정 노동을 소화해 낸다. 심지어는 잔혹한 범죄 연기에 노출되기도 한다. 자아가 형성되는 성장 과정에 있는 아이들인 만큼, 트라우마를 유발하거나 심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수위 높은 연기에 그들을 노출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표현과 창작은 존중받아 마땅 받아 마땅하지만, 어린이들이 그들의 창작물에 '희생'되는 것이 아닌 멋지게 '활용'되는 것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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