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말, 병원에 입원했을 때의 일이다.
제일 먼저 내 입에서 나간 말은 "선생님! 그럴 리가 없어요! 저는 오형이었는데요?! 사람의 혈액형이... 중간에 바뀌기도 하나요?"였다. 내가 무식한 건 인정하지만 그 순간 그보다 더 절실한 궁금증은 없었다.
눼에? 제가... B형이라 굽쇼?
그러한 일도 있는 것이다. 사실로서는 B여도, O라고 평생을 알았어도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것.
더구나 그게 먼 나라 딴 얘기도 아니고 바로 내 몸을 돌고 있는, 생물학적 사실 그 자체이거늘.
수술 전날이라 가뜩이나 긴장하고 있었는데 그날의 기분이 얼마나 묘했을지는 말할 것도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병실에 누워서 할 것도 없으니 시간은 충분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 아니, 잘못된 게 아니라... 잘못 안 것일까.
우선 나는 병원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엄빠가 산파를 모셔 집에서 태어났다. 그래, 일단 그 단계에서 혈액형에 대한 과학적 고찰이 어려웠을 거라고 추정. 그다음. 어릴 때 그냥 습관적으로 들어왔던 엄마의 얘기들. "아빤 비형 엄만 오형 너도 오형 오빤 비형. 이렇게 우리집은 여자들은 오형이고 남자들은 비형이야." 그랬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다 의심스럽다. 엄만 오형이기나 했을까? 어느 단계부터 잘못 안 것일까. 지금 곁엔 아빠만 계실 뿐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엄마 모두 고인이 되셨으니 바늘을 들고 가서 손구락을 찔러볼 수도 없다. 이제 영원한 미스터리. 미궁 속으로 들어갔다.
분명 국민학교 저학년 때 혈액형 검사를 했을 텐데... 그게 기억나지 않고 통지표에도 남아있지 않다. 2학년 때 한번 전학을 했는데 그때 기록이 누락된 걸까?라는 추측이 유일한 합리적 의심이다. 더불어, 일생 한 번도 헌혈을 하지 않은 점도 새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전자야 관심도 있고 탓도 하고 그러며 살았지만 혈액형은 생각해본 적 없는데, 이런 식으로 관심의 영역으로 떠오른 것이다. 가족들한테 제일 먼저 알려 놀라움을 던져주었음은 물론 퇴원 후 친구를 만났을 때는 무용담처럼 얘기하며 화제의 중심인물로 부상했다. "니가? ... 니가 비형이라고?"
혈액형 별 뭔 성격과 너낌의 차이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놀라워했다.
아픈 수술 이야기는 묻혔다. 이야깃거리가 안되나 보다. 바뀐 혈액형 이야기가 훨씬 더 임팩트 있는 것 같다. 아니 어떻게 그걸 평생 잘못 알고 산 거지? 싶은 것이다.
이런 말은 웃기지만 나는 아직도 얼떨떨하게 적응 중이다. 오형에서 비형으로.
그리고 어느 지점을 의심해야 할지 깊이 생각하다 보면 어지러워져서 그만 파고들기로 했다. 남들은 한 번 사는 인생 나는 이렇게 두 번을 산다고 생각하자,며 합리화했다.
이것은 올해 나의 브레이킹 뉴우스 순위권 감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앞으로 남은 몇 개월 동안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지금 까지로서는 3위 내 랭킹이다. 그리고 한 줄 타이틀은 이런 식으로 남길까 한다.
<본인의 혈액형을 몰라도 사는 데는 지장 없어>
<낼모레 오십, 이제야 혈액형 바로 알고 경악>
<새 피에 적응할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