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이 될 때에는 마침내, 라는 단어가 내 기분이었다. 드디어 되었구나 서른. 아 너무 좋다. 그리고 정말 좋았다. 그러나 30대를 다 보내고 마흔이 될 때는 뒷덜미 잡혀 골방으로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통곡하고 싶었던 게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서른 즈음에♪ 도 지나 내 나이 마흔 살에는♬ 을 보내고 다가올 오십을 바라보는 기분은... 덤덤하다. 좋지도 싫지도. 아니 뭐 그렇게 좋을 것도 그렇게 싫을 것도 없는 기분. 한때 뜨거웠던 것도 시들시들해지고, 난 절대 아냐 하던 것도 천연덕스럽게 하게 되면서 찾아오는 이 무덤덤함에 난 매우 감사한다.
나이의 매듭에 관한 책들은 참 많다. 십여 년 전에도 이십여 년 전에도 그 나이에 으레 거치게 되는 통과의례 같은 내용들을 읽으면서 위안받고 파이팅도 하며 그랬던 것 같다. 타인이 써 내려간 내용을 다 나에게 적용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라는 큰 뼈대에 별다른 이질감은 없었다.
이제 슬슬눈에 들어오는 단어, 오십 ...
일단 펼쳐 목차를 들여다보고 후루룩 넘겨 읽다가 이내 덮고 다시 제자리에 꽂기를 반복.
자식들만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자신을 위해 살아라, 채우려고 하지 말고 비워라... 공통적으로 많이 다뤄지는 오십 주제인 듯하다. 그러나 나에겐 바라볼 자식이 없고 비워야 할 만큼 뭘 채워본 적도 없다. 자식을 낳지 않기로 생각한 건 내 의지였고, 채우지 않기로 한 건... (긍정적으로 빚이 없다고 보자...)
그리고 나의 일부는 20년 전에도 했던 고민, 10년 전에도 했던 고민들을 여전히 안고 산다.
살아온 궤적이 다른데 앞으로의 계획이 같을 리 없다. 그러니 그런 책에서 할애하고 있는 많은 부분, 내 변죽을 울리지 못한다. 내가 눈 크게 뜨고 보게 되는 챕터는 다가올 갱년기의 증세, 중년의 체력과 건강 문제 등 누구에게나 격차가 크지 않게 찾아오는 보편적인 부분이다.
내용에 이끌려 읽다 보니 오히려 요즘엔 30대 작가들의 책을 많이 읽고 있다.그 시선, 고민, 선택. 비혼자로서 사는 이야기. 재미있고 공감이 간다. 이렇게 해볼 수도 있구나, 새로운 걸 알게 되는 즐거움.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고민의 방향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과거의 나는 '생존하기'만을 고민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존재하기'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페미니즘을 만났다. 내가 지금까지 겪어 온 모든 일은 페미니즘을 떠나서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92p)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 김민정
'나이'라는 시간은 한 방향으로 주욱 가는 게 아닌 것 같다. 나는 반환점을 맞이하는 기분이다. 마라톤의 완주 코스처럼 반환점을 돌면, 내가 지나온 풍경이라도 시각과 방향이 달라지니 그때와 같지 않겠지. 보지 못했던 것들도 만나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