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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노는양슨생 May 17. 2021

휠체어석에서 영화를 보다

영화를 보는 데 참 많은걸 알아봐야 하는구나

 주말 내내 출근한 남편 때문에 시부모님이 집에 와계셨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두 아이를 돌보는 건 불가능했기에 시부모님께서 와주셨다. 몸이 아파서인지 자꾸만 화가 났다.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나고 고, 금방 우울해졌다. 언제나 내게 잔소리 폭탄을 날리시는 시부모님과 이틀 내리 함께했기에 더 마음이 힘들었다. 아이를 돌봐주시는데 감사한 마음보다, 환자로서 불편한 내 마음이 더 컸나 보다.


 이를 눈치챈 남편이

 "월요일에는 출근 안 해도 되니까 데이트할까?"


 뾰로통한 내 표정을 살피더니 데이트라는 히든카드를 내민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주욱 올라갔다. 병원 갈 때 말고는 외출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데이트라니!! 게다가 영화관에 가자는 거다. 두 아이 출산 후, 남편과 단둘이 영화관에 가본 적이 없었는데, 생각만 해도 너무 신났다.


'그런데 다리 때문에 영화를 어떻게 보지?'


 남편은 맨 앞자리로 예매를 하고, 발받침을 하면 영화를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자막 있는 영화는 앞자리에서 보면 힘드니까 한국영화를 보자고 하면서 말이다.

예전 철산에 살 때, 집 앞 영화관에서 발받침이 있었다. 그 생각을 하며 신나게 화장도 하고, 콧노래도 불렀다.


 목발 보행을 해야 하니 주차장에서부터 최대한 엘리베이터 입구와 가까운 자리를 선점해야 했다. 돌고 돌아 좋은 자리에 주차를 하고 영화관에 갔다.


"여기 발 받침대 있죠?"

"아니요. 발 받침대는 없는데요."

"헉, 다리를 다쳐서 그런데, 혹시 다리 올릴만한 건 없을까요?"

"음.. 휠체어 자리가 있어요. 의자가 움직이는데, 지금은 예매해드릴 수가 없어요. 영화 시작 10분 전부터 예매하실 수 있어요. 그때 다시 오시겠어요?"

"네.."


 모든 영화관에 발 받침대가 다 있는 게 아니었다. 이럴 수가! 그래도 휠체어 자리가 있다니! 처음 알았다. 그리고 영화 시작 10분 전이 될 때까지 의자에 앉아 휠체어 자리에 대해 검색했다.


'으아.. 그냥 맨 앞자리에 움직이는 의자가 있는 거네..

 다리는 어떻게 하지.. 바닥에 어정쩡하게 내린 채로 영화를 봐야 하는 건가..'


 그래도 여기까지 나온 게 아까워서 우선 휠체어 자리를 들어가 보자고 다짐했다. 의자를 움직일 수 있는 것만으로 얼마나 다행인가. '의자를 뒤로 훅 밀어서 편한 자세를 찾아봐야지!'라는 생각과 함께 '휴.. 이렇게까지 해서 영화를 볼 일인가, 그냥 집에서 볼 걸..'이라는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동안 영화관 사진도 찍고, 널찍한 장애인 화장실에도 다녀왔다. 다리를 다치고 나니 일상 속 작은 것들에게도 감동할 줄 알게 되었다. 장애인 화장실 여닫이문이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코로나로 인해 띄어 앉기 해야 하는 자리 덕분에 다리를 올리고 앉을 수 있어 감사했다.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의자, 넓은 장애인 화장실


 

드디어 예매를 하는데, 우와우와 휠체어 자리가 극장 맨 뒷자리였다. 검색했을 때 본 사진은 맨 앞자리였는데..! 그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기쁘던지.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간 영화관 자리에 또 한 번 감동했다. 그냥 봉이면 다리를 올리지 못했을 텐데, 낮은 층에 봉이 하나 더 있는 2단 봉이였다. 거기에 다리를 올리는 각도가 딱이었다. 푹신한 발 받침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다친 다리를 올릴 수가 있는 거였다.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남편과 함께 단둘이서! 다리가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에 와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행복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영화 하나를 보는데 이렇게 많은 걸 알아봐야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좌석 앞 여유공간이 넓은지, 발받침이 있는지, 다리를 올릴만한 무언가가 있는지,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 들어가고 나갈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알아봐야 했다. 영화를 보는 순간 그 기쁨은 10배가 되었지만 '다음부터는 집에서 편하게 봐야지~'라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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