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한 대화를 기억한다는 것
일 년에 한두 번 부부끼리 만나는 친구가 있다. 한쪽이 초대하면 한쪽은 선물하며 그렇게 5년 가까이 흘렀다. 친구 집에는 덩치 큰 고양이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예쁜 강아지였다. 이 녀석의 이름은 '망고'이고 전에 있던 고양이는 병에 걸려 아파하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 고양이 이름이 '보리'다. 내 아내는 이번에 친구집에 방문했을 때 '보리'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반려묘를 잃고 힘들어하던 친구를 알고 있었으나 그 이름까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데 남편의 친구 고양이 이름까지 기억하는 아내라니. 아내는 보리와 망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
친구의 반려동물 이름을 잊는 것이 실수는 아니고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거기까지 기억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아내는 상대와의 대화를 기억해 주는 세심한 사람이고 그래서 상담을 잘해주는 교사인가 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내가 근무하는 곳에 한 어르신은 나에게 결혼했는지(결혼한 지 6년이다), 자녀가 있는지를 네 번째 물으셨다. 그분의 기억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 내게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분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학생들에게 별 의미 없는 질문을 하고 답을 제대로 듣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화의 공백이 어색해서 건네는 말이었을 것이다.
"학교 올 때 뭐 타고 오니?", "*************" 분명 말했는데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냥 묻고서는 듣지 않고, 기억하지 않는다.
했던 말을 또 하는 것도 상대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 아닐까. 지겨운 옛날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기보다는 그 말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만족을 채우는 것이리라. 실수라고 변명해도 빠져나갈 수 없다. 상대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건 마찬가지다. 교사라면 한 번쯤은 이런 실수를 했을 것이다. 수업시간에 들었던 예시를 반복한다던가 같은 내용을 다시 이야기하는 경우다. 학급별로 내가 할 이야기와 한 이야기를 정리해두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그 학급에 소홀했다는 뜻이다. 즉 준비하고 계획대로 수업한 것이 아니라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한 것이니까.
학생 상담 중 학생이 이런 신호를 감지할 때 교사의 무관심을 느낀다. 학생이 전에 했던 이야기를 교사가 다시 물을 때, 내가 한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고 또 할 때. 지금까지 잘 쌓아 온 라포가 와르르 무너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나는 교무수첩이나 개인수첩에 간단한 내용을 끄적이면서 상담을 한다. 이게 은근히 도움이 된다. 그 내용을 다시 펼쳐보지 않더라도 손을 움직여 쓰는 행위가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학생선수를 관리하는 업무를 하고 있기에 각각의 선수 데이터를 기록, 보존해두고 있다. 이럴 땐 휴대폰 앱으로 내용을 기록하고 필요할 때마다 열어서 확인한다. 어렵지 않은 일인데 누군가는 이런 관리에 감동을 받기도 한다. 투입 대비 산출효과가 큰 일이다.
상대와의 대화를 기억하는 것은 너를 존중하고 소중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우리가 살면서 대화하는 모든 사람을 기억하고 소중하게 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점을 인정한다면 나와의 대화를 잊은 사람에게 서운해하지 말자. 다만 우리의 대화를 기억해 주는 그 사람이 더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라는 걸 알면 될 뿐이다. 다음에 친구를 만났을 때에는 나도 망고를 기억해서 먼저 불러봐야겠다.
P.S. 분명 아내가 설거지하고 나가라고 했는데 깜빡 잊었다. 아내는 내게 소중한 존재인 것이 분명한데, 틀림없는데 왜 나는 자꾸 까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