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학생을 사랑해야 한다..... 진짜?
교사는 모든 학생에게 애정을 줄 수 있긴 한 걸까. 교사도 사람이고 학생도 사람이라 기본적인 인간관계의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좋은 학생이 있고 싫은 학생도 있으며 아무런 느낌이 없는 학생도 있다. 이런 나의 인간적 감정을 인정하기에 내 행동에서 학생에 대한 호불호가 티 나지 않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올해 내가 맡은 학생 중 애정을 주기 정말 어려운 녀석이 하나 있다. 평소 말도 없고 표정도 없는 학생이라 처음에는 나도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이 학생은 교사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학급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매사에 시니컬하고 비아냥거리는 반응을 보인다.
이 학생은 친구가 없다. 혹시 따돌림이 있나 싶어 관찰을 해봐도 이 학생에 대한 가해행위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이 학생에게 관심이 없을 뿐이다. 이 학생도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이 아이도 혼자 생활하는 게 더 편한 듯하다. 모두가 친하게 지내는 교실은 아름답겠지만 비현실적인 일이다. 교사가 모든 학생을 사랑하는 것도 이상적이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교사와 학생의 관계니까 처음에는 친절함으로 다가갔다. 물론 학생이 교사의 호의를 알아줄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았다(교직 경력이 쌓일수록 로맨틱한 기대는 점점 낮아진다). 오히려 교사의 호의를 알고 받아들이며 긍정적으로 호응해 주는 학생이 아주 특별한 경우다. 아직 미성숙한 청소년들은 대부분 상대의 호의에 무감하거나 무관심하다. 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기도 한다. 이 학생도 역시 나의 호의에 반응이 없었기에 나도 적절한 거리에서 교사역할을 하는 데 만족했다.
어느 날 상담선생님께서 이 학생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심리검사 결과 '우울' 수치가 높고 집안 사정도 어려운 상태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나의 무심함을 반성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여기서 안타까운 마음에 섣불리 더 친절하게 다가가면 이건 '동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동정이 아닌 공감을 하자. 이 학생이 도움을 요청하거나 위기에 있을 때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안전함을 느끼게 해 주자. 관찰하고 세심한 배려를 하자.
어색하지 않게 지나가면서 가벼운 대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썩소(썩은 미소)'였다. '아 뭐라는 거야 짜증 나게'라는 말주머니가 보이는 듯했다. 나의 대화가 움츠러들었고 괜히 오지랖을 부렸나 싶었다. 나도 마음에 타격을 입은 것이다. 그런데 이 느낌은 나의 주관적 판단이지 않은가. 내가 오해했을 수도 있지. 그 아이의 표정만 보고 내가 잘못 해석한 것일 수 있으니 판단을 유보했다. 그런데 어느 날 지나가다가 다른 선생님이 이 학생과 대화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이 학생을 위해 선생님이 별도로 준비한 과제가 있었고 선생님이 차근히 설명하고 계셨다. 그런데 이 학생의 대답은 "이거 하면 뭐 돼요? 뭐 달라져요?"라고 뱉어버렸다. 이 선생님도 당황하시는 게 멀리서도 느껴졌다. 나중에 이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선생님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교사의 호의와 배려에 비호감으로 답하는 학생에게 우리는 애정을 줄 수 있을까. 내민 손에 침을 뱉는 경우에도 교사는 학생을 사랑할 수 있을까. 교사는 예수가 될 수 있을까. 교사로서 이럴 때 고민되고 괴롭다. 나도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녀석을 좋아하란 말인가.
결국 교사-학생 관계도 인간관계다. 서로에게 예의가 있어야 하고 호의에 호의로 답해야 좋은 관계가 유지된다. 물론 꼭 좋은 관계일 필요는 없다. 아무런 감정이 없거나 감정이 좋지 않아도 교육활동에 불이익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에도 동의한다. 다만 인간적으로 좋아하라는 것은 교사에게 가혹하다. 내가 세운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처음에는 학생들에 대한 호감을 기본값으로 한다.
2. 학부모의 문제를 학생에 대한 호불호로 연결시키지 말자.
3. 학생과 다른 교사와의 문제를 학생에 대한 호불호로 연결시키지 말자.
4. 인간관계의 스킬이 부족한 학생들은 잘 가르쳐주자.
5. 학생에 대한 불호가 생겨버린 경우 내 행동이 그 학생에게 불이익이 되지 않도록 하자(공정).
6. 불호의 감정이 있는 학생이 뒤늦게 호의를 보내온다면 언제든지 받아주자.
P.S. 결국 그 학생에게는 눈 마주칠 때마다 친절한 미소를 보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특별히 다가가거나 역할을 하는 것이 그 학생에게는 부담인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나도 상처를 덜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