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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로 가까운 곳에서

소설: 블랙 백신

by 민 켄



아, 점차 내 주변에도 위협이 조여오는 듯 했다. 그러나 나는 남자가 아닌가? 길을 걸을 때나 뉴욕시 전철을 탈때 주변을 돌아보기도하고, 평소에 밤 거리에에 인도를 걸을때 좀 위험하다 싶으면 차도 중간을 걸으면서 반대쪽으로 피하도록 미국 생활 10년동안 DNA가 만들어졌을 정도의 내가 아닌가? 플랫폼에서 전철을 기다릴때 누군가가 나를 뒤에서 선로로 밀치지 않을까 뒤를 보는 습관이 자연스레 생길 정도였다. 신문에 자주 보도되는 지하철 피해 사건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어머니가 형을 시켜서 카톡을 보내왔다. “동생, 거기 팬데믹 때문에 한인들이 폭행을 당한다는데, 뉴욕시 위험한 거 아니야?”

“별 걱정하지마. 사실 뉴욕시만 그런게 아니고 LA, 시카고, 심지어 캐나다 토론토 등에도 아시아계와 한인 비하 폭행사건이 일어나고 있어, 나는 괜찮아요.”

“제수씨와 조카는 어때?” 미국에서 한인들이 폭행 당한다는 소식이 언론에 연이어 보도되는 모양인지 계속 물어온다. 나는 계속 물어보는 형 질문에 좀 짜증이 났지만, 이를 억누르면서 “괜찮다”며 전화를 끊었다. 팬데믹으로 심기가 불편했지만 그래도 한국에 있는 가족이 걱정스러워하는데, 짜증으로 반응하려는 내가 좀 싫었다.


한국의 가족이 누군가? 9/11사태 때도 전화를 걸어와 걱정해 주던 가족이 아닌가. 카톡이 없었을 때인데도 국제 전화를 해주었던 가족 사랑에 짠하지 않았던가! 가족!.. 뉴욕에는 유일하게 피붙이 조카 딸이 살고 있다. 아, 그런데 그가 코로나 사태과 엮이는 사건에 연루될 줄이야.. 그날 퇴근해 저녁 7시쯤 집에 도착해 보니, 아내도 아들도 없었다. “음, 오늘이 금요일이니 대형 소매점 코스트코에 아들과 함께 갔겠군…”


중얼거리며 귀찮기는 했지만 샤워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피곤해서 그냥 욕실에 들어가 훌러덩 상의를를 벗고 욕조에 걸터 앉아 물로 상체를 씻었다. 마지막으로 길다란 분홍색 이태리 타월을 양손으로 거머쥐고 등을 밀려고 하는 순간 스마트폰이 울렸다. “에이, 귀찮게 무슨 전화가 오남!” 하면서 대충 타월로 몸을 닦고 바로 내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던져둔 스마트 폰을 집어들었다. “여보!...”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왜, 무슨 일 있어?”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보, 빨리 퀸즈 아스토리아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으로 가봐!...” “왜, 그러는데?” “당신 조카 기숙이가 다쳤나봐.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경찰에게 연락이 왔어! 이유는 잘 설명하지 않고 빨리 병원으로 와 달래. 나는 좀 늦을거야” “뭐, 경찰… 누구한테 폭행당한거 아니야!”. 나는 얼른 수화기를 끊고, 우버에 연락했다. 기다리는 5분이 왜 그렇게 긴지..

승차하는 순간, 마스크에 손이 가면서 재빠르게 썼다. 기숙이가 만만한 애가 아닌데… 눈치 빠르고 야무진 애가 아닌가! 그런 그에게 무슨일이 생겼길래 경찰에서 연락이 왔단 말인가?


조카딸 기숙이는 10년전 아내와 아들과 함께 어렵게 정착한 내게 미국에선 유일한 피붙이 인데….나이 30세가 갓넘어 미국에서 살고 싶다며 2년전에 뉴욕에 온 큰 누나의 외동딸. 뉴욕에 온지 반년 쯤 지났을까? 독립적으로 한번 살겠다며 맨해튼에서 가까운 아스토리아 쪽에 스튜디오를 얻어 살던 조카 딸. 미국에서 안정된 방사선 검사 기술직 일자리를 잡기 위해 맨해튼 칼리지에서 야간에 공부하면서 낮에는 미드 맨해튼 작은 의류업체에서 회계 업무와 회사 홈페이지 관리 업무를 하며 씩씩하게 살던 내 조카 딸. 그런 야무진 기숙이가 사고를 당하다니.. 막내 남동생 부부만 믿고 딸을 미국에 보낸 큰 누나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이런 저런 불안감이 밀려왔다. 조카딸는 지금 어떤 상태일까?


우버차에서 병원 인근에 내리자 마자 재빨리 걷기 시작했다. 뉴욕시 전철 N 과 W 인근에 있는 병원은 새로 단장한 모습이었다. 건물 전체가 모던한 스타일에 상아빛으로 단장해 깔끔했지만 좀 어두워 보이는 것 왜일까?. 병원 오른쪽 옆 응급실로 급히 들어가니 정문 입구 데스크에서 먼저 방문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급히 정문 입구쪽에 가니 예닐곱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소 짜증이 났다. 기숙이는 얼마나 다쳤을까? 나이에 비해 어려보이지만, 씩씩하던 조카의 얼굴이 떠올랐다. 힘없이, 글썽거리는 얼굴이 떠오른 건 왜일까?


1층 응급실 복도를 들어서 몇 발자국 걷자, 1백평 규모쯤으로 보이는 넓은 공간 앞쪽과 왼쪽으로 복도가 부산해 보였다. 좌우에는 병실들이 붙어있었다. 5명이 앉아있는 메인 데스크에 가서 가깝게 앉아있는 남미계 여직원에게 조카 이름을 대니, 앞으로 쭉 가다가 복도 막다른 쪽의 오른쪽 병실이라고 전해주었다. 앞으로 걸어가서 ‘여긴가?’하고 룸 입구쪽으로 들어 가려는데,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백인 경찰관이 “기숙이 가족이냐?”고 물어왔다. 그렇다고 하자, 그는 나에게 눈짓을 하며 복도 바깥쪽으로 오라고 했다. 어떻게 됐느냐는 나의 질문에 폭행을 당했다고 하고는, 먼저 나의 인적 사항을 묻고는 수첩에 적었다. 여성 2명이 기숙이 머리채를 잡고, 주먹으로 때렸다고 한다. 다행히 경찰이 범인을 붙잡았지만, 나머지 1명은 수배중이라고 했다. 나와 경찰관 사이에는 10초쯤 침묵이 흘렀다. 나는 병실로 이제 들어가도 되냐고 눈짓을 하니, 그는 고객을 끄덕 거렸다. 그는 조심스런 투로로 나에게 말했다. “현재 의식이 없는데… 의사들에 따르면 의식이 깨어날지는 계속 지켜봐야 한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병실로 들어서자 커튼이 열려져 있는 오른쪽 침대칸에는 노인이 산소호흡기를 단채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다. 눈은 뜨고 있는 듯 했다. 왼쪽 침대에 기숙이가 있을 것 같아 커튼을 조용히 옆으로 밀쳤다. 작은 체구의 기숙이가 누워있었다. 왼쪽 눈 주변과 코 부위 아래쪽 까지 짙은 시퍼런 멍이 보였다. 조금더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오른쪽 아래로 약간 고개를 젖히고 있던 기숙이 뺨이 눈물에 적셔 있었다. 기숙이에게 인기척이 들리게 약간 헛기침을 했다. 나즈막하게 “기숙아”라고 불렀다. 아무 답변이 없었다. 그는 자는 듯 보였다. 눈물에 젖여있는 뺨을 옆에 있던 휴지로 부드럽게 닦아주면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눈물이 계속 고여있을까?’ 나는 중얼거렸다.


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파란색 간호원 복장을 한 어떤 젊은 아가씨가 들어오더니, 보호자냐고 물었다. 침대 옆으로 나오라는 눈짓에 따라 몇걸을 걸으니, 의사가 병실 바로 앞쪽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응급실 레지던트 같은데 인도계의 까무잡잡한 피부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눈빛이 총명해 보이는 젋은 여성있다. “아직 정확한 상태를 모릅니다., 현재로서는 정밀검사를 해봐야 합니다. 왼쪽 턱쪽에도 상처가 있어 엑스레이 촬영을 했는데 턱뼈가 위골 되지는 않았어요. 그렇지만 머리를 길바닥에 부딪친 것 같아 CT 스캔 촬영을 했는데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1시간이 지났네..’ 조금 이따 병원에 오게될 아내와 교대할 시간이 다가왔다. 병실을 걸어나오는데 여기 저기 코로나 감염 증세 때문인지 기침 소리가 복도와 방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날 밤 11시쯤 병원에서 돌아온 아내는 세수만하고 조용히 침대에 누웠다. 하루종일 일하고, 초저녁에 식료품 구매로 코스트코에 가고, 병원에도 갔던 아내는 피곤해 보였다. 나도 피곤하기도 했지만, 일찍자는 습관 때문에 침대에 먼저 누운 상태였다. 아내는 말이 없었다. 기숙이가 깨어나지 못한걸 직감할 수 있었다.

조카는 그 다음날에도 깨어나지 못했다. 의식이 없는 조카딸을 병상에 그대로 둔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아내가 직장에 1주일 휴가 신청을 해 매일 낮에 병상을 지키기로 했다. 사고 4일째 직장으로 아내가 전화를 했다. "여보! 기숙이 깨어 났어. 의사들도 깨어날 줄 쉽게 예상치 못했데".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큰 누나를 볼 면목이 생겼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큰 매형도 2년전 돌아가신 상황에서 딸 소식에 누나는 얼마나 망연자실 했을까? 그 모습이 눈앞에 아른 거렸다.


그날 병실에서 돌아온 아내를 보자 마자 손을 잡아끌고 침대 위에 앉혔다. "기숙이 상태가 괜찮은거야?" 요 며칠 여위어 보이는 아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숙이가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더란다.. “숙모… 저는 코로나 사태가 계속되는 사건 당일 이상하게 더 답답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타임스퀘어에서 전철을 타고 퀸즈 아스토리아로 게속 가지 않고, 맨해튼 동쪽 59스트릿 렉싱턴 애비뉴 에 미리 내렸어요. 자주 아이쇼핑하던 블루밍데일 백화점을 지나쳐서 가끔 혼자 가던 퀸즈 보로 브리지를 걸어서서 집으로 가는 중이었어요. 공기도 답답하게 느껴져 오랜만에 바깥 바람을 쐬며 거의 1킬로 미터가 넘는 브리지를 걸어 퀸즈 쪽 경사길을 내려가고 있었어요. 왼쪽 아래로 보이는 루즈벨트 아일랜드쪽에도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거예요. 계속 앞으로 천천히 내려가니 반대편 퀸즈 방향에서 맨해튼으로 뚱뚱한 2명의 젊은 여성이 큰 소리를 내면서 올라오고 있었어요. 그러려니 하면서 내려가는데 나를 보는 그들의 표정이 좀 이상하더라고요. 서로 마주칠 쯤되는 거리에서 킨 큰 여자가 “칭크 칭크, 백투 바이러스 컨트리! 고우 백 커뮤니스트 차이나!”라고 소리지르는게 아니겠어요. 너무 무례하게 소리치길래 나는 “아임 낫 차이니즈. 아이엠 코리안. 아임 낫 바이러스”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옆에 있는 뚱뚱한 여성이 갑자기 “갓 뎀”하면서 내 머리채를 흔드는게 아니겠어요. 깜짝 놀란 저는 그 여자의 손목을 두손으로 잡고 막아섰더니 옆에 키 큰 여자가 내 얼굴을 주먹으로 치는게 아니겠어요? 눈이 번쩍거려 나는 이제 미국에서 죽는구나 생각하면서 강변 철근 난간을 붙잡으려다 시멘트 바닥에 머리쪽을 부딪쳤어요. 그런데 또다시 주먹으로 눈주변을 때리는게 아니겠어요. 고개를 땅쪽으로 피하면서 옆을 보았더니 서너명의 행인이 지나가는데 도와주지 않는 거였어요. 몽롱한 상태로 쓰러져 있는데 앰뷸런스 소리가 나는 거예요. 지나가던 어떤 이가 앰뷸런스를 부른 것 같아요.”


사건 경위를 아내에게 들으면서 내게 답답함이 몰려왔다. 나와 아내 사이에는 침묵만 흘렀다. 나는 조용히 결심했다. 나를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내가 정신을 더 차리고 살아야겠다. 우선은 접종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내 접종 계획에 아들은 완강했다. 아내도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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