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블랙 백신
아들은 미국에서 좀 흔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렵지 않게 취업할 수 있는 전공을 했다. 경제학. 졸업한 후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 때 인턴도 큰 컨설팅회사에서 거의 방학 때 마다 했다. 주로 미국의 경제 상황 특히 에너지 부문 등 특정 산업과 업종의 흐름과 전망을 조사해 내용과 도표를 넣어 보고서를 제출한다. 그러면 그의 상관은 이를 읽어보고, 곧잘 잘했다는 칭찬을 했다. 때로는 도표와 논리에 대해 지적할 경우에는 따끔하게 야단도 치는 것 같다. 아들은 이때문에 씩씩된다. “상사의 피드백이 늦어질 때가 많고, 들쭉 날쭉 해요.”
아내는 이 말을 듣고, 아들 편을 주로 들지만, 나는 좀 야단을 치는 편이다. “틀린 점을, 부족함 점을 인정해야지. 더 나은 결과물을 내도록 하는게 너가 성장하는데 도움이 될거야! 너가 반응을 바꾸는게 좋아!”
이럴때 마다 아들은 “아빠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분이 피드백을 제때 제때 주지 않는다”며 역정을 내기도 했다. 이렇게 충돌한 이후 우리 둘은 하루 정도 서로 말을 하지 않을 때가 있다. 한국 같으면, 어디 아빠에게 꼬박꼬박 말대꾸하냐고 따질 수도 있지만, 아들은 아빠가 만만해서 그런지 번번히 말때꾸를 한다. 아, 자기 입장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미국의 개인주의 문화 때문이겠지. 나는 애써 마음을 다스려본다.
이런 아들이 작년에 졸업을 했는데, 임시직은 이제 그만하고, 안정된 일자리를 가져야 될텐데.. 이런 부모의 마음을 알아서 일까? 아들은 팬데믹 시기 중반이 될때 더 적극적으로 직장을 알아보았다.
전공도 경제학으로 회사에도 어느정도 필요한 전공이고, 영어 뿐만 아니라 한국어, 스패니쉬도 잘했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 부터 우리는 집에서 한국말을 하면서, 아들은 자연스럽게 한국말을 할 줄 알며, 한국 드라마를 잘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집에 있던 ‘대장금’ CD를 자주 틀어 대사과 내용을 꿰고 있었다. 등장 인물들도 꿰고 있었다. 한상궁, 최상궁, 금영이, 민상궁, 민정호 나리 등.. 장금이가 위기를 당하거나 이를 이겨낼 때면 화면에 바짝 다가갈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 아마 장금이가 예쁘기도 했었겠지.
스패니쉬는 어떤가? 고등학교가 공립학교지만 시험쳐서 들어가는 학교였다. 이 학교는 스페니쉬어 공부 때 ‘돈키호테’ 소설을 교과서로 사용했다. 딸 방에서 본 그 책은 얼마나 두꺼운지.. 처음에는 학교 친구들, 특히 히스패닉계 미국 친구 보다 뒤쳐졌지만, 특유의 자존심으로 열심히 공부해 당당하게 이들과 어깨를 겨룰 정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남는 시간을 아껴야 한다며, 자기가 아르바이트로 번돈으로 온라인 1대 1일 공부를 하기도 했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미국에는 히스패닉이 인구도 많고 비율도 커지잖아. 기업들이 히스패닉 상대로 비즈니스를 넓히거나, 중남미로 비즈니스를 넓히는 상황이라, 아들이 스패니쉬를 잘하면 취업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아내도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경제학 전공에다 영어, 스패니쉬, 한국어를 잘 하는 아들. 앞날에 기대가 컸다.
물론 팬데믹이 시작된 후에는 본인도 감염 우려 때문에 취업하는 걸 좀 꺼려했고, 채용 공고도 많이 줄어든 편이었다. 바로 그 팬데믹 때문이었다.
그런데 팬데믹이 좀 지나고 미국 경기가 점차 회복되면서, 소비도 늘었다. 감염 가능성이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근로자들의 일자리 재개를 망설이는 상황이었다. 자연스럽게 회사들의 직원 채용 공고가 많이 늘어나는 희소식이었다. 아들에게 말이다.
키도 180에 매너도 있는데다, 자기 의견을 발표할 때는 완전히 미국인이 된 모습으로, 빠르게 또박 또박 자기 의견을 말하는 아들! 그런 아들이 번번히 Zoom을 통한 입사 인터뷰에서 찬밥신세가 되었다.
아들은 말했다. “인력이 1백명 이상 넘은 회사 채용 담당 직원들이 말미에 반드시 백신 여부를 물어보니, 거짓말 할 수도 없잖아!” 인터뷰가 끝난 직후 번번이 화를 내는 것이었다. 비교적 작은 회사들의 경우 백신 접종 여부가 물어보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이를 확인해서 번번이 취업을 할 수 없었다.
아들이 취업을 원했던, 작지만 성장 가능성이 높은 메타버스 분야의 회사. 미드 맨해튼에 있는 이 회사에 아들은 최종 합격해 첫날 출근을 했다. 아들은 무척 기뻐했다. 아들은 앞으로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가 합쳐지면서, 소비자들의 구매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메타버스 파워의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며 그 분야를 원했다. 팬데믹 기간중에 따로 ‘코세라’라는 저렴한 학비의 온라인 프로그램에서 증강현실, 가상현실, AI를 배웠다. 성적도 대부분 A학점이 나왔다. 이수한 강좌만해도 12개. 경제학에다 IT, 인공지능 등을 아는 아들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그런 아들은, 첫날 이 회사 HR 직원과 입사 구비 서류 얘기를 나누다가, 아들이 백신을 맞지 않은 것이 확인되었다. 인원이 많지 않은 회사라서 그런지 팬데믹 관련 고용 절차가 체계적이지 못했는지, 인터뷰 때에는 접종 여부를 아들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뒤늦게 확인하게 됐다는 것이다.
아들도 매번 백신 때문에 합격이 좌절되는데다, 굳이 백신을 맞지 않았다고 일부러 자수를 하지는 않았다. 백신 접종이 선호되지만, 입사하자마자 당분간 주 5일 재택 근무를 제공하는 회사도 있기 때문이었다.
출근 첫날 왜 빨리 집에 들어오는 가 싶었는데, “백신 안맞아서 채용 못한데!” 한마디 하고 문을 쾅 닫고 자기 방에 들어가 버렸다. 그렇다고 나나 아내가 아들 방에 무작정 들어갈 분위기도 아니었다. 아들은 화가 날때는 혼자 있기를 원하는 성격이었다.
아내가 살짝 문에 귀를 대고 있으니 방안에서 주먹으로 책상을 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조금 있다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다.
나와 아내는 거실에서 서로 바라보기만 했다. 아내는 아무말 없이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야채를 다듬기만 했다. 집안에 침묵이 계속되었다.
아! 이를 어쩐 담?.. 내 직장의 상사도 내가 왜 백신을 맞지 않는지 의심스런 눈길을 보내고 있다. 다른 직원들은 모두 맞았는데, 어쩌지! 물론 팬데믹 기간중이라 이틀만 사무실에 나가고, 사무실과 그 빌딩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접종을 했어도 마스크를 쓰고 근무하고 있다.
당분간 백신을 맞지 않은 상태로 눈치를 보며 겨우겨우 지나는데, 앞으로 회사가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 된다. 나는 부엌으로 다가가, “여보, 우리 어떻게 하지?, 우리 백신 맞을까?”. 아내가 접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인 걸 알지만, 아들도 이런 상황이 되다보니, 아내에게 조용히 한마디 던졌다.
아내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한마디 더했다. “당신 회사도 매일 재택 근무 체제지만, 사무실 근무가 시작되면 마스크 뿐만 아니라 접종을 요구할 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내인지라, 나는 조용히 우리 가족 3명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얘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는 조용하지만 평상시와는 달리 단호하게 나왔다. “나는 맞지 않을 거야. 백신들은 유산된 태아에서 세포 배양으로 개발되는 거 알아?”
“아니, 모든 백신이 그렇게 만들어 지지는 않잖아!”.
“백신은, 코로나 백신 대부분도 태아의 배아 세포를 통해 연구실에서 키워 백신을 개발하는 거야. 천주교와 기독교 기관들의 입장이 있겠지만 개인의 양심이나 종교 자유를 억압할 수 없지 않겠어. 헌번에도 개인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잖아” 아내는 워낙 꼼꼼한데다, 이미 리서치를 한 것 같았다. 아니, 백신 부작용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아들에게 배운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흠.. 백신 접종은 윤리적인 문제도 있구나. 부작용에 대한 심각한 문제는 이미 캐나다에 있는 조카의 감염으로 뼈저리게 느꼈는데.. 아내의 단호한 접종 거부에 말문이 막혔다. 아내와 딸의 접종 거부.. 나는 이대로 애매한 입장에서 살순 없었다. 백신의 문제점에 대해 우선 확실히 알아야 겠구나..
나는 아들 방문을 조용히 두드렸다. “너 마음, 이해해. 백신 문제점에 대해 내가 정확하게 알고 싶은데 부엌으로 와줄래? 엄마랑 우리 셋이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살짝 연 방문으로 아들이 보였다. 책상에 엎드려 있다 상체를 일으킨 얼굴에 눈물 자국을 조금 지워져 있었다. 나는 그 말만 하고 조용히 부엌으로 가서 아내 옆에 앉았다.
아들이 부엌으로 다가왔다. 조금 아까 까지만해도 감정이 북받쳤던 아들은 놀라우리 만치 차분히 설명을 했다. 이런 대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말이다.
백신 접종에 반대하는 이유가 3가지 란다.
우선 우리 가족들은 유달리 혈관이 약해 접종이 위험한데 특히 아빠의 경우는 심장을 둘러싼 혈관이 약하고 박동수가 일정치 않은 지병이 있다는 것이다. 혈관에 피해를 줄 경우 치명적인 결과가 온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이 주로 접종을 반대하는 편이란다.
아들은 갑자기 고등학교 사회과목 교과서를 가져오더니, 미국 정치 부분의 글을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엄마, 아빠, 미국 헌법에는 외부 세력이나 주정부 이건, 연방정부 이건 개인의 신체나 안전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거나, 제한 할 수 없다는 분명한 조항이 있어요. 그리고 미국은 건국초기 부터 개인의 자유와 주정부의 자유가 먼저 생겨났는데, 나중에 만들어진 연방 정부가 개인의 자유, 특히 안전에 대해 통제하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헌법을 저버리는 거예요.”
아들은, 헌법에 스며든 미국의 핵심 가치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외부의 행위에 단호히 배격하는 DNA가 있다고 한다. 총기 소지 자유도 예를 들었다. 한마디로 총기를 단속하기 위한 연방 정부, 특히 민주당 연방 정부의 입장도 있지만 보수주의자인 공화당은 개인의 안전과 보호를 먼저 중요시 하기 때문에 총기 소지를 허용한단다.
“아들아, 미국에는 총기가 너무 많아. 오히려 잘못 사용해 많은 인명 피해가 나잖아. 한국이나 일본처럼 총기 단속을 해야하지 않겠니?”
“아빠, 미국은 불법 총기 수입이 많은데다, 개인의 안전과 생명이 중요하기 때문에 총기 오용의 문제는 오히려 취득자의 자격을 강화하는 기술적인 문제로 해결하자는 입장이에요. 총기 소지와 접종 반대 입장은 개인의 안전과 개인의 자유라는 입장과 연결되는 면이 있어요.”
아들은 둘째 이유를 지적했다. 종교적인 이유. 코비드 19 백신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백신은 유산된 태아(Aborted Fetus)에서 만들어 진다고 한다. 요사히 미국에서 중절 수술 서비스 기관에 대해 찬반양론과 심지어 폭력 사고까지 발생하고 있지 않은가. 불법 시술을 통해 생명을 잃어버리는, 유산된 태아에서 만들어지는 백신. 이를 허용하는 것이 종교적인 입장에서 허용되면 태아의 생명을 무시하는 비양심적이고 비도덕한 행위라는 것. 이중에 불법 시술로 유산된 태아가 얼마나 많은지 설명하면서 아들은 두 팔로 큰 제스처를 썼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접종 거부하는 큰 이유는 의료적인 이유 때문이란다. 지난 수백년간 백신들은 적어도 2년, 때로는 10년이 걸려 개발되었단다. 그런데 mRNA로 말들어지는 코비드 19 백신은 수개월내에 신속하게 만들어진 백신 이라는 것이다. 충분한 임상 테스트가 없이, 급하다는 이유로 백신 접종을 요구해, 부작용, 경련, 뇌출혈, 숱한 사망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며 아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캐나다 조카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 나는 말없이 아들의 설명을 듣고 있던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도 내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코비드 백신의 심각한, 치명적인 부작용에 대비해서 조심해야 하는데.. 사람들에게 취업을 막고 직장에서 해고 위협까지 하면서 접종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부당한 조치가 아닐까? 균형잡히지 않은 조치야! ‘
또다른 생각도 들어온다.. ‘접종만 반드시 고집하지 말고 마스크 착용에다 사회적 거리 유지… 대중 시설 이용 숫자 제한, 그리고 식당에서 느꼈지만 내부 환기 개선 등 방법이 많을 텐데..’
나도 모르게 점차 양쪽 주먹을 힘있게 쥐었다. 강제적인 접종 제재에 대한 반발이었다.
부엌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엄마, 아빠, 저 방으로 들어갈께요. 여기서 포기할 수 없잖아요. 경제학과 IT쪽으로 채용하는 회사를 찾아보고 지원서를 낼께요” 아들의 목소리는 강해보였지만 절박함이 스며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