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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병원의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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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Z May 18. 2020

삼각김밥과 바나나 우유

무지개


삼각김밥: 참치나 불고기 따위를 안에 넣은 삼각형 모양의 김밥. 가공식품 형태로 제공되는 패스트푸드의 하나로 편의점에서 판다(국립국어원 우리말 샘).

바나나 우유:   바나나 성분을 넣거나 첨가물을 가미하여 바나나 맛이 나도록 가공한 우유(국립국어원 우리말 샘)


병원의 밤은 길고 밥은 ......없다. 심장 수술은 항상 애매한 시간에 시작되고 애매한 시간에 끝이 난다. 늦잠을 자버린 아침, 밥을 먹지 못하고 출근을 했다면, 그날은 종일 굶을 가능성이 높다. 병원에 도착하면 바로 팀원들과 함께 환자 브리핑을하고 환자를 만나고 나면, 아침밥을 먹기에는 모자란 조각난 자투리 시간만 남는다. 아주 운이 좋아 탈의실에 빵 몇 조각이나 삶은 계란이라도 놓여 있었다면 입에 집에 넣고 수술을 들어갈 수고 있겠지만 보통은 삶은 계란의 껍질을 까거나 팥빵의 비닐을 열려는 순간, 문자나 전화 알람이 울린다.


“빨리 들어오세요. 늦었어요. 수술 준비 다 됐어요.”


수술은 입장과 동시에 시작된다. 일 년 내내 하는 일이지만 손을 씻고 환자 기록을 다시 보고 영상을 재차 확인하며 재미없는 농담으로 긴장을 풀어봐도 매번 긴장은 된다. 호흡을 가다듬고 수술 메스 날카롭게 환자의 몸에 닿고 시작되면 수술을 쉬거나 멈출 수는 없다. 오늘의 수술이 흥미롭지만 재미없고, 건조하고, 무용담 꺼리가 안되길 바라며 첫 메스는 나아간다. 생각했던 것처럼 수술이 잘 끝난다면 두세 시, 수술이 커져 버리면 네다섯 시, 생각이 그저 기원에서 그쳐 버렸다면 수술시간은 더 길어진다. 수술을 하는 동안 내 식도를 통해 들어올 수 있는 것은 말라비틀어진  나의 침 정도?


 심장수술을 한 환자는 수술이 끝나면 대부분 중환자실로 간다. 흉부외과 의사들은 중환자실 환자 옆에서 환자를 지켜야 한다. 혈압이 떨어지지는 않는지, 소변은 나오는지 혹시 피가 나지는 않는지, 의식은 잘 깨어나시는지 고민은 많아진다. 수술 시간이 길어져 애 닳은 보호자는 드라마처럼 수술장 앞에 서 있다. 하지만 드라마처럼 의사가 수술장 문 앞에서 "수술은 잘 됐고요. 기다려 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휙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질 수는 없다. 잠시 보호자와 눈인사를 하고 그저 환자의 침대를 따라 중환자 실로 들어간다. 시간이 된다면 문자로 전송된 수술장에서 찍은 환자분의 망가진 심장 사진을, 동영상을 기다리던 보호자에게 보여 드리며 설명을 드린다.

 

환자가 안정되면 밥을 먹을 틈이 생긴다. 보통은 4시경. 어떨 때는 다섯 시경. 병원 식당에서 배달된  한때는 따듯했을 차가운 음식을 먹는다. 주의할 점은 용기와 국물은 따로 배달된다는 것. 비닐봉지에 담겨온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흘리지 말고 스츠로폼 용기에 옮겨햐 한다. 맛이 없는데 식탁까지 더러워져 버리면, 아주 잠시지만 서글퍼진다. 조심해서 찌개를 옮겼다면 먹으면 된다. 배가 고프고 지치고 힘이 들고 분명 보람찬 일을 했지만 역시 맛은 없다. 하지만 그런 것 신경 쓰지 말고 눈앞의 음식을 있을 때 먹으면 된다. 듬북 포함될지 모를 비닐과 스트로폼용기에서 나왔을 환경호르몬은 잠시 잊어버리고 다만 스티로폼 용기가 잘라져서 입안으로 들어오지 말기만를 기원하거나 모래가 씹히지 않기를 기원하며 그저 밥을 먹으면 된다.


그 후에는...... 하루를 정리할 수 있다. 다른 환자들 차트를 확인을 하고 회진을 돌다 보면 병원에서 저녁밥을 주는 시간이 돌아온다. 늦은 점심을 먹은 나는 아주 쿨하게 다이어트 결심을 하면서 식당에 가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인가 대단한 일을 할 것처럼  당직 방에 들어온다. 차트를 보고, 기록을 뒤적이고, 논문을 쓰기 시작하지만 금방 종일 못 본 인터넷 기사를 읽고 티브이를 채널을 돌리고 집에 전화하다가 잠시 의식을 잃는다. 환자가 피가 나는 꿈, 누군가에 눌려있는 꿈, 도망가는 꿈, 혈압이 떨어져 연락 오는 꿈을 꾸다가 벌떡 깨 보면 시간은 새벽이 된다.


갑자기 바빠진다.  '혹시' 하고 핸드폰 메시지를 확인하고, 응급 연락이 잠든동안 없었음을 감사하고, 중환자실에 전화를 해서 오늘 환자가 문제는 없었는지를 물어본다. 조금 정신이 나면 다시 컴퓨터를 켜고 차트를 본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중환자실에 다시 찾아가 환자를 만난다. 환자분들은 실눈을 뜨고 인공호흡기를 빼라고 눈짓을 하거나, 가끔은 발로 걷어찬다. 얻어맞은 의료진은 "그래도 의식도 멀쩡하고 힘도 있으시니 다행이네요."라고 말한다.

  

시간이 가면, 배가 고파온다. 충동적으로 결심한 저녁밥 안 먹는 다이어트는 이미 잊어버렸다. 텅 빈 병원은 정말 조용하다. 병원에서 보내준 야식 꾸러미는 왠지 먹기 싫다는 생각이 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편의점에 내려간다. 삼각김밥이 생각이 났다. 어떤 맛을 먹을까? 마지막에 먹은 게 마요 참치였나? 혹시 남아 있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고민을 한다. 우유는? 혼자 치유의 음료라고 결론을 내린 바나나 우유로 결정했다. 어릴 적 소풍 갈 때 가져간 수류탄처럼 생긴 바나나 우유. 편의점에 도착해 문을 열어본다.  “정산을 위해 장례식장에 다녀옵니다.”라고 쓰여있다. 직원의 연락처 따위는 없다. 그래도 편의점 문은 닫혀있지만 다행히 진열장위에 남아있는 삼각김밥이 놓여있는 것이 보인다.

 

멍청히 편의점 직원이 붙여 놓은 메모지를 보고 서있다가, 편의점 앞 긴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당직실에 갔다 다시올까?' 잠시 고민에 빠지기도 하지만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간, 딱히 올라가 당직실로 가도 할 일은 없다. 한참을 편의점 앞에 앉아 있으면 직원은 돌아온다. 구원자를 만난 듯 나는 그를 따라 편의점에 들어간다. 다행히 삼각김밥이 남아있고 바나나 우유도 남아 있다. 빨대를 챙기고, 컵라면을 하나 사려다 아침에 얼굴이 부을 것 같아 포기한 채 검은 비닐봉지를 흔들며 중환자실에 잠시 들렸다가 당직실로 올라온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 오늘 한 끼밖에 못 먹었었네.'

 

병원의 밤은 길고 밥은 없다. 그래도 삼각김밥과 바나나우유는 맛이 있다. 어쩔때는 사놓기만 하고 중환자실에서 못 올라와 다음날 아침 버리기도 한다. 그렇지 않은 날이면 나는 다음엔 불고기 맛 삼각김밥을 먹어야지 라고 생각하다 옅은 잠을 자며 중환자실 전화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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