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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Oct 30. 2022

아빠의 프리패스

저 새를 따라가면

아버지를 보리라.

해 저물어 잎도 가지도 지워진

참나무 숲을 지나고,

불 꺼진 절간을 스쳐 갈 때쯤

풍경 소리에 섞여 내리는

눈발도 보리라.


늦은 아버지 음성이

장지문을 건너와

늦도록 꿈결을 스치다 잦아들면

어린 날의 꿈자락엔 산수유 노란 꽃이

무리져 피어나곤 했었다.


......이제, 귀도 눈도 어두워진

이순의 아들이

불면의 밤을 지내고 아침

을 열면

산수유 늙은 가지가

말라붙은 산수유 열매들을

매달고 있는 게 보인다.


이건청 시인의 산수유가 있는 새벽을 우연히 접하고는 자연스럽게 아빠가 떠올랐다.


"여기 새로 생긴 수목원도 만 65세 이상은 공짜더라.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얼마 전 아빠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하신 말씀이다. 지난 추석 연휴, 가까운 수목원에 부모님을 모시고 갔을 때 매표소에서 신분증 확인 후 지역주민 할인받으며 요금을 지불해야 했던 우리와 달리 아빠는 신분증에 표기된 56으로 시작하는 숫자 확인만으로 바로 입장이 가능하셨다. 그날도 분명 내 아빠가 언제 만 65세나 되셨나 씁쓸했던 적이 있는데 아빠의 말씀에 나는 뭐라고 답을 해야 좋을지 떠오르지 않아 어색한 웃음을 감추며 새로 생긴 수목원 어떠냐고, 나도 가 보고 싶은데 아직 못 가본 곳이라며 요란을 떨었다.


백세 시대라고 불리는 요즘 세상에 만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인정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고 연령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쨌든 빠는 현재 법령에 따라 주민등록번호 앞자리의 두 숫자 '56'으로 다양한 곳의 프리패스권을 얻으셨다. 며칠 전엔 아빠 혼자서 전철 타고 춘천까지 다녀오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상봉역까지 가서 춘천행으로 갈아탔는데 가는 데만 3시간이 걸 엄청 지겨웠다고, 막국수 한 그릇 먹고 비내리는 바람에 어딜 가보진 못하고 대합실에 머물다가 돌아왔다고 하셨다. 아빠는 어떠한 마음으로 혼자 전철에 오르셨을까. 주말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러셨을 테지만 그 여정에 동행할 친구가 없다는 사실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아빠의 너털웃음은 어디서 왔을까? 살아온 삶보다 살아갈 삶이 더 짧다는 것을 입증받는 듯한 씁쓸함에서 왔을까? 아빠의 나이가 되면 나는 어떤 기분일까? 그 나이가 되면 지금 아빠의 너털웃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가끔이라도 아빠의 프리패스 여정에 함께 해드릴 수 있도록 시간을 내어봐야겠다.


내 나이 이순이 되었을 때에도 아빠가 내 곁에 계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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