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붐이 일어났을 때 몇 번을 해봐도ISFJ가 나오길래 그런 줄 알고 살아왔다. 최근 SNS에서 자주 보이던 'MBTI별 기내 모습'에서 ISFJ가 결정장애라고 쓰여 있는 걸 보고는 '나는 이렇지 않은데?' 싶어다시 테스트를 해보니결과는 ISTP.긴가민가 했던 문항들의 입력 값을 달리 해가며 다시 해봐도 결과 값은 같았다. 아, 내가 변하긴 했구나.막연하게 20대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음을 느끼고 있었지만 실제로 다른 결과 값을 손에 쥐고 보니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가까운 관계라고 할 수 있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말을 하지 못하고 만날 때마다 힘겨워하는 육아동지가 있다. 그동안 그녀가 어려움을 토로할 때마다 왜 말을 못 하냐, 그런 말은 해도 괜찮다, 말하지 않으면 그 관계는 계속 제자리걸음일 것이다 등으로 나름의 위로를 해왔다. 며칠 전, 그녀가 이전과 비슷한 토로를 하는데 문득 이 질문이 떠올랐다.
"혹시 다른 사람이 너를 싫어할까 봐 두려워?"
그렇다고 대답한 육아동지에게 말했다.
"모든 사람이 날 좋아할 순 없어. 너 나 싫어해? 응, 나도 너 별로야.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말아."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도 처음부터 이 정도로 의연한 사람은 아니었다.'이렇게 말하면 싫어하겠지?' 혹은 '아까 그렇게 말해서 나한테 실망했으려나?' 같은 생각들을 곱씹느라이불킥하며 머리 아프던 과거가 분명히 있었다. 그때는 MBTI라는 걸 몰랐던 시절이라 혈액형이 A형인 나는 스스로를 트리플 A형이라고 단정 지었으니 지금과는 달라도 많이 달랐던 모습이다.
무엇이 나를 달라지게 했을까?
나의 30대는 오로지육아였다. 살기 위해 숨 쉴 구멍 정도만 만들었을 뿐 다른 무언가가 끼어들 틈이 없이 온통 육아로 채색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건 부모의 뼈와 살을 갈아 넣는 일이라는 말이 점 하나 빠짐없이 와닿을 정도로 육아로 보낸 10년이었다. 오랜 친구들, 마음 맞았던 동료들은 만나기 어려워지고 조리원부터 시작해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를 보내며 겪은 관계. 나를 달라지게 한 건 그것에서 비롯되었다. 지속될 줄 알았던 관계는 단절되었고 스치듯 인연으로 끝날 것 같았던 관계는 유지되었고 가까이하기에 어려울 것 같았던 관계는 가까워졌다. 관계를 잊고 잇는 과정에서 나의 안중에는나, 아이들, 남편뿐이었다. 결국 온전한 가정의 건강을 위해 애쓰고 돌봐야 할 것은 가족이었고 자연스럽게 가정 밖의 관계에 시선을 길게 둘 수 없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나였기에 나의 안온함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지면 빗장을 걸거나 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누가 알려준 적도 없고 시키지도 않았지만 차곡차곡 체득했던 것들이 본능적으로 힘을 발휘하다 보니 달라진 게 아닐까?
출처:진에어 공식 인스타그램
'MBTI별 기내 모습'에서 ISTP는 여행 기념 안 입던 옷을 입고 편안하게 앉아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 기가 막힌 그림이다. 이번 겨울, 아직 여행 다운 여행을 다녀오지 못했는데 더 늦기 전에 새 옷 입고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