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이랑 Jan 28. 2023

너에게 더 이상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아

단톡방을 나갈까 말까 고민 중이야.

나간다면 어차피 다른 친구들은 알고 있으니 말없이 그냥 나갈까, 아니면 너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고 나갈도 고민 중이고.


우리가 오랜 친구라 관계를 깨버리는 게 그 오랜 세월을 부정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었나 봐. 그동안 친구니까, 친구라서 이해하고 넘어갔다면 이제는 그 짓 그만하고 싶어. 너에게 더 이상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거든. 아무렇지 않은 척 모여 앉아 억지웃음 짓는 거, 너도 살아면서 한 번쯤은 해봤지? 너와 만나는 자리에서 내가 그랬어.

도대체 언제부터 그랬는데?라는 질문은 사양할게. 내가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너도 분명히 알 테니까.

그렇게 안 보였다고? 반가운 척, 좋은 척 했던 거 지금이라도 사과할게. 이중적이라고 욕해도 괜찮아. 억지웃음 지으며 억지로 리액션하던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나도 내가 역겹거든.


사실 네가 먼저 모이자고 했을 때 그 말이 하나도 반갑지 않았어. 약속한 날짜가 다가오는 동안 내 머릿속엔 나가기 싫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말 다 했지? 먼저 모이자고 해 놓고 약속 전 날까지 시간이며 장소며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는 걸 보며 역시 너답다 싶었어. 나의 바람이 닿은 거니, 결국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약속은 미뤄졌는데 두 달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 너도 아무런 말이 없는 걸 보면 어쩌면 너도 나에게 내가 너에게 갖고 있는 감정과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해.


그거 알아?

이번에 나 처음으로 네 생일을 축하해주지 못했어. 아니, 축하해주지 않았어. 마음에도 없는 축하 하고 싶지 않았고 이러면 너도 나의 의중을 눈치채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도 있었던 게 사실이야. 눈치를 챘는지 못 챘는지...... 며칠 뒤에 있었던 내 생일에 단톡방에 생일 축하한다고 남겼지? 자정을 몇 분 앞두고 남긴 축하 메시지...... 네 마음 편하자고 날짜 지나기 전에 남긴 것 같아 그것 역시 반갑지도 고맙지도 않았어. 어떠한 말도 하고 싶지 않아 이모티콘 하나 달랑 보내고 나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현타가 오더라.


궁금한 게 있어. 너는 그날의 일이 찌꺼기 없이 정리가 됐어? 나는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닦지 못하고 나온 것 마냥 그렇게 찝찝할 수가 없어. 시간이 이만큼이나 지났어도 여전히 찝찝한데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날의 일을 수면 위로 꺼내 깨끗하게 닦아 정리하고 싶지는 않아. 아마 깨끗하게 닦이지도 않을 거야. 여전히 너는 상대방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네 입장만 피력할 테니까.


내가 이야기한 적 있는데 혹시 기억해? 사회에 나와 너를 알았으면 너랑 친구 안 했을 거라는 말. 웃어넘기듯 했던 그 말, 나의 진심이었어. 친구가 전부인 줄 알았던 시절에 만나 이상한 줄 모르고, 잘못된 줄 모르고 뭐든 이해하려 들었나 봐. 우리 부모님 조차도 너를 올바른 아이라고 자주 칭찬을 하셨지만 어느 날부터 나에게 너는 빗나간 아이였어. 그땐 어려서 몰랐다면 지금은 아니라는 뜻이지. 이 사람, 저 사람 산전수전 겪어보니 나는 너와 안 맞아도 정말 안 맞는다는 걸 깨달았어. 글쎄,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날이 언젠가 올진 모르겠어. 네 말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내기 바쁘고 그 와중에 내가 나서서 그런 시간을 만들어 볼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이렇게라도 내 마음을 전해.

여전히, 그렇게, 네 테두리 안에서 잘 살아가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