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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Feb 28. 2023

<1박 2일>의 힘

평화롭게 공부하는 방법

딸이 이실직고를 하고야 말았다.

"엄마, 나 사실 <1박 2일> 보려고 일요일에 외가 가는 거야."


어쩌다 일요일에 친정에 가게 되면 딸은 친정 아빠가 시청하시는 <1박 2일>을 깔깔거리며 보곤 했다.

지난 주말, 아빠를 모시고 인천 바닷가로 드라이브를 떠났는데 딸은 잘 따라다니면서도 할아버지 집에 언제 가냐고 여러 번 묻곤 했다. 외출하고 돌아오신 아빠가 편히 쉬셨으면 하는 마음에 다음에 가자고 했지만 알고 보니 마음속으로는 외가에서 저녁까지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의 진실은 바로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이었다.


딸의 성화에 아들까지 거드는 통에 결국 친정에 들렀고 어김없이 <1박 2일>을 시청하게 되었다. 딸은 한 장면도 놓치지 않겠다는 눈빛으로 소파에 자리를 잡더니 화면이 전환될 때마다 쉬지 않고 웃어댔다. 웃음보가 터진 딸을 보며 나도 계속해서 웃음이 새어 나왔고 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저 아이가 늘 이렇게 해맑은 모습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다음 날 점심시간, <1박 2일>이 밥상 위 소재로 올라왔고 딸은 집에서는 엄마가 못 보게 한다며 아쉬워하더니 바로 협상을 시작한다.

"엄마, 내가 문제집 잘 풀 테니까 한 번만 보게 해 주면 안 돼?"


단호박 스타일의 엄마지만 배꼽 달아날 듯 깔깔거리던 딸의 모습이 잊히지 않아 기꺼이 협상을 성사시켰다.

"좋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짜증 내지 않고 즐겁게 하면 일요일에 1박 2일 보게 해 줄게!"


이 한 마디에 딸의 태도가 달라졌다. 열 번 중 아홉 번은 하기 싫다며 짜증 내고, 채점하다 틀리면 한숨을 뱉어 내고, 틀린 문제 확인하면 오만상을 찌푸리던 딸은 매 순간마다 부러 웃으며 심호흡을 했다. 짜증이 나려는 순간, 엄마가 화를 낼 뻔한 순간마다 <1박 2일>을 떠올리며 하하하 웃어 버린다. 스스로 애쓰는 모습이 귀엽고 기특했다.

"짜증 안 내려고 심호흡하고 웃는 거 보니까 엄마도 짜증 안 나고 너무 좋은데? <1박 2일>이 그렇게 좋아?"

"응! 엄마 진짜 내가 잘하면 보게 해 줄 거지?"


아직 며칠은 더 두고 봐야 하지만 이번 주 일요일 저녁만큼은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아야겠다. 그때도 웃음보가 터진 딸의 모습을 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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