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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Oct 03. 2023

흔한 남매의 흔하지만 특별한

추석 아침, 제사상 정리를 끝내고 아침 식사 준비가 끝나갈 무렵 둘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정제된 소리의 "그만해."를 듣고 멈춰주길 바랐지만 작은 체구를 최대한 활용해 온몸으로 텔레비전의 화면을 가린 둘째 녀석과 1등 결과만 보고 텔레비전을 끄겠다는 첫째의 공방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첫째는 원하는 장면만 보고 얼른 끄려고 리모컨을 쥔 채 손가락 하나를 전원버튼 위에 올리고 있었는데 그 손가락을 둘째가 잽싸게 눌러버리고 말았다. 갑자기 꺼져버린 화면을 보고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첫째는 둘째에게 쏘아댔고 마침 방에서 나오고 있던 남편이 그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너희 둘 다 방으로 따라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훈육하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귀만 열어둔 채 마저 할 일을 했지만 시부모님은 손주들이 당신들 아들한테 불려 들어갔다는 사실을 굉장히 불편해하고 계셨다. 첫째는 무자비하게 꺼 버린 동생 때문에 억울하다며 눈물을 고 둘째는 밥상이 다 차려졌는데도 누나가 텔레비전을 끄지 않으니까 그런 거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결국 빨리 데리고 나오라는 시아버지의 요구에 "냅 둬요."라고 대꾸하셨던 시어머니가 참지 못하시고 들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셨다.



뜨거웠던 여름 만 6세를 지난 둘째가 이전보다 까부는 정도가 심해진 건 사실이다. 아들손주를 끔찍하게 여기시는 시부모님도 이번 추석을 지내며 인정하셨다.


"야야, 쟈가 많이 까불기는 한다."


그런 동생을 둔 첫째의 심정을 같은 장녀의 입장으로 십분 이해한다. 그래서 괜히 누나를 건드리고, 엄마보다 더 잔소리를 해대는 둘째를 단속한다고 하는데 첫째의 입장에선 성에 차질 않나 보. 억울한 첫째는 동생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엉엉 울기도 하고, 힘든 첫째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며 외가 찬스로 자고 오기도 한다. 동생 말고 언니랑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동생을 앞에 두고 보란 듯이 말하는 첫째지만 말과는 달리 동생을 살뜰하게 챙기는 것 또한 첫째다. 동생 스트레스가 심한가 걱정이 되다가도 엄마인 나 보다 동생을 잘 챙기는 모습을 보면 괜한 걱정이구나 싶을 때가 잦다.

지난여름, 남편 없이 우리 셋은 캠핑장으로 떠났다. 두 녀석 모두 물에 대한 겁이 많은데도 첫째는 수영장에서 동생이 보트형 튜브에서 안전하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때마다 도왔고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지자 자기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동생 머리에 씌워주었다. 같이 가자고 해놓고 앞서 가버리는 동생에게 불같이 화를 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동생 머리를 자진해서 감겨준다. 그날 저녁, 첫째에게 말했다.


"엄마가 보니까 네가 동생한테 모자도 씌워 주고 머리도 감겨 줬잖아. 그 모습을 보는데 엄마는 네가 너무 기특하고 감동이었어. 동생 싫다 싫다 하지만 사실은 너무 귀엽지?"

"아니야! 하나도 안 귀여워!"

"거짓말하지 마! 안 귀여운데 어떻게 그러냐!"


흔한 남책에서 봤다며 동생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가지 방법을 외친다.

무시한다! 못 들은 척한다! 반응 안 한다!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네가 아무리 싫다고 해도 엄마는 그리고 아빠는 너희 둘 낳은 걸 제일 잘한 일로 꼽고 있어. 6일 연휴의 마지막 날인 오늘도 아침부터 고성이 오고 갔지만 동생한테 카페 놀이 하자는 것도 껌 사러 나가자고 하는 것도 다 네가 먼저 제안한 거 알지? 늘 동생을 향한 말과 행동이 다르지만 그것만큼은 엄마가 평생 눈 감아줄게.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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