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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Mar 31. 2024

남편의 취향을 찾아서

당신이 좋아하는 건 무엇입니까?

여행이 가고 싶었다. 아니, 사실 제주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강력했다.

코로나가 지구를 덮치기 전 여름, 가족과 함께 제주에 다녀온 이후 나만 친구들과 두 번을 더 다녀왔다. 2023년 한 해를 잘 보내준 가족들과 특별한 마무리가 하고 싶었고 썰매로 대동단결이 된 아이들의 의견을 적극 받아들여 여행지는 양주로 결정이 났다(양주에 위치한 눈꽃축제 눈썰매장 강력추천!). 그런데 SNS만 들어가면 보이는 제주 동백 사진을 보고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남편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너무 예쁘지 않아? 가고 싶다."

"그럼 가자."

이틀 전, 생굴을 먹고 탈이 나는 바람에 다 토해내고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켜 항공권을 결제했다. 숙소는 오래전부터 찜 해놓았던 펜션에 자리가 있어 하루 전이지만 예약을 할 수 있었다. 렌터카는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가격으로는 9인승 이상 차량만 검색되어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안 해서 그렇지 역시 맡기잘한다. 우리 가족에게 적당한 차량로 임직원 할인까지 받아 야무지게 예약했다.



남편은 이렇다 할 취향이 없는 사람이다. 갖고 싶은 거 있냐는 물음에 단 한 번도 그렇다고 대답해 본 적 없는 사람. 먹고 싶은 거 있냐는 물음에도 속 시원한 대답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 작년 남편의 생일에도 갖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는 남편 덕분에 케이크 하나 산 걸 제외하고 생일 기분은 우리 모녀가 다 냈다. 딸은 체험 수업 갔다가 대단한 흥미를 느낀 폴댄스 학원 등록을, 나는 그동안 고민했던 소형가전을 결제하고 먹고 싶었던 방어회를 포장했다.


비가 내리는 날엔 동글동글 빗방울 맺힌 창밖을 바라보며 홀짝거릴 수 있는 따듯한 라테,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더운 날머릿속까지 아찔해지 살얼음 띄워진 냉면, 어깨가 절로 웅크려 만큼 추운 날엔 우거지 잔뜩 들어간 감자탕이 생각나는, 인생에서 먹는 재미가 단단히 한몫 차지하고 있는 나와 달리 남편은 언제나 '아무거나'이다. 왜 먹고 싶은 게 없냐, 이번에는 자기가 좀 정해보라고, 자기가 생각하는 맛집은 도대체 어디냐고 타박 아닌 타박을 했을 때 남편은 이런 말을 남겼다.


"자기랑 애들이 잘 먹고 좋아하면 거기가 맛집이지."


그렇게 부랴부랴 준비해 떠난 제주 여행에서 남편은 맛있게 먹은 음식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리뷰를 꼼꼼히 살피고 간 식당이 실망스러웠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고 작은 동네 오일장에서 먹은 장터 음식은 다 먹지 못하고 버릴 정도로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중 꼬치구이 고깃집은 맛있었는데 고기가 이 정도도 안 하면 장사하면 안 된다는 남편. 아무거나를 주장해도 음식엔 점수가 박한 사람이다.


봄내음이 가득한 3월 말, 우리 가족은 경주에 있다. 남편이 가고 싶다고 몇 번이나 말했던 여행지. 장거리 운전이라 늘 후보지에 넣고도 선택받지 못했던 여행지. 

여기선 남편의 취향을 저격할 식당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기야, 이제 세끼 남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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