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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Mar 11. 2024

아이는 어른의 기대보다 잘 해낸다

초등학생이 된 둘째를 보며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내비게이션을 켜 놓은 휴대폰에서 알림이 울린다.

'OOO 학생이 후문으로 하교하였습니다.'

태권도 학원 차량에 잘 탔구나 안심하며 운전대를 잡고 있는데 'OOO 학생이 정문에서 인식되었습니다.'라는 알림이 울린다.

등하교 정보를 알려주는 어플리케이션 '아이알리미'

덜컥 겁이 났고 바로 태권도 관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차량에 잘 탔다는 답변을 듣고는 안심하고, 집에서 둘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돌봄 교실(학교 3층에 위치) 선생님께서 내려가라고 하셔서 내려왔는데 사범님이 안 계셨다고 한다. 둘째는 매일 다니는 길이 후문이라 자연스레 후문으로 나갔고 태권도 차량이 없었다. 둘째는 다시 3층으로 올라가 (급한 대로 아무 교실에나 들어간 모양이다. 돌봄 교실 선생님이 아닌) 3학년 1반 선생님께 "OO태권도 차가 없어요. 도와주세요."라고 말했고 선생님이랑 엘리베이터로 내려와 보니 그때 사범님이 계셨다고 한다. 사범님은 학교에 도착하시기 전에 미리 돌봄 교실로 전화를 드렸고, 둘째는 사범님이 중앙현관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후문 쪽으로 방향을 틀었던 것이다. 태권도 학원 차량은 후문이 아닌 정문으로 픽업을 오는데 아마도 둘째가 헷갈렸던 것 같다.

둘째를 꼭 안아주며 "잘할 줄은 알았는데 기대 이상으로 잘하고 있어서 엄마는 네가 기특하고 자랑스러워!"라고 말했다.

"잘할 줄 알았는데 더 잘하고 있어? 백배 더?"


당황할 법도 한데 씩씩하게 다시 3층으로 올라간 둘째에게 안도를 느끼면서 동시에 미안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어느 때고 오롯이 엄마의 보살핌을 받았던 첫째와 달리 둘째는 유치원 종일반에 이어 초등학교 돌봄 교실을 신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일별로 나의 시간표와 둘째의 시간표가 확정되기까지 골머리를 앓았다. 우리 둘 다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지만 역시 아이들은 어른의 기대보다 잘 해내고 만다.

입학식 다음 날, 교실에서 첫 수업을 하고 처음으로 급식실로 이동해 점심도 먹고 처음으로 돌봄 교실까지 다녀온 둘째는 이런 말들을 쏟아냈다.

"엄마! 급식 맛있던데? 미역국 나왔어!"

(누나가 학교 급식 맛없다는 소리를 툭하면 해댔고, 집에서는 한 숟가락만 더 먹으라는 소리를 매일 듣는 네 입에서 나온 말이라니!)

"엄마! 왜 엄마가 데리러 와? 돌봄 교실에 끝까지 있으면 안 돼?"

(엄마 일이 일찍 끝나는 날에는 직접 데리러 간다고 했더니 나온 대답)

"엄마! 화장실 가면 OO도 보고 OO형도 만나. 유치원보다 재밌어!"

(유치원 졸업하고 초등학교 가니까 어때라는 질문에 나온 대답)


고마워, 엄마의 불안을 말끔히 지워줘서.

안심이야, 씩씩한 너라서.

그건 아니지, 친구랑 만나서 학교 갈 테니 엄마는 안 나와도 된다는 말을 벌써부터 하는 .

일하는 엄마가 느낄 수밖에 없는 짠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둘째의 말로 인해 고마운 마음으로 남김없이 덧칠이 되었다.


둘째야, 초등학생 형이 된 것 정말 축하해!

엄마가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표현할 테니 너만의 귀여움과 허세도 오래오래 보여주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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