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첫 피아노 콩쿠르 대회
존중은 기회의 박탈인가?
육아를 하며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아이에 대한 존중이었다. 아이가 싫다는 것엔 떠밀지 않았고, 아이가 좋다는 것엔 최대한 맞춰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변을 돌아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존중'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아이가 누릴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잦던 지난 8월 말, 딸이 다니고 있는 피아노 학원에서 콩쿠르 대회를 준비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작년에도 권유를 하셨지만 많은 사람 앞에서 피아노 치는 건 하기 싫다고 끝까지 거부하는 딸을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딸의 의견을 마냥 존중할 수는 없었기에 틀리면 어떡하냐고 겁을 내며 하기 싫다는 딸을 계속해서 설득했다. 한번 해보자, 틀려도 괜찮아, 준비하는 과정 만으로도 대단한 경험이 될 거라며 끈질기게 꼬드겼다.
곡을 정하고, 곡을 외우고, 곡을 외운 뒤에는 강약을 익히고, 메트로놈에 맞춰 박자를 맞추고, 상체를 조금 움직이며 치면 좋을 부분 등 딸은 3개월 내내 소나티네 Op.55 3번 1악장을 연습했다. 콩쿠르 대회 날이 다가올수록 긴장된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투정을 부리고, 잠이 안 올까 봐 걱정하기도 했다. 콩쿠르 대회 당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긴장된다며 예민하게 굴더니 무대에 나타난 딸의 모습은 긴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의연했다.(그날 일기에 긴장하지 않는 꿀팁이 적혀 있었는데 절대 관객석을 보지 않고 피아노만 바라보면 된다는 거였다.)
학년별로 이루어지는 대회는 대상부터 특별상까지를 대회 종료 30분 후에 벽보에 수기로 발표했는데 입상자 명단에 딸의 참가번호는 없었다. 딸은 '난 도대체 몇 점을 받은 거냐'며(90점 이상이어야 입상 가능) 툴툴거렸다. 실망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함께 참가한 친구들이 내년에도 나갈 거라고 하니 자기도 나가겠다며 내년엔 꼭 대상을 받아내고 말겠단다.
딸은 단 한 번의 경험으로 인해 내년에는 엄마의 설득 없이도 콩쿠르 대회에 나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이번에도 딸이 원하는 대로 들어주었다면 이 귀한 경험은 해보지 못했겠지. 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3개월의 과정을 통해 딸은 다양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콩쿠르 대회 참가라는 기회에 딸을 떠밀었던 것이다.
육아에 있어 '존중'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부분을 말하는지 알 수 없지만 새해에도 딸에게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기회'를 만들어 줄 예정이다. 매번 져주는 엄마였는데 가끔은 이기는 엄마도 해보니 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