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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진 May 15. 2024

시계는 시간을 보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명품시계의 효용에 대하여

시계에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한 지인과 최근 명품 시계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런 질문을 했다.

“그렇게 천만 원, 이천 만 원짜리 시계 샀는데 왜 시간이 딱딱 안 맞아요?”

가격을 떠올리면 너무나 합리적인 질문이다.


내가 시계 회사 다닐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떤 고객이 자신이 산 당시 거의 이천 만 원짜리 시계를 들고 사무실로 찾아와서 내동댕이 치면서 ‘어떻게 이 비싼 돈 주고 산 시계가 맨날 이렇게 고장이냐!’고 화를 낸 적이 있다.

이 역시 너무나 합리적인 질문이다.


그런데 이 합리적인 의문에 최대한 합리적인 답을 찾아 보자면, 앞의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백 여개가 넘는, 혹은 수백 개의 쌀알 같은 부품들이 사람의 손을 거쳐서 서로 맞물려가며 시간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데 디지털시계처럼 티끌 하나 없이 순수무결한 상품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더욱이 이 작은 금속 부품들로 만들어낸 무브먼트는 중력이나 자성의 영향 등 다양한 상황과 환경으로 인해 오차가 생길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리고 물론 그 오차를 줄이기 위한 브랜드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명품시계 브랜드들의 목표는 사람의 손으로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정교함과 아름다움을 구현해 내는 것이다. 실제로 스위스 시계 장인들이 그 새끼손톱 크기의  작은 부품 하나를 손때 묻은 도구들로 연마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장인의 인내심과 집중력이 만들어 내는 아우라에 곁에서 숨소리 내는 것조차 미안할 지경이다.


스위스 라쇼드퐁에 위치한 한 시계 브랜드의 매뉴팩처에서 장인이 작업 중인 모습



지금 시대야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하고 빠른 방법은 핸드폰일 테고, 스마트 워치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오히려 기계식 시계는 오차범위를 감안해야 하고, 또 때로는 시계 동력이 떨어져서 태엽을 감아주기도 해야 하며, 또 주기적으로 as를 통해 정비를 해야 하는 만큼 디지털시계보다 불편한 것 투성이다. 

(어쩌면 당연하다. 약 200년 전부터 이어져 오는 시계 매커니즘을 이용하는 것이니 요즘 같은 빠르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시대에는 불편할 수밖에…)


그런데도 이런 시계를 왜 착용하고 싶어할까?


요즘 시대에 손목시계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바로 사치재다. 사치재에 우리가 기대하는 바는 효율성이나 생산성이 아니다.

사치재로서의 시계는 ‘내가 어떻게 보이고 싶은가’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도구다.

부의 과시이든, 스타일의 완성이든 어찌되었건 간에 ‘내가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만들어준다.


검은색 터틀넥에 까르띠에 탱크 워치를 착용하고 있는 재클린 케네디,

흰 반팔티에 브라이틀링 네비타이머 워치를 착용하고 있는 데이비드 베컴,

쫙 빼입은 수트에 금통 롤렉스 워치를 착용하고 있는 저스틴 비버.

까르띠에 탱크를 착용한 재클린 케네디


이들은 모두 자신의 이미지 혹은 스타일링에 화룡점정처럼 한 끗을 보여줄 수 있는 장신구로써 시계를 착용하고 있다.

상상해 보자. 재클린 케네디가 까르띠에 탱크 워치가 아니라 롤렉스를 착용하고 있다면 이미지는 어떻게 다르게 보여질까.

베컴이 브라이틀링을 착용하지 않고 만약 바쉐론 콘스탄틴의 대표적인 드레스 워치인 패트리모니를 착용하고 있을 때는 또 다른 분위기일 테다.


스타일의 완성 앞에서 1분, 2분의 시간 오차가 무슨 대수이며, 이미 고급시계를 살만큼의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 as 비용이 무슨 큰 상관이겠는가.

실제로 까르띠에 탱크 워치를 즐겨 착용했던 앤디 워홀은, 당시에는 시계만이 시간을 확인할 수 있었던 도구였음에도 자신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시계를 착용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그 시절부터 악세서리로 시계를 애용한 바 있다. (심지어 그는 시간이 맞지 않아도 그냥 차고 다녔다고 한다)

레옹 코리아 매거진에 실린 까르띠에 탱크 워치를 착용한 앤디워홀


그리고 비슷한 역할을 가지는 팔찌와 비교하자면 시계는 좀 더 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에  팔찌보다 시계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에티켓의 일환으로써 시계를 착용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중요한 미팅 자리나 회의에서 내가 이 미팅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고 있거나, 혹은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것이 자칫 결례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시간 확인을 위해 슬쩍 손목을 돌려 시간을 체크하는 방식은 그나마 오늘날의 시계 활용법에서 제 본래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시계는 이제 ‘시간을 읽는 도구’ 보다는 ’나를 표현해주는 사치재‘로서 더욱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계의 본질인 시간의 정확성을 뒤로 할 수는 없다.

어떤 소재를 시계에 접목시켰는가, 얼마나 얇은 두께에 그 수백 개의 부품을 넣었는가, 얼마나 복잡한 기능들을 한 곳에 모았는가 또 얼마나 정교하게 아름다운 시계를 만들었는가 등등… 고급시계 브랜드들 역시 지속적으로 매년 더 향상된 기술력을 경쟁적으로 발표하고 새로운 소재 개발과 새로운 기능 탑재 등으로 정확성과 복잡성, 정교함, 혁신과 창의성을 최우선으로 두며 시간 기능을 넘어선 한계 없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고급시계에 관심이 간다면 시계브랜드 마다 저마다의 특장점이 있는데 그것들을 알아가보는 것도 새로운 재미가 될 것 같다.)


앞에서 언급한 스타일의 영역이나 에티켓에 대한 이야기는 손목시계를 즐겨 착용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 같다. 그런데 시계 브랜드들의 시간을 넘어선 연구와 개발은 고급시계 브랜드들에게 주어진 피하기 어려운 과제다. 고급시계에 입문했다면 브랜드들의 혁신과 창의성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면 또 새로운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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