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진 May 13. 2024

만 원짜리 시계와 천만 원짜리 시계의 차이

사람은 가도 시계는 남는다

명품 시계 하나 사야겠다고 하면 반응은 대략 두 부류로 나뉜다.

“롤렉스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혹은,

“시계 뭐 대충 아무 거나 싼 거 사면되지 명품이 뭐 달라?“

(시간은 스마트폰으로 보면 된다고 말하는 의견은 여기서 제외하자. 일단 이 사람은 명품시계 하나 사고 싶다고 했으니.)



테무에서 약 1만 원대로 판매되고 있는 시계 (www.temu.com)
파텍 필립 브랜드의 칼라트라바 시계 (www.patek.com)로 한화 약 4천만 원대.



외양으로만 보자면 대략 같다. 물론 심미적 차이와 마감 등등 만 원짜리 시계와 천만 원 짜리 시계가 비할 바가 아니지만, 작은 원형 다이얼이라는 형태로만 두고 보았을 때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원형의 다이얼 (때로는 사각형 다이얼)에 가죽 스트랩으로 이어져서 손목시계의 형태를 띠는 것은 같은데, 그 다이얼 내부로 들어가면서부터 만 원이냐 천만 원이냐가 구분된다.


만 원짜리 시계의 내부 구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벽시계나 탁상시계의 뒷면을 살펴보는 것이다. 벽시계를 보면 다이얼의 숫자판 위에 시침과 분침으로 시간을 나타내 주고 있고 뒷면에는 배터리가 장착되어 있다. 이 배터리를 동력으로 끌어다 쓰는데, 이것을 작게 손목시계로 만들어서 내 손목 위에 올라와있다고 보면 된다.


반면, 천만 원짜리 시계의 내부 구조를 이해하기에는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보통 대략 3-4cm의 지름, 1cm 내외의 두께 안에 시간을, 또 때로는 날짜와 요일을 보여주기 위한 부품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 부품의 수는 수백 개가 넘는다.  (물론 시계마다 다른데, 특히 시계에 기능이 많을수록 부품의 수는 더 많아진다) 이 작은 공간에 시간의 오차 범위를 줄이기 위해 매우 정교히 작업된 새끼손톱보다 작은 부품들이 연결되어 시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배터리는? 없다. 이 천만 원짜리 시계는 배터리 없이 저 쌀알 같은 부품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면서 동력을 만들어 내 시계를 움직인다. 우리는 이것을 기계식 시계라고 부른다.


위의 파텍 필립 칼라트라바에 탑재된 무브먼트에 대한 설명으로, 3cm가 안되는 원형 무브먼트 안에 161개의 부품이 있다. (출처: 홈페이지)



시계의 기원을 찾아보면 (굳이 해로 시간을 읽던 시절까지는 가지 말자) 휴대용 시계가 17세기 이후로 쓰여 왔다고들 말한다. 이 휴대용 시계란 오늘날처럼 손목시계의 형태가 아니라 주머니에 넣는 정도였을 것이다. (손목시계는 20세기 초반에서야 등장하게 됐다.)

그리고 시계에 들어가는 배터리가 상용화되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의 쿼츠파동이 있고 나서였으니, 그 이전의 손목시계들은 대부분 다 저렇게 수백 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기계식 시계로 시간을 쟀다.


1872년도에 제작된 회중시계 (출처 : www.hodinkee.com)
위 회중시계 안에 탑재된 기계식 무브먼트로 오늘날 제작된 손목시계에서도 이런 방식의 무브먼트를 사용하고 있다. (출처 : www.hodinkee.com)


그 시절 주먹만 하던 휴대용 시계가 점차 사이즈가 작아져 손목에까지 올릴 수 있게 되었어도 여전히 시계를 배터리 없이 움직이게 하려면 수백 개의 부품이 필요하다. 기술의 발달로 부품의 크기도 더욱 작고 정교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바로 그 기계식 시계들이 이른바 ‘명품 시계’로 오늘날 추앙받고 있다.


(물론 명품 시계에서도 배터리를 사용한 쿼츠 시계도 많다. 그러나 오늘 이 글에서는 가장 극단적으로 만 원짜리 시계와 천만 원짜리 시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무엇이 다른지 이야기하려다 보니 가장 큰 차이점에 초점을 맞췄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명품 시계의 쿼츠 (배터리) 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겠다.)


사람은 가도, 시계는 남는다.

배터리는 수명이 제한되어 있다. 물론 다 쓴 배터리를 교체하여 다시 시계를 움직일 수 있지만 스스로가 시계 백케이스를 열어서 배터리를 갈기엔 너무 번거롭다.

그러나 기계식 무브먼트를 탑재한 시계라면, 언제든 태엽을 감아 멈춰있는 시계에 생명을 불어넣어 움직일 수 있다. 할머니에게서,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롤렉스가 여전히 손목 위에서 잘 움직이고 있는 이유이다. 그 시계는 또 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고 그렇게 소중한 물건에 추억이 쌓여 귀한 물건이 된다.


그래서 명품 시계 하나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단순히 네임밸류만 쫓기보다는 그 이면에서 이 시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한 번 관심을 가져보고,

이왕 사는 거, 나의 귀한 추억들과 의미를 담아 물려줄 때의 마음도 한 번 생각해 보고 선택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끌고 가야 하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