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기를 든 아내와 설거지 하는 남편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가는 방식

by 그럭저럭

시험관을 하면서 가장 낯설었던 건 몸의 변화보다도 감정의 변화였다.

난자 채취를 준비하던 시기, 눈길에 미끄러져 두 번이나 엉덩방아를 찧었고 엉덩이뼈에 금이 갔다. 그 상태로 호르몬 주사를 맞으며 지냈고, 채취가 가까워질수록 엉덩이는 계속 불편했고 배도 점점 묵직해지는 느낌이었다. 회사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보다 더 신경 쓰였던 건 따로 있었다.

평소에는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에도 괜히 예민해지고, 서운한 마음이 올라왔다가 또 금방 가라앉곤 했다.

그럴 때마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더 어색해질까 봐, 그냥 조용히 넘어가려는 쪽을 택했다.

그런데 남편은 눈치가 거의 백 단이라, 내가 아무 일 없는 척을 해도 금방 알아챈다.

남편은 내 눈치를 봤고, 나도 화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감정을 제어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게 제일 힘들었다.

나도 힘들고, 내 곁에 있는 남편도 힘들었다.


시험관의 과정을 간단히 말하면,

여자의 몸에서 한 달에 한 번 배출되는 난자 외에, 호르몬 주사를 통해 여러 개의 난자를 자라게 한 뒤 한 번에 채취하는 방식이다.

원래 한 달 동안 여러 개의 난자가 자라지만 그중 하나만 배출되고 나머지는 소멸되는데,

채취를 할 때는 그 난자들을 한 번에 모아 사용하는 개념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이 과정이 난소 나이를 빠르게 늙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을 들었다.

이 부분은 병원마다 설명이 조금씩 다를 수 있어, 내가 들은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이렇게 난자를 채취한 뒤 정자와 함께 수정을 진행하고,

수정에 성공한 배아를 3일 또는 5일 동안 배양한다.

그 이후 바로 이식을 하거나, 냉동 보관을 했다가 이식 시기에 맞춰 해동 후 이식하게 된다.

이식 후 약 10일 정도 지나면 임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이식에 실패할 경우 동결된 배아가 남아 있다면 다시 이식을 진행하고,

남아 있는 배아가 없다면 다시 채취 과정부터 반복하게 된다.


우리는 자연 임신을 6개월 정도 시도했다.

나는 임신이 어렵지 않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와 언니 모두 임신이 잘 되었고, 둘씩 자녀를 낳았기 때문이다.

자연 임신이 되지 않아 다시 병원을 방문했고,

남편은 정자 검사를, 나는 나팔관 조영술 검사를 진행했다.

나팔관 조영술은 질을 통해 조영제를 넣고, 그 흐름을 X-ray로 확인해

나팔관이 막혀 있는지 등을 보는 검사라고 들었다.

시험관을 진행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하는 검사 중 하나였다.

검사는 생각보다 많이 아팠다.

그 정도일 줄은 모르고 갔었다.

당일 병원에서 두 시간 넘게 기다렸고,

검사실에 들어가 차가운 검사대에 누워 또 한참을 기다렸다.

“조금 아파요”라는 말과 함께 검사가 시작됐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통증이 강하게 올라왔다.

순간적으로,

아, 나 아기 못 낳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검사는 길지 않았다.

1~2분 정도였던 것 같은데, 끝나자마자 통증은 바로 가라앉았다.

그날은 기억이 또렷하진 않지만, 검사를 하고 오후에 출근도 했던 것 같다.


검사 결과는 큰 이상이 없었다.


시험관을 하려면 남편의 정자 검사도 필수인데,

결과는 기대보다 좋지 않았다.


운동성은 기준보다 많이 낮았고, 정상 형태의 비율도 매우 낮았다. 그래서 시험관을 할 경우 미세 수정 방식으로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자연 임신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을 들었다.

내가 갔던 병원 두 곳 모두

원인을 특정해서 말해주지는 않았다.

난임은 하나의 원인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추가적인 정밀 검사를 통해 원인을 찾을 수는 있지만,

비용과 부담이 있어 초기에는 기본 검사 위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그래서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시험관을 하다 보면

누가 원인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나도 그랬다.

내 나이 때문인가 싶다가도,

남편 검사 결과가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한쪽의 문제라고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

그 생각을 그대로 꺼내기도 애매했다.

나는 내 나이도 있고,

남편의 정자 상태도 좋지 않은 상황이라

시험관을 진행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병원에서도 특정 원인을 지목하기보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임신이 어려워질 수 있으니

부부가 상의해서 결정하라는 식이었다.

우리는 더 늦추지 않고 시험관을 진행하기로 했다.

요즘에는 임신 준비는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자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아지고 있다.

나도 처음에는 막연하게

여자의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검사 결과를 보고 나니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문제만은 아니구나.


남편도 충격이 있었다고 했다.

술, 담배도 하지 않고 운동도 꾸준히 해왔는데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온 것에 대해 스스로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남편은 가공식품이나 인스턴트를 좋아하고,

탈모약을 오래 복용해왔다.

병원에서는 탈모약이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에는 복용을 중단해보는 것도 권유한다고 했다.

남편은 탈모약을 끊었다.

병원에서는 남편 때문이라고 단정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여러 생각이 오갔다.

나는 남편이 조금 더 어린 여자를 만났다면 이런 과정 없이도 아이를 가질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더 몸 관리를 하려고 했고, 남편에게도 더 잘하려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게 가끔은 서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마음이 역시 좁구나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시댁에서는 내 나이 때문에 임신이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남편은

본인의 검사 결과를 먼저 이야기했다고 했다.

괜히 오해할 수 있으니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을 준비하면서 식단과 운동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남편은 운동은 꾸준히 하면서도 식단 조절은 거의 하지 못했다.

나는 새벽마다 주사를 맞고, 나름대로 몸 관리를 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럴수록 남편의 생활 습관 중 아쉬운 부분들이 더 크게 보이기도 했다.

이 정도 노력은 같이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평생의 습관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강하게 말하지는 못했다.

시험관을 하면서 감정이 예민해지다 보니

사소한 것에도 서운함이 생기고,

괜히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도, 남편도

누구 한 사람만의 문제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

남편은 내 감정 기복에 크게 반응하기보다는 그냥 받아주는 쪽이었다.

집안일도 더 챙기고, 내가 예민하게 반응해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원래 불같은 성격이던 사람이 이렇게 받아준다는 게, 가만 보면 좀 신기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은 한 번도 내 나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아이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고,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남편은 나와 만나기 전에는 아이를 간절하게 원했었는데,

나와 결혼한 이후에는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되더라도 둘이서 잘 살면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상대방이 해주지 않은 것에 집중하면 끝이 없다.


하지만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버티고 있는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면

또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남편은 원래 불같은 성격인데도

내가 이유 없이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도 받아주고,

내 기분을 맞춰주려고 노력하고,

여전히 러닝을 하면서도 집안일을 더 챙기고 설거지도 도맡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잘 하지 않던 청소도 조금씩 하게 됐다.


나도 완벽하지 않고,

남편도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더 맞춰가야 하는 것 같다.

시험관을 하는 동안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컨디션에 따라, 상황에 따라

툭 쏘게 말할 때도 있고 예민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완벽하게 조절하는 건 어렵다.


그래도,

조금씩 알아가면서 맞춰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아직 그 과정 중이다.

아직도 가끔 어긋나고,

가끔은 괜히 서운해진다.

그래서 이제는

누가 더 잘못했는지보다

서로가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또 서로에게 해주려고 했던 것들을 보려고 한다.

아직 아이는 없지만,

그 사이에서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맞춰가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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