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아보기 위해 강릉으로 떠난 며칠
강릉 바다는 생각보다 거칠었다.
바람이 세게 불어 파도가 자꾸만 부딪쳐 올라왔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꼭 마음속에 응어리진 무언가를 세차게 헤쳐버리려 애쓰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한참을 바다만 바라봤다.
'아가야, 잘 가'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에게는 분명히 존재했던 시간이었다.
일주일 전, 병원에서 아기의 심장이 멎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7주 차에 분명히 잘 뛰던 심장이
8주 차에 아무런 예고 없이 멈춰 있다는 말을 듣고 한동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날 바로 수술할 병원을 찾았고, 다음 날에는 정해진 순서대로 모든 절차가 진행됐다.
그렇게 우리의 시간도 함께 멈춘 것 같았다.
수술이 끝난 뒤의 일상은 생각보다 더 느리게 흘렀다.
몸은 쉽게 지쳤고, 소화는 잘되지 않았고, 아침마다 설명하기 어려운 무기력이 먼저 찾아왔다.
그런 나를 보던 남편이 바람을 쐬고 오자고 했다.
바다를 보고 오자고.
달리는 차 안에서 나는 대부분 침묵했다.
평소 같으면 이런저런 얘기를 이어갔을 텐데, 너무 피로해서 말을 꺼내는 것이 힘들었다.
배가 서서히 당기는 느낌이 들어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있기도 했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을 때, 통증이 갑자기 쏟아졌다.
걷기가 힘들 정도였고, 출혈과 함께 핏덩어리가 나왔다.
겨우 호텔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와 진통제를 먹고 나서야 조금씩 가라앉았다.
침대에 누워 아파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걱정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여행 오지 말고 집에서 쉴 걸 그랬나..”
라며 말끝을 흐렸다.
늘 자기 확신이 강하던 사람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며,
나는 오히려 차분해져 진통제를 찾았다.
다행히 한숨 자고 일어나니 통증도 출혈도 잦아들었다.
나중에야 이런 과정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병원에서도 경과는 괜찮다고 했다.
그날, 이곳에는 산부인과가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나는 다음에 이런 상황이 온다면 더 많은 걸 확인해 둘 것 같았다.
저녁이 되자 컨디션이 조금 나아졌다.
바람이 차가웠는데도 남편은 산책을 나가자고 했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두꺼운 옷을 겹쳐 입고 함께 나갔다.
남편은 얇은 티셔츠 차림이었고, 나는 두꺼운 옷을 세 겹 껴 입었다.
함께 손을 잡고 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도 다른 계절을 지내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숙소에서도 나는 난방을 올리고 싶어 하지만 남편은 더위를 참지 못한다.
평창에서 이틀을 보내고 강릉으로 이동했다.
비까지 내려 컨디션이 바닥을 친 나는 차에 남았고, 남편은 혼자 먹거리를 사 오겠다며 나섰다.
한참 뒤 돌아온 남편의 손에는 이것저것 들려 있었는데, 대부분 기름지거나 매운 음식들이었다.
나는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막상 먹으려니 나는 속이 부대껴 먹기가 힘들었다.
사실 그전에 나는 미역국 얘기를 했었다.
우럭 미역국 맛집을 찾아서 보여주기도 했는데, 남편은
"미역국은 집에서도 해 먹을 수 있는데 굳이 사 먹을 필요가 있느냐"며 효율을 따졌었다.
내 주장을 쉽게 꺾는 성격 탓에 당시에는 수긍했지만
막상 눈앞의 기름진 음식들을 보니 서운함이 왈칵 밀려왔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뒤, 남편은 내가 질리도록 미역국을 끓여 주었다.
서툴지만, 그 나름의 방식으로 내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나는 힘든 일을 오래 붙잡고 있는 편이고
남편은 지나간 일을 되돌아보기보다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데 집중한다.
감성적인 나와 논리적인 남편.
우리는 같은 상실을 겪으면서도 각기 다른 속도와 방식으로 그 터널을 지나가고 있었다.
강릉 바다 앞에 섰을 때, 이토록 다른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함께 오게 됐는지 생각했다.
시험관을 시작하고, 기대를 하고, 다시 무너지는 과정 속에서
나는 더 조심하며 움츠러들었고 남편은 나를 이끌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한 번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다.
무섭게 덮치는 파도가 모든 걸 다 휩쓸어가 삼켜 부숴 없애버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파도를 피해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남편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 뒷모습을 보는데 문득 이 거리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한 위로는 화려한 문장이 아니라, 서로의 서투름을 기꺼이 견뎌주는 마음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혼자였다면 아침마다 찾아오는 무기력을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투박하게나마 내 곁을 지키는 든든한 남편 덕분에 나는 생각보다 빨리 웃음을 되찾았다.
섬세하지는 못해도 "평생 행복하게 해 줄게"라고 말하는 그의 진심을 나는 믿는다.
상실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틈새를 메우며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해도 서로의 자리를 비워두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
나는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남편은 여전히 나보다 조금 앞에 서 있었다.
그 거리에서, 우리는 같은 바다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