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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용 May 29. 2021

고독한 신입일기 01

6개월 파견 계약직의 첫 출근날. 내 인생 처음의 출근.


 

 누구에게나 첫출근 전날은 지옥과도 같은 순간일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더군다나 나는 2n 인생 생애 처음으로 ‘회사’라는 곳을 가본 게 이전 면접 때 가본 것이었으니 더욱 긴장되었다. 회사 사무실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그 곳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며, 신입이 들어갈 경우 어떻게 교육이 이루어지는지도 모르니, 사실 구체적으로 뭘 상상하며 무서워해야 하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출근 전날은 눈을 뜨자마자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들었고 가슴의 답답함을 느꼈다. 이제부터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해야하니 마지막으로 늦잠을 자는게 좋겠다 싶었지만, 막상 12시 넘어 느즈막히 눈을 뜨니 이제 출근 전날의 백수 생활이 몇 시간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아쉬웠다. 


 하루종일 뭘 봐도 눈에 안 들어왔고 웃고 있어도 사실 하나도 안 웃겼다. 1분 1초라도 알차고 재밌게 그러면서도 후회하지 않게 보내야한다는 강박이 머릿 속을 지배했다. 차라리 그런 생각을 안 했으면 재미있게 즐겼을 유투브를 보면서도 ‘아니야, 이것보다 재밌는 걸 봐야해.’,‘이거 말고 딴 거’ 하면서 계속해서 더더 재미있을 영상을 찾아 무한 클릭을 반복했다. 그러다보니 하나를 끈덕지게 보지 못해 차라리 안 보느니만 못한 시간이 되었다. 


 잠이 안 왔다. 첫 출근이니 고지된 시간보다 일찍 못해도 20분은 일찍 가야하는데, 그러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해야하는데, 잠이 안 왔다. 그래도 자야지, 생각에 눈을 감으면 쿵쿵거리는 심장소리에 머릿 속이 복잡해져서 저절로 눈이 떠졌다. 아니야, 그래도 자야지, 생각에 조용한 노래라도 들어야지 싶어서 노래를 틀으면 노래 가사에 집중되어 잠이 안 왔다. ASMR이라도 들어야겠다 싶어 들으면 1시간 짜리 긴 ASMR 영상의 엔딩멘트까지 들을 수 있었다. 결국 눈을 뜨고는 유투브에 들어가 ‘신입사원’,‘첫 출근’ 이런 키워드의 영상들을 죄다 찾아봤다. 그런 영상을 볼 수록 가슴은 더욱 답답해져만 갔다. 나는 결국 2시간을 자고 출근해야했다.





 출근하는 직장인들 틈에 껴서 지하철을 타는 기분은 참으로 묘했다. 이전에 학교를 다닐 때도 1교시 수업을 들으면 출근시간에 지하철을 타고는 했다. 하지만 그 때와 분명 느낌이 달랐다. 내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이 사람처럼, 내 옆에 서서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는 이 사람처럼, 나도 매일매일 가야할 곳이 있고, 주어진 일이 있고, 매달 꼬박꼬박 들어올 돈이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가끔 대학생 때 출근하는 직장인을 보면, 비록 그들의 모습이 좀비 같은 모습일지라도, 참 부러웠다. 매달 받게 될 확정적이고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기분은 대체 어떤 느낌일까. 저 사람도 지옥 같은 취준 생활을 견뎠을까. 저 사람은 취업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을까. 그런 눈으로 바라보던 ‘직장인’. 내가 그 신분이 된 것이다. 고작 2시간 밖에 자지 못해서 눈은 뻐근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1층 회사 로비에 도착을 했다. 그 곳에서 미리 전달받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 9층으로 올라오라는 말을 들었다. 쭈뼛거리며 능숙하게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들 속에 뒤섞여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 때는 다행히 9층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있어서 같이 타고 올라갈 수 있었지만, 나중에야 엘리베이터에서 층수를 누르려면 사원증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9층에서 같이 입사하게 된 동기 5명과 함께 교육을 들었다. 6개월의 파견 계약직. 그럼에도 나에게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다행히 맡은 일은 아주 간단한, 아르바이트 수준의 일이었다. 1시간 가량의 짧은 교육을 마치고 자리를 배정받았다. 내가 일하게 될 8층의 사무실로 내려갔다. 처음으로 사무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넓은 공간에 모두 칸칸이 파티션 속에 들어앉아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다. 회사가 금융 쪽이다 보니 다들 단정하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상상하던 오피스 복장을 하고 일을 하고 있었다. 전화 업무 부서도 같이 있어서 한 쪽은 전화를 받고 업무를 하느라 시끄러웠다.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구나. 참으로 신기했다. 대리님의 뒤를 졸졸 따라가서 배정받은 자리에 앉았다. 처음으로 앉아 본 내 자리였다. 6개월. 반 년 동안 내가 앉게 될 자리였다. 


 미리 유투브를 보고 챙겨온 물티슈로 일단 책상을 한 번 닦았다. 그 와중에 혹시라도 시끄러운 소리가 날까봐 조심조심 키보드를 들고 닦았다. 그러고는 다 닦은 물티슈를 어디에 버려야할지도 몰라서 그냥 가방에 다시 집어넣었다. 인터넷을 보고 미리 첫출근 준비물을 챙겨왔지만, 그걸 꺼내놔도 되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물통을 꺼내도 되나, 이제 첫출근 한지 한 시간 밖에 안됐는데 너무 유난 떠는 것처럼 보이려나, 고민을 하다가 결국 그냥 다시 가방에 도로 집어넣었다. 가방은 어색하게 밑 바닥에 두었다. 그러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옆 쪽에 있는 서랍 위에 두는 것 갔길래 슬쩍 나도 따라 위에 올려두었다. 


 내가 있는 곳은 참 조용했다. 그래서 숨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이 움츠러들어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나한테 관심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처음 출근한 나는 그런 것까지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대략 7시간 가량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잔뜩 긴장한 채로 일을 해야했다. 그런데도 어깨가 아픈 줄도 몰랐다.


 첫 점심. 점심은 동기들과 함께 먹었다. 사실 어디에 식당이 있는 줄도 몰라서 로비에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헤매다가 겨우 지하에 식당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내려갔다. 첫 점심 메뉴는 쌀국수였다. 나는 긴장되고 어색한 마음에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앞으로 같이 얼굴 보고 지내게 될 동기들이었지만 아직 첫 날이라서 서로 친근하지 못했다. 점심 식사 후 같이 카페에 가서 서로 통성명을 하고 나서야 친근하게 대할 수 있었다. 





 첫 퇴근 시간. 퇴근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나의 긴장감은 더욱 커졌다. 여기서는 칼퇴를 해도 되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칼퇴하는 분위기가 아니면 어떡하지, 나는 집에 가고 싶은데.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나는 주어진 일이 많은 정직원이 아니였고, 회사 분위기 자체도 칼퇴하는 분위기였다. 퇴근 시간이 되기 10분 전부터 주위가 분주해졌다. 누가 들어도 퇴근을 준비하는 소음에 마음이 되려 편안해졌다. 드디어. 드디어 하루가 끝났다. 


  전날 너무 긴장된 나머지 2시간 밖에 못 잔 것도 있지만, 하루종일 긴장한 상태로 앉아 일을 하다 보니 집에 돌아와 저녁만 먹고 바로 잠에 들었다. 


누구에게나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처음이 있었겠지?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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