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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용 Jun 06. 2021

고독한 신입일기 02

장거리 인생의 쓴 맛 : 험난한 출퇴근길

 나는 인천 토박이다. 

 인천에 있는 병원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나온 토박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모두 집 근처에 있었다. 초등학교는 집에서 횡단보도 두 개만 건너면 되는 곳이었다. 지금 생각해보자면 도보 5분 정도의 거리였던 것 같다. 중학교는 초등학교보다 조금 더 멀어졌다. 무려 횡단보도를 3개나 건너야했으니 말이다. 아마 도보 15분쯤 되는 거리지 않을까 싶다. 고등학교는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버스로 20분 걸리는 거리였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도합 9년을 걸어서 충분히 다닐 수 있는 다니던 내게 버스 20분의 시간은 꽤 힘들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고등학교 근처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다시 도보 15분의 짧은 통학 시간을 얻게 되었다.



 내가 장거리 인생을 살게 된 건 20살 때부터였다. 아쉽게도 대학교는 인천에 있는 곳이 아닌 경기도에 있는 곳으로 다니게 되었다. 도어투도어로 대략 1시간 20분 정도가 걸렸다. 하지만 살던 곳이 도보 3분 거리에 지하철 역이 있던 초역세권이어서 그리 힘들지 않게 통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것도 잠시, 나는 인천 내에서 남부 쪽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학교와 거리가 더 멀어졌다. 게다가 교통도 더 안 좋은 곳이다. 학교까지 도어투도어로 대략 1시간 40분이 걸렸으며, 지하철 환승 2번, 버스 환승 1번을 해야했다. 본격적으로 장거리 인생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1시간 40분(재수없으면 2시간), 하루에 대략 3시간 30분의 시간을 길바닥에 버리는 생활을 4년 가까이 하자 슬슬 거리감각이 경기도인의 그것과 비슷해져갔다. 1시간 반정도면 갈만 하고, 2시간이면 고민 좀 해보다가 오케이하고, 2시간 반이면 진짜 사랑하면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편도다.) 




 그리고 내가 다니게 된 첫 회사. 그 곳도 우리 집과 꽤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금융회사다 보니 아침일찍 출근해야했고, 출근시간은 8시까지였다. 우리 집에서 출근을 하려면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2번 환승해야했으며, 편도로 1시간 40분정도가 걸렸다. 그래도 다행히 출근시간이 남들보다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에 차는 막히지 않았다. 하지만 퇴근 때에는 돌아오는 도중 다른 사람들의 퇴근시간과 시간이 겹쳤고, 평균적으로 2시간이 걸렸다. 나는 하루에 3시간 40분을 땅바닥에 버려야 했다. 하루는 꽉 막힌 도로 위 버스 안에서 계산기를 두드린 적이 있다. 하루의 3시간 40분. 한 달로 치면 73시간 20분이었다. 이 시간을 2021년도 최저 시급으로 계산하면 대략 64만원이었다. 그 구체적인 숫자를 보자 억울해졌다. 이 길바닥에서 돈을 버려가며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64만원이라는 숫자를 눈으로 확인하는 건 둘째치고, 사실 더 중요한 건 바로 나만의 시간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침 일찍 출근하기 위해서 나는 매일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났다. 이 시간도 최대한으로 출근 준비의 순서를 간략히해서 최대한으로 늦춘 시간이었다. 그리고 퇴근하고 돌아오면 저녁 7시 30분이었다. 씻고, 밥 먹으면 금방 9시였고, 내일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적어도 11시에는 자야 했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2시간이었다. 2시간이면 한 편당 1시간을 조금 넘기는 드라마를 두 편도 채 보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자는 시간을 뒤로 미루면 다음날 너무 피곤했다. 내 하루가 출근과 퇴근으로 채워지는 건 싫었다. 그런데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긴 출퇴근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데 집착하기 시작했다. 버스에서는 멀미가 심한 터라 핸드폰을 볼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꼭 라디오를 들었다. 중요한 건 ‘재밌는’ 게 아니라 ‘유익한’ 것이여야했다. 뉴스를 듣던, 외국어를 듣던 버스에서 잠에 들기 직전까지의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나는 꼭 버스에 올라타면 라디오를 켰다. 지하철에서는 반드시 책을 읽었다. 운이 좋아 자리에 앉게 되면 피곤함이 밀려와 졸기도 했지만, 사실 출퇴근 시간에 자리에 앉는다는 건 왠만해서는 일어나지 않는 기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99% 서있어야했고, 그 때는 꼭 손에 들고 있던 책을 펼쳤다. 출퇴근 시간에 조금이라도 유익한 무언갈 하면 그래도 내 하루가 회사로 뒤덮여진 하루는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걸’ 타야했다. 바로 악명높은 1호선. 1호선은 20살 때 몇 번 타긴 했지만, 나는 주로 7호선과 4호선을 이용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1호선에 대해 욕을 할 때면, 특히 연착에 대해서 불평불만을 터뜨릴 때면 적당히 호응하면서도 ‘그런가’ 싶었다. 그런데, 정말 ‘그랬다.’ 

 하루는 이런 적이 있었다. 내가 타고 내리는 역은 1호선 급행이 서는 곳이여서 나는 항상 급행을 탔었다. 그런데 하루는 급행이 방금 지나가서 다음 열차를 기다려야했는데, 생각보다 텀이 길었다. 그리고 바로 완행열차가 도착했다. 어차피 10몇분 뒤에 오는 급행을 기다려서 타나, 천천히 가는 완행을 타나 그게 그거였다. 시간표 상으로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완행을 탔다. 그리고 나는 그 날 이후로 절.대. 완행을 타지 않는다. 그 날 완행은 거의 20분 가까이 연착되었고, 가는 내내 “앞 차와의 간격 유지를 위해 잠시 정차하겠습니다.” 방송을 들으며 사람들 사이에 낑겨있어야했다. 아무리 사람이 많아 혼잡해도 그렇지 나는 그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가끔 친구들끼리 하는 농담이 있다. “‘지하철이 밀려서 늦었어요.’라는 말에 웃으면 서울 사람, 울면 인천경기도 사람이야.” 그리고 나는 그 말에 오열을 하는 사람이 됐다. 


 회사에 다닌지 얼마 안됐을 때, 동기들과 슬슬 스몰토크를 시작하게 됐을 때였다. 아무래도 처음 대화를 트고 질문을 하기 좋은 주제는 아무래도 ‘집은 어디세요?’인 듯 하다. 나도 그 주제를 시작으로 대화를 시작한 적이 많다. 그 동기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내 옆자리에 앉던 동기는 내게 슬쩍 ‘그런데 어디 사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인천에 산다, 여기서 좀 멀다 대답했다. 얼마나 머냐 묻길래 대충 왕복 3시간 정도 걸려요 라고 대답했다. 그 때, 그분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헐. 그런데 여기 왜 다녀요?” 그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그 말에 마땅히 할 대답이 없었다. 그냥 나는 조금 굳은 얼굴로 ‘그러게요’하고 말았다. 그 동기는 의자를 돌려 앉은 내게 계속해서 ‘저라면 그렇게 못 다녀요. 피곤하지 않아요?’라며 물었다.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아 대충 웃고 넘겼다. 회사에서 고작 30분 걸리는 거리에 사는 그 동기는 매일 아침 본인보다 일찍 회사에 와있는 나를 보며 항상 ‘와 짱이다’라며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 동기가 1개월만에 나갔으니 망정이지. 참나.





 나는 그렇게나 긴 시간을 지하철, 버스에 몸을 싣고 이리저리 오가는 생활을 6개월동안 했지만, 단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다. 누군가는 부지런하다, 대단하다 라고 하지만, 멀리 살기에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5분을 늦게 일어나면 30분 지각을 해버리기 때문에 차라리 10분 일찍 일어나는 걸 택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1시간 30분, 왕복 3시간이 걸리는 회사에 출퇴근을 한다. 뭐 엄청 대단한 일인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사실 나보다 훨씬 더 먼 거리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도 아주 많다. 하루에 2,3시간 혹은 그 이상 되는 시간을 이동하는데 쓰는 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면, 회사 근처에서 자취를 할 여력도, 그렇다고 차 사서 몰고다닐 여력도 안된다면, 뭐 어떡하겠나. 적응해야지. ‘힘들다’,‘죽겠다’,‘땅바닥에 시간 버리는 거 짜증난다’ 하면 진짜 짜증나고 열불만 난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그래도 오늘은 5분 일찍 도착했네.’하면서 살아야한다. 그래야 짜증이 좀 덜 나니까.



  (그래도 일단 내 목표는 2년 내에 최소한 편도 1시간 이하인 곳으로 독립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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