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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Dec 18. 2020

험난한 상담의 길

너와 나의 생각은 다름이...

"현아~ 엄마가 우리 현이한테 할 말이 있는데 일루 와봐, 여기 앉아봐.

다음 주부터 엄마랑 현이가 상담센터라는 곳을 갈 거야. 엄마랑 현이 마음이 건강한지 보러 가는 건데~ 거기 가면 장난감들도 되게 많고 이쁜 선생님도 있거든. 현이는 그 선생님이랑 같이 장난감 갖고 놀거나 모래놀이하면 돼. 엄마가 오늘 가서 보니까 모래가 진짜 재미있게 돼있어! 그리고 자동차랑 공룡도 이만큼 있더라~ 그거 다 현이가 갖고 놀아도 된대. 현이가 놀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놀아도 되고. 되게 재밌겠지? 그 방 들어가면 진짜 깜짝 놀랄걸! 재미있는 게 너무 많아서~

근데~ 현이가 그 방에서 놀 때는 엄마랑 같이는 못 놀아. 그 방에서는 선생님이랑 같이 놀아야 해. 그게 그 방의 규칙이래. 그렇다고 엄마가 어디 가는 건 아니고 엄마는 현이 방 바로 옆에 있을 거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현이가 엄마 부르면 다 들릴 거야. 엄마는 엄마선생님이랑 얘기하고 있을 테니까 현이는 현이 선생님이랑 놀고~ 선생님이랑 다 놀고 나면 엄마랑 같이 집에 가면 돼.

현이 선생님이랑 둘이서 장난감 갖고 놀 수 있지? 모래놀이도 하고~ 그래도 엄마가 보고 싶으면 선생님한테 얘기하면 돼. 그럼 엄마 불러주실 거야.

우리 현이 잘할 수 있지? 거기 가서, 선생님들이랑 재미있게 잘 놀고 오자!"




심리센터에 가는 첫날, 나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기세 등등 건물로 들어갔다. 아이는 장난감과 모래놀이에 부풀어 한껏 신나 있었고 나는 첫 상담이 어찌 진행될지 기대 중이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상담센터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나는 알았다. '아, 오늘 상담은 글렀구나...'


자동문이 열리고 센터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아이는 내 목에 매달리려 안달이었다. 까치발을 바짝 세우고는 부지런히도 움직였고 상담사들과 눈빛을 교환하지 않으려 온 힘을 다해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런 아이와 정신없이 씨름을 했지만 그 상황에도 우리를 바라보는 선생님들의 눈에 걱정이 담겼음이 느껴져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이는 나와 떨어지기까지 30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선생님들의 친절함에도 달래지지 않던 아이는 내게 안겨 센터를 다 둘러보고 나서야 몸에서 떨어졌고 자신의 방과 엄마의 방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후 선생님과 놀이방으로 들어갔다.

참 길고 긴 시간이었다. 진작에 상담을 시작했다면 성향은 이미 파악했을 시간인데... 그렇게 겨우 시작된 상담에 나는 벌써부터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한 시간에 10만원인 내 상담의 반을 이렇게 날리다니, 아이의 비싼 상담비용이...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사라지다니...



원장님은 다음 상담이 예약되어있어서 지체할 수 없다며 완곡히 말했고 나는 바삐 상담을 시작했다.

"네~ 우리 일하나님. 요즘 아이랑 많이 힘드시다고 했는데~ 물론 몸이 아프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찾으려면 일하나님의 어린 시절부터 얘기하는 게 좋아요. 한번 얘기해 볼까요?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보세요~ 무슨 얘기든 괜찮아요."

나는 원장님의 그 말에 "어린 시절이요...? 어린 시절은.. 별 거 없는데... 그냥~ 그냥 그랬어요. 힘들고.. 짜증나고.. 그냥 그랬던 것 같아요.."

나의 이런 대화에 원장님의 표정은 무언가 굉장히 무겁고 깊고... 묘했다. 표정은 살짝 웃고 있었지만 무언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쳐다보던 원장님은 같은 질문을 한번 더 했고 내가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려하지 않자 나중엔 몇 살 때의 기억을 콕 집어 물어봤다.


그 후부터 나는 덤덤히 얘기했다. 아빠는 엄마를 항상 때렸고 엄마는 집을 나갔고 우리는 늘 가난했고, 개고생 하다가 결혼해서 이제 겨우 살만해졌는데 암에 걸렸다. 근데 아이가 그런 나를 갉아먹는 것 같아서 힘들다. 그래서 아이와 조금 편해지려고 왔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원장님이 내게 말했다.

"지금 일하나님의 얼굴을 거울로 보여주고 싶어요. 그런 엄청난 일들을 얘기하는 사람의 표정이... 보통은 그런 표정으로 얘기하지는 않아요. 너무 덤덤하잖아~ 지금. 일하나님 본인 얘기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 얘기하는 게 아니잖아요. 하나님, 저의 이 말을 듣고 지금 어떤 생각이 들어요?"


'...? 나는 그냥... 얘기하라 해서 얘기한 건데...'

원장님의 그 말에 '뭐 어쩌라는 거지... 30년 동안 말 안 했던 감정을 이제 와서... 갑자기 울기라도 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쯤, 아이가 빼꼼 문을 열고 들어왔다.

원장님은 아이를 보며 '지금 들어오면 안되는데~' 라는 표정으로 환히 웃었고 나도 아이를 보며 두 팔을 벌렸다. 아이는 금세 내 품에 안겨 얼굴을 비벼댔다. 그리고 엄마는 뭐 하고 있냐고 물었다.

원장님과 나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이 났다. 상담시간은 10분이 남아있었지만 아이가 방에서 나가려 하지 않았기에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 남은 시간 나는 아이를 안고 원장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마저도 아이가 듣고 있으니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못한 채 그냥 가족 근황에 대해 말할 뿐이었다.

그리고 상담이 끝날 무렵 현이의 선생님은 아이를 데리고 놀이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 틈에 원장님은 내게 숙제를 하나 내주었다. "일하나님이 본인 이야기를 왜 그렇게 담담하게 하는지 집에 가서 다시 생각해보시고~ 다음 시간에 제게 말해주세요. 옛날 일을 생각하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우리의 상담시간은 정해져 있었고 뒤에는 다른 이의 예약이 있었기에 더 이상 시간을 연장할 수 없었다.

나와 아이는 30분이 채 안 되는 상담을 받은 후 센터를 나왔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몇 마디를 나누었다.

"우리 현이~~ 센터에서 어땠어? 선생님이랑 재미있었어? 거기 장난감 진짜 많았지?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

"선생님이랑 공룡 갖고 놀았어. 근데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어."

"그랬구나~ 그래서 엄마 방으로 왔구나~ 현이 방이랑 엄마 방이랑 진짜 가깝지? 그 방에 엄마 있는 거 알았으니까 이제는 안 무섭겠네? 앞으로는 놀이방에서 실컷 놀 수 있겠다. 그치?"

아이는 내 말에 수긍한 듯 작은 목소리로 "선생님 언제 또 만나? 내일도 갔으면 좋겠다~"라고 했고 나는 아이의 말을 들으며 "그러게... 매일 가면 좋을 텐데. 조금 더 기다리다가 다음 주에 또 가자~"라고 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또 가고 싶지 않았다.

이번 상담은 비용 부분에서는 많이 쓰렸고 마음 부분에서는 찝찝했다.

공격적으로 기습 질문을 하는 원장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무서웠고, 덤덤하게 말해서는 안된다는 내 어린 시절이 드러나는 게 싫었다.

아이와 달리 나는 다음 주가 기대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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