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나님의 이십대는 어땠어요?"
"20대에는... 아빠 빚 갚느라 바빴어요. 돈 벌면 아빠 주고, 돈 벌면 아빠 주고... 안 주려고 해도 아빠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진짜 마지막이라고 계속 그래서... 뭐.. 그렇게 주다 보니까.. 이십대는 빚 갚느라 정신없었던 것 같아요. 낮에 회사 다니고 퇴근 후에는 새벽까지 아르바이트할 때도 있었고. 그때 제가 갚은 돈만... 한 8천만원 정도?... 됐을 거예요."
알고 보니 화통했던 원장님은 내게 외쳤다. "아이고!~ 미친년~~"
그런 원장님의 외침에 나는 굳이 놀라거나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원장님의 마음이 내게 전달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른이 아이에게 보내는 안타까움의 외침... 아마도 그녀는 나의 삶이 개탄스러웠을 테지.
물론 원장님이 그렇게 말한 이유도 있었다. 우선 나는 그런 욕설을 들어도 "훗" 하며 웃어넘기는 성격이었고 원장님도 그걸 알았을 거다. 그리고 마침 이십대때의 일상을 얘기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아빠 빚을 무한으로 갚았다는 말을 하는 순간이었으니 누가 들어도 욕을 할 수밖에 없는, "왜 그랬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원장님의 그 말이 기분 나쁘지 않았던 거다. 늘 겪어왔던 반응이니까.
그러나 이런 이해와 상관없이 원장님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졌다. 그녀는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나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녀가 그 순간 나를 이해했다면 미친년이라는 말 대신 "아효... 진짜.. 고생했네..가족이란 게.. 버릴 수도 없고."라는 비스무리한 말이라도 했을 텐데...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나도 알고 있었다. 나의 과거가 빛나지 않음을, 내가 무엇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는지 정도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굳이 재확인이 필요하지 않았다. 질책 또한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원장님은 내 빛나지 않았던 과거를 굳이 여러 가지 무수한 단어로 재확인시켜주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는데.
회차가 거듭될수록 나는 몸이 아파왔다. 집에 돌아갈 때면 머리가 깨질듯해 휘청거릴 정도였고 집에 도착해 누우면 어김없이 열이 났다. 한창 아이와의 관계를 상담할 때였다.
"하나님은 아직 6살에 머물러 있어요. 6살짜리 엄마야. 아이랑 지금 나이가 같아요. 엄마가 아이를 지켜줘야 하는데 엄마랑 아이랑 나이가 같아! 그래서 자꾸 하나님이 아이랑 싸우는 거예요, 아이를 지켜주지도 못하고."
이 말이 귀에 맴돌았다. 나는 철없는 엄마였구나. 6살짜리 엄마라니...
상담이 진행될수록 나는 점점 강도 높은 나쁜 엄마가 되어갔다. 원장님의 말이 그랬다.
"아이가 엄마한테 매달리는건 당연해요. 엄마가 불안해하는데 아이가 괜찮을 리 없죠. 근데 하나님은 그걸 못 받아주는 거야. 본인이 엄마한테 안정감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아이한테 사랑을 주는 방법을 모르는 거예요."
"아이는 엄마한테 기대고 싶은데 엄마가 자기랑 하는 행동이 똑같아. 보통의 엄마들은 그러지 않아요."
"암환자라서 불안하고 아프고 물론 그러겠죠. 하지만 아이는 그걸 몰라요. 그런데도 하나님은 아이가 그걸 이해 못한다고 화내고 있는 거예요."
말에 형태가 있다면 화살 같은 모양이었을까. 상처투성인 내 몸으로 말이라는 화살이 날아와 더 많은 상처를 냈다. 맞는 말인데, 왜 이렇게 아플까.
나는 암환자였다. 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코 앞에서 죽음을 경험한, 앞으로의 삶이 굉장히 불안한 암환자. 그런데 원장님은 내가 암환자라는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암환자가 겪는 불안에 대한 것은 모두 배제한 채 맞는 말로만 상담을 이어갔다.
그래서 나는... 암환자가 된 나를 다독일 약간의 시간조차 갖지 못하고 나쁜 엄마가 되어 아이의 감정과 그릇된 내 감정을 끊임없이 들여다봐야 했다.
그래서 아팠다. 내가 이렇게 형편없는 엄마라는 것을, 나로 인해 아이가 상처 받았다는 것을 매번 확인하는 그 기분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원장님이 원망스러웠다.
'나만 아이랑 싸우는 거 아닌데... 모든 엄마들이 조곤조곤 아이를 훈육하는 건 아닌데.. 많은 엄마들이 매번 아이와 싸우고 화해하는데...
그런데 자꾸 나한테만.. 왜.
왜 자꾸 나를 몹쓸 엄마로 만들어 버리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점점 정신과 육체가 약해져 갔다.
6회차 상담 때 독감에 걸려 센터에 가지 못했다. 나는 매년 독감에 걸리는데 그 병증이 지나쳐 주사액을 맞아도 열흘간 일어나지 못하는 편이었다.
나는 항상 그 상황이 화가 났다. 매번 아프고, 매번 입원하고... 독감 아니면 폐렴, 아니면 암. 반복되는 그 아픈 생활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독감에 걸려있는 내내 분노심이 한껏 올라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2주 뒤. 상담을 받기 위해 창백해진 얼굴을 하고 원장님 앞에 앉았다.
"아효~ 우리 일하나님. 몸은 괜찮아지셨어요?"
"네. 이제 괜찮아요.. 한 열흘 아프다가... 이제 기침만 하고 몸은 괜찮아졌어요."
"그래요... 우리 일하나님. 아프지 말아야 하는데~~ 근데 어땠어요? 독감으로 아프면서? 상담도 못 나오고 하니까 기분이 어땠어요?"
"많이 안 좋았어요. 화가 너무 많이 나서..."
"화가 났다고? 하나님은 왜 화가 났을까요?"
"자꾸 아파요. 매일 한 시간씩 꾸준히 운동을 하는데도.. 나아지는 것 같지가 않아요. 계속 아프고.. 나는 왜 맨날 아플까, 남들은 멀쩡한데 나만 왜 이렇게 아플까. 진짜 너무 짜증이 나서.. 제발 안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냥 좀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그래서 이번에 짜증이 되게 많이 나더라고요..."
"그랬군요. 근데 하나님은 본인이 왜 아프다고 생각해요?"
"... 모르겠어요. 그냥.. 몸이 계속 안 좋아서..."
".. 음~ 몸이 안 좋아서? 근데 내 생각엔~ 아파서 짜증나는게 아니고 짜증나서 아픈게 아닐까?"
"...??....아......"
충격이었다. 내가 아픈 게... 짜증 때문이었나? 그래서 독감에 걸렸다고?
원장님은 그 후에도 말했다. 마음에 쌓여있는 감정들이 분출되지 못해 계속 몸으로 나타나는 거라고. 그런 게 화병으로 오기도 하고 더 큰 병으로 오기도 한다고. 그래서 내 몸이 계속 아픈 거라고. 그러니 화를 풀고 편해질 필요가 있다고.
맞는 말이다. 나도 안다, 스트레스가 몸에 안 좋다는 것을. 그래서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고 하지 않던가. 근데 당연히 알고 있던 그 사실을, 단지 다시 들었을 뿐인데 내겐 굉장히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 아파서 짜증나는게 아니고 짜증 나서 아팠던 거구나!
그래서 아팠구나. 그래, 내가 요즘 좀 힘들긴 했지. 그래서 독감에 걸린 거야. 매일 긴장하며 살아서~ 아~ 그런 거였어. 그래서 내가 아팠던 거였어.
근데... 그러니까... 암에 걸린 게 결국 내 탓이라는 거네?
생각을 할수록 혼란스러웠다. 짜증 나서 아프다는 말은 확실히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순간순간 반성도 하게 만들었다. '그래,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지.'... 하지만 이내 또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도 내가 왜 암에 걸렸는지 안다. 내 아팠던 기억들이 매일 아우성치니까. 하지만 '암은 복불복'이라 외치며 자책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었는데... 이렇게 대놓고 '니 병 니가 만든 거야.'라는 말을 듣게 될 줄이야..
그건 친언니가 내게 했던 "니가 잠을 안 자니까 암에 걸린 거야!"라는 말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아~.. 전문가에게 듣는 말은 힘이 정말 세구나...
원장님이 항상 날카로운 말만 날린 건 아니었다. 가끔은 내가 흐느낄 정도의 위로도 주었다. 덕분에 나는 그 따뜻함을 믿고 마음속 깊은 얘기를 꺼낼 수 있었다. '나 이렇게 아팠어요~'를 외치면서.
그러나 그럴 때면 어김없이 날카로운 채찍이 휘둘러졌다. '자! 이제 아픔을 개조해봅시다!'라고 외치면서.
때문에 원장님의 따뜻한 위로는 날카로운 채찍에 가려져 아무 효과를 보지 못했다. 기억도 안 나는 거 보면...
내가 필요한 건 그저 공감이었다. "고생 많이 했네~"라는 말이 듣고 싶었을 뿐이다. 그동안 아무도 내게 해주지 않았던 말.. "고생했구나.."
그 말을 듣기 위해 용기를 낸 거였다. 내 아픔을 보여주고 위로를 받으려고.
그러나 돌아오는 건 역시 실망이었다. '당신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라는 실망.
...
내 방어기제로 인해 상담이 힘들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럼에도 나를 위로해주길 바랬던 것은... 너무 큰 욕심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