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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Feb 19. 2021

진부하지만 희망이란 건 있어서

하고 싶은 게 많습니다.

암환자가 되고 나서 잠시 그림을 배웠었다. 그로 인해 많은 위로를 받고 무언가 할 수 있겠다는 희망도 가지며 생각했었다.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머릿속에 가득한 뜬구름 잡던 생각들을 기어이 실행해 나갈 수 있을까.

암환자가 되어 많을 일들을 겪고 수없이 눈물을 흘리며 생각만 했던 그것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겪은 일을 기록하여 다른 이와 나누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내 기록을 누군가에게 보여주어 공감을 얻고 그것으로 인해 나도 그 사람도 위로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암환자들을 바라보는 '아무 의미 없지만 눈치도 없는 간혹의 나쁜 시선'을 알리고도 싶고 암환자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도 알리고 싶고... 아이를 돌봐야 하는 엄마 암환자들의 쉴 수 없는 투병기도 알리고 싶고... 아픈 부모를 보면서 함께 아파하는 아이의 모습도 알리고 싶고...

그리고 또 내 아이에게 '엄마는 끝까지 너의 곁을 지키고 싶었단다.' 라는 말도 남기고 싶고...


그래서, 그런 이유로 생각했던 뜬구름이 바로 그림일기였다. 그림으로 내 마음을 알리고 싶다.

그리하여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짧은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겪었던 감정의 증거들을 그림으로 옮길 수 있게.




하지만 나는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아주 오래전 싸이월드나 카카오스토리 뿐이다. 지금도 친구의 권유로 인스타엔 가입되어있지만 팔로워와 팔로잉을 구분할 줄 모르는 유령 회원이다. 나는 소셜 네트워크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 내가 그림일기를 한다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림을 그릴 줄도 모르는데 심지어 컴퓨터에도 올려야 한다니.. 너무 어렵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이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 내 노트에는 수많은 메모들만이 남겨졌다. 그것은 두세 줄의 짧은 문장들이지만 그 글만 봐도 머릿속에는 차례차례 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나 정작 손으로는 그리지를 못해 시작을 못하고 있으니, 이런 답답한 나를 보고 친구는 말했다.

"글을 써보는 건 어때? 지금 인스타툰 못할 거면 생각 정리도 할 겸 제대로 목차 정해서 글을 써봐."

친구의 한마디에 마음은 또 동요되고 글짓기에 문외한이던 나는... 결국엔 그림을 포기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브런치를 시작하며 내 머릿속의 흩어져있던 생각들이 정리되고 수많은 과정들을 겪으면서 내 마음은 잔잔하게 때로는 치열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실력과는 별개로 더 많은 것이 하고 싶어졌다. 


'진부하지만, 불안 속에서 희망을 얘기할래'


어찌 보면 진부한 이야기들을 나를 위해,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더 많이 말하고 싶어졌다. 내가 겪은 일들을 다른 누군가는 겪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리하여 매일매일 마음속으로 계획을 세워본다. 

암환자의 그림일기를, 소외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부모에게 저당 잡힌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결국엔 내 처음 의도처럼 글을 쓰며 나를 치유하고 누군가가 함께 치유되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은 모르겠지만, 쌓아놓은 글이 많아질 때쯤이면 내 가슴의 구멍도 조금은 메꾸어져 있지 않을까.



...

그러나 빠져나갈 틈을 만들어놓는 게 인생의 이치... 내 삶의 최종 목표는 오래 사는 것이기에 어떠한 스트레스도 받지 않겠다는 다짐도 함께 해본다.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일은 많고 할 일도 많은데... 시작은 참으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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