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ind Turtle May 09. 2022

명상: 생각의 매개 없이 실제와 만나는 것

명상 기록 13일째

오늘은 좀 늦게 방석에 앉았다. 아내가 선룸을 차지하고 음악을 듣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오늘은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기에, 명상과 명상 기록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아내가 원하는 대로 해 주기로 했다. 아내는 누워서 장사익을 듣고, 나는 거실에서 ‘지식의 성격과 교육’을 읽었다.


1장의 제목은  ‘플라톤과 이소크라테스의 지식관과 교육의 성격’이다. 앎이란 무엇인가? 과연 알 수는 있는가? 알고 있는 것이 옳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 줄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을 하고 이에 대한 소피스트들과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설명을 핵심만 간추려서 간략하게 알려주는 논문이다. 지식의 성격을 알고 싶어서 이 논문을 읽는다기 보다는 그때 그 사람들은 앎, 지식, 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했는지가 궁금해서 읽고 있다.


인간은 생각이 참 많은 존재다. 아니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존재인 것 같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상상할 수가 없다. 생각의 질에 따라 사람의 질도 달라진다. 그리고 생각과 행동의 일치의 정도에 따라 사람의 급도 정해진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도 생각이다. 그 생각을 글로 옮기고 있다. 잠시도 생각을 쉬지 않으며, 생각에 대해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비교도 해보고, 우기기도 하고, 설득도 하고 해서 마침내 공통된 뭔가를 새로 만들어 내기도 하고 갈라서기도 하고 전쟁으로 서로를 죽이기도 한다.


생각의 힘은 위대하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하다. 위대와 잔인은 동전의 양면인 것 같다. 박물관에 전시된 전사의 칼을 보면 위대한 전사가 생각나지만, 그 칼에 의해 목숨을 빼앗기거나, 팔다리가 잘린 채 살아가야만 했던 사람들을 상상해 보면 그 칼의 아름다움에 눈길을 줄 수가 없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의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짓밟았는가? 차라리 생각 없이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그렇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죽음이 우리를 생각에게서 갈라놓기 전까지는, (죽는다고 해결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생각과 헤어질 수 없다. 참 피곤한 운명 공동체이다.


사람이 죽지 않고도 생각을 멈출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것에 도전했고 성공했다고 전해진다. 이들 중에 대표적인 사람들로 부처와 그 제자들이 있다. 명상을 통해 생각을 통제하는 힘을 얻었던 것이다. 명상을 통해 생각의 매개 없이 실제를 직면하고 그 경이로움을 체험하고 그것을 실제를 직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실제를 직면하는 방법과 길을 보여주는데 전 생애를 바친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떻게 생각을 추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을까? 명상이었다. 명상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생각을 멈출  있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명상을 통해 선정에 든다는 것은 생각이 멈추었다는 것이며, 생각의 매개 없이 바로 실제와 만나는 것이다. 핵심은 강력한 집중력의 개발이다. 집중력은 훈련에 의해 개발할  있다. 쉽게 변하지 않고 항상 존재하는 하나의 대상에 생각을 모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생각을  점에 오래 묶어둘  있는 집중력이 개발되면 생각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마저 사라지면 생각은 우리를 떠난다. 그때 우리는 실제 직면할  있다. 이론이 그렇다는 것이고, 내가 그것을 경험해 보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위해서 오늘도 방석에 앉는다.


오늘은 시작은 힘들었지만 끝은 짜릿한 명상이었다. 처음에 앉은 자세가 편하지 않았다. 허리에 가벼운 불편함이 계속 이어져 마음이 자주 그리로 움직여 갔다. 혼침은 오지 않았지만, 생각은 그치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왔다가 사라졌다. 아마 내일 해야 하는 일들이 주로 등장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생각이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 그야말로 망상 수준의 생각들이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면에 마음을 모았다. 코의 실루엣이 마음으로 그려졌고 콧구멍 안에서 위쪽으로 향하는 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아래쪽으로 나와 바깥으로 나가는 숨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숨이 들어갈 때 몸이 가볍게 떨렸고 작은 희열이 느껴졌다.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희열을 좀 더 오래 느껴보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코의 실루엣이 사라지고 숨도 사라졌다. 얼른 다시 생각을 멈추고 숨에 마음을 모았다. 다시 몸의 전율과 마음의 희열이 느껴졌다. 계속해서 호흡에 집중했다. 생각을 누르고…  31분 타이머가 울렸다. 여운을 느끼며 명상에서 나왔다. 아쉬움과 기쁨이 교차했다.   




실제(實際)
1. 있는 사실이나 현실 그대로의 또는 나타나거나 당하는 그대로의 상태나 형편
2. [불교] 진여(眞如)의 법성. 또는 진여의 참 이치를 깨달아 그 궁극에 이르는 것을 뜻한다.
[출처 다음 한국어사전}




(100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명상을 해보려고 마음먹은 명상 초보의 짧은 경험과 생각을, 생각나는 대로 적고 있습니다. 사실 앞으로 명상의 날수가 늘어나면서 어떤 내용이 나올지 전혀 예측을 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많이 기대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잘못된 점 있으면 주저 없이 지적해 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