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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nd Turtle May 14. 2022

화가 날 때 명상을 하면 생기는 일

명상 기록 14일째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요즘 아내와 아들의 관계가 그러하다는 말이다. 아내는 아들만 보면 못마땅해한다. 아들은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면 곧장 짜증 모드로 들어간다. 30년이나 더 산 사람의 연륜과 지혜도, 이기적이고 게으르고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아들 앞에서는 먹통이 된다. 지혜는커녕 눈치도 발휘되지 않는다. 그냥 잔소리와 지시와 비난만 나온다. 아내에게서 아들의 행동을 자발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지혜로운 말이나 행동을 기대할 수 없다. 엄마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들이라도 고분고분하면 좋으련만, 아들은 한 술 더 뜬다. 아내의 잔소리가 이어지면, 아들의 목소리와 행동은 이내 과격해진다.


아내의 잔소리가 시작되면 나는 심장이 쪼그라든다. 그리고 아내를 말리기 시작한다.


“제발, 그냥 놔두세요. 나이가 몇인데, 아직 일일이 다 말을 해줘야  해. 20년이나 말을 해도 안 되는데, 지금 한다고 되겠어요. 괜히 반항심만 더 생기기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시기만 늦출 뿐인데, 제발 그만하세요. 모른 척하세요”


그러면 아내는 항상 똑같은 레퍼토리로 응답한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도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네. 항상 말로만 하고 행동은 하나도 하지 않고. 손톱 깎는다고 한 지가 언젠데 아직 그대로이고. 엄마가 멀리 갔다 왔는데, 내다보지도 않고. 자식 정말 잘 못 키웠다. 잘 못 키웠어.”


아내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아들 방으로 들어가서 잔소리를 하거나 야단을 친다. 아들은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할 거니까, 그만 좀 하세요.’로 응답한다. 아내는 못마땅한 얼굴로 아들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다. 아들은 절대로 기가 죽는 법이 없다. 아들이 ‘죄송해요, 앞으로 안 그럴게요.’라고 말해도 하나도 진정성 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아들은 항상 자기 일이 먼저다. 그것이 유튜브 시청이든, 게임이든, 공부든. 자기가 하고 싶을 때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고 다른 일을 한다. 공부하는 것만, 아니면 공부하는 척하는 것이, 자기 일인 줄 안다. 아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도 명상하기 전에, 아내와 아들 사이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내가 외출한 사이, 아들이 아내의 화장대와 지갑을 뒤지고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지 않고 어질러 둔 것을 아내가 발견하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 일이 발생했다. 아내는 아들에게 큰소리로 오라고 했다. 아들은 ‘볼펜 찾으려고 그랬어요.’라고 말하며 안방으로 왔다. ‘이게 뭐야, 한 두 번도 아니고, 엄마가 지갑 건들지 말라고 했지. 왜 자꾸 남의 물건에 손대니’라고 아내가 따져 묻자, 아들은 ‘볼펜 찾으려 했다니깐요. 이제 엄마도 제 책상 뒤지지 마세요.’라고 응수한다. 참 뻔뻔한 아들이다. 지가 잘한 게 뭐가 있다고 오히려 큰소리를 칠까? 나도 답답한 마음에 아들에게 한 소리했다. ‘야, 너 잘못한 사람이 왜 그래? 니가 잘못한 거 알기는 아니?’라고 하니, 아들은 퉁명스럽게 ‘잘못했어요. 이제 안 그럴게요.’라고 말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나는 답답한 마음을 지닌 채로 명상을 시작했다. 그런데 명상을 시작하니 이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아까 일에서 마음을 거둘 수가 있었다. 그래도 호흡에 집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첫 31분은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서 집중이 될 듯 말 듯 그렇게 끝내 버렸다. 아쉬움이 남아서 31분을 더 하기로 마음먹었다. 집중은 잘 되었으나,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해서 중간에 그만두었다. 


지금 시각 밤 열한 시 십분. 나는 평정심을 되찾아서 명상 일지를 적고 있고, 아들은 공부를 하다가 나와서 빨래를 개고 있다. 아내가 시킨 지 4시간 정도가 지난 후이다. 수학이 어려워서 할 게 많아 이제야 빨래를 갤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빨래 개기 할 때까지 4시간이 걸렸다고 하니, 아들이 그래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한다. 어차피 자기가 해야 하니, 할 사람이 여유가 생길 때 하는 것이 맞다고 한다. 내가 하지 않으니 여기에 대해서는 나도 뭐 더 할 말이 없다. 다만 좀 답답할 뿐이다.


아내가 아들에게 빨래 개기를 시키는 것은, 아들이 그나마 그것은 잘하기 때문이다. 아들이 군대에서 빨래 개는 것 하나는 잘 배워왔기 때문이다. 설거지를 시키면, 아내가 뒤처리를 다시 하거나, 아니면 제대로 헹궈지지 않은 지저분한 그릇을 보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설거지를 다시 하라고 시킨다. 아들은 거의 항상 ‘다시 하면 되잖아요. 짜증 내지 마세요.’라고 말하며 아내의 화를 돋운다. 그래서 아내는 이제는 아들에게 설거지는 잘 시키지는 않는 것 같다.  


아들이 빨래를 개다가 말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가 ‘빨래 안 개나?’라고 물으니, ‘개요.’라고 대답한다. 내 생각에도 아마 개기는 갤 것이다. 그런데 그 하는 모양새를 보고 있으면, 속이 터진다. 이건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니니,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래도 오늘은 자기가 끝까지 다 하도록 그냥 지켜볼 생각이다. 아들이 다시 거실로 나왔다. 빨래를 집어 든다. 아들은 빨래를 개면서도 마음은 수학에 가 있다. “아, 이거 변환이, 리니얼 트랜스폼이 왜 안되지? 아빠, 이거 들어 본 적 없죠? 대학 다닐 때 들어 본 적 없죠? 내가 이걸 정복하고야 말겠다. 내 힘으로 반드시 정복하고야 말겠다.” 내가 답답한 마음에 한 마디 하려다가, 빙 돌려서 이렇게 말했다.


“너는 빨래라도 잘 개니 다행이다.”

“왜요?”

“청소도 안 하고 밥도 안 하고 손톱도 안 깎는데, 빨래라도 개야 결혼하고 아내한테 덜 혼나지.”

“돈 벌어 오잖아요.”

“그러면 아내가 뭐라고 하는지 알아? ‘쥐꼬리만 한 월급 갖다주고 큰소리는 다 쳐요’라고 할 걸.”

“그래도 제가 벌어 오잖아요… 너무 가부장적인가?”

“그래.”


아들은 유튜브로 리니얼 트랜스폼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빨래를 개고 있다. 열한  10 정도에 시작했던 빨래 개기가 30분째 이어지고 있다. 동영상 강의를 들으면서. 빨래 완료, 지금 시각 열한  50.

어쨌든 수고했다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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