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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수 Jul 03. 2020

애착 인형과 보풀 난 후드티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인간관계





 아이들에게는 애착 인형이 있다. 선물로 인형을 받거나 엄마가 골라주기도 하는데 가끔 어떤 아이들은 스스로 인형을 직접 고르기도 한다. 둘째 조카가 그랬다. 그것도 예쁜 새 인형이 아니라 오래되고 낡은 인형을!

 나의 어린 조카가 어딜 가든 안고 다니던 이 갈색 고양이 인형은 20년이나 된 낡은 인형이었다. 게슴츠레하게 뜬 눈과 납작한 형태로 딱히 예쁘게 생기지는 않았다.


 그 인형은 조카의 아빠, 즉 나의 친오빠가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쿠션으로 쓰던 것이고, 또 내가 물려받아 똑같은 용도로 사용했던 인형이다.


 이제는 오래되어 색깔도 바래고 빨래를 많이 해서 아주 부들부들해졌는데, 어찌 됐든 조카는 마음에 쏙 들었는지 내 개 인형~ 내 개 인형(실제로는 고양이지만)하면서 소중한 친구처럼 꼭 안고 다녔다.


 가끔 내가 가서 오랜만에 본 인형에 반가워서 잠깐 안아 들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너에게 그 인형은 그렇게 소중하구나.




 내게는 애착 인형은 없지만 비슷하게 애착이 가는 후드티가 있다. 우연히 세일을 하길래 만 원에 충동구매한 후드티! 맨살에 닿는 느낌이 매우 부드럽고, 또 큼지막한 여유로운 사이즈에 포근함을 느껴서 정말 좋아하는 옷이다.


 하도 많이 입었더니 이제는 보풀이 나고 조금은 낡아졌지만, 만약 이 옷을 잃어버린다거나 옷을 정리하다가 실수로 처분해버린다면 매우 아쉽고 조금은 슬프기까지 할 것 같다.


 큰 마음먹고 결혼식 때 입으려고 산 비싼 옷은 정작 한 두 번 입고 말았는데, 오히려 저렴하게 충동구매한 옷에 이렇게 더 애정이 가다니...?




 사람과의 관계도 비슷하려나. 친한 친구들도 마치 후드티를 만났을 때처럼 우연하게 인연을 맺게 되었고, 함께 있으면 보드라운 천처럼 편안함을 느낀다.


 만난 뒤에 마음이 거칠어진다거나 하지 않는다. 때로는 애착이 생겨서인지 다른 이에게 뺏기고 싶지 않은 오묘한 질투심을 느끼기도 한다. (인형을 꼭 안던 조카처럼)


 하지만 애착 인형이나 옷 같은 물건과는 다르게 관계에는 항상 균형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과한 애착은 사람 사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물론 아는 것과 실제로 행하는 것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려운 인간관계. 서점에 왜 그토록 많은 책들이 있는지 이해가 간다. 많은 이들의 고민의 시간들이 모였을 테니까. 그래도 고민을 통해 조금씩 답을 찾아나가는 데에 의의가 있지 않을까.


 비 온 뒤 갑자기 쌀쌀해진 오늘, 나는 오늘도 후드티를 걸쳐 입고 차를 마시며 너와 나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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